한은 "다시 '남대문 출장소' 시절로 돌아가나"
재정부, 금통위 참석키로, 시장 "관치금융 강화 우려 확산"
한국은행법 제91조는 재정부 차관이나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통위 회의에 열석해 발언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 재정부 차관이 금통위에 참석한 사례는 98년 4월9일, 99년 1월7일과 1월28일, 99년 6월3일 등 단 4차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재정부는 이날 배포자료를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이를 관행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동안 예외적인 경우에만 금통위에 참석했다"며 "경제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공조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부는 이어 "지난해 정부와 한은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정보공유 제도를 개선했고 올해부터 이런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금통위에 참석하고자 한다"며 "지난해 한은법 개정 논의과정에서도 정부의 금통위 참석을 권고하는 지적이 있었다"며 참석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재정부는 또 "일본은 재무성 부대신과 내각부 심의관이 일본은행 정책위원회에 참석하고, 영국도 차관급인 재무부 거시재정정책관이 통화정책위원회에 참석한다"며 일본, 영국의 예를 들기도 했다.
재정부의 기습적 금통위 참석 발표에 한국은행은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향후 금리정책 결정과정에 정부 입김이 강화될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성태 한은총재가 그동안 여러 차례 이명박 대통령 방침과 달리 금리인상 시도 발언을 한 데 따른 후속조치가 아니냐는 해석을 하며, 최소한 올 상반기에는 금리인상이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금융시장에서는 재정부 발표 후 장중 한때 1,130원마저 깨며 급락하던 환율이 1원 하락하는 선에서 거래를 멈추는가 하면 주가가 급락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원화가 강세를 보인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의 금리 조기 인상 기대감 때문이었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금통위 참석 발언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작아진 만큼 환율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증시에서는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으나, 외국인이 그동안 금리인상에 따른 환율 추가하락을 전제로 '바이 코리아'를 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외국인의 순매수세가 꺾이면서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최근의 강정원 KB금융지주 사퇴 파문에 이어 또다시 관치금융 논란을 증폭시킬 사건이 발생하면서, 향후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이 냉랭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다.
실제로 <로이터><블룸버그> 등 외국언론들은 재정부의 금통위 참가 방침을 속보로 전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은 일각에서는 이번 재정부 조치가 지난해 말 국회에서 한은에 은행 독자검사권을 부여하는 한은법 개정안이 관련 상임위를 통과한 데 따른 보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재정부는 그러나 이에 대해 "금통위원들이 소신껏 금리를 결정하면 되는 게 아니냐"며 일축하는 분위기다.
요즘 한은 안팎에서는 이성태 한은총재가 오는 3월 임기를 다하고 물러나면 후임 총재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어윤대 전 고대총장이 취임할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하다. 이런 마당에 재정부의 금통위 참석 발표까지 나오면서 한은은 말 그대로 '침통', 그 자체다.
"금융위기 발발 후 이성태 총재가 벙커회의에 들어갈 때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더니, 끝내 재정부가 한은 회의에까지 참석하는 일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던 시절도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한은의 한 관계자의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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