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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유족들 "우리 남편 살려내라"

남편 죽기 전에 "돈이 없어 미안하다"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허망하게 숨져간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건물 점거농성 철거민들의 신원이 속속 드러나면서 유족들의 오열과 통곡 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재개발지역 상가 세입자로 이날 유명을 달리한 양모(55.관악구 봉천동)씨의 부인은 20일 오후 용산경찰서로 찾아와 "우리 남편 살려내라"며 울부짖었다.

그는 "지난 주 일요일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데 남편이 `돈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소연을 하더라. 그 길로 건물에 올라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못할 몸이 되고 말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이날 오전 경찰 진압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혹시 다치기만 하고 목숨은 건졌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하루종일 병원을 돌아다니다 오후 늦게 용산경찰서를 찾았다.

용산경찰서에서 "시신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있으니 경찰서에 와서 찾아가야 한다"는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

하지만 가족들은 경찰서에 도착한 이후에도 시신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1시간가량 더 기다려야만 했다고 한다.

양씨 부인은 "오후 7시쯤 경찰서에 도착하니 연락을 했던 담당형사는 나오지 않고 안내 데스크에서도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양씨의 딸은 "현장에서는 절대 시신을 보여주지 않더니 뒤늦게 `시신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하더라. 국과수에서 부검을 했다는데 어떻게 가족 동의도 없이 시신을 훼손할 수 있느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가족들은 이후 "경찰서에서는 시신과 관련 아무런 일을 해줄 수 없다"는 통보에 강력하게 항의하다 시신이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은 뒤 오후 8시께 서둘러 경찰서를 떠났다.

부자(父子)가 함께 점거농성에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농성현장 뒤편 건물에서 세를 들어 갈비집을 운영하다 작년 3월 호프집으로 업종을 바꾼 이모(70)씨와 아들(36)은 함께 농성장에 들어갔다가 이씨는 숨지고 아들은 크게 다쳤다.

이씨의 또 다른 아들(45)은 "용산에서 30년간 장사를 했기 때문에 그 가게는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다"며 "재개발로 희망을 잃게 되자 아버지와 동생이 한꺼번에 농성장에 들어간 것 같다"며 침통해했다.

그는 "시위 당시 아버지는 화재 현장에 계셨고 동생은 건물 벽에 매달렸다가 떨어진 것 같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은 밑으로 떨어지든지 죽든지 두가지 길 밖에 없었다"며 경찰의 강제진압을 강하게 비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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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13 20
    추하하

    밑의 개신교놈아 김일성도 집사의 아들이다
    김일성도 교회목사들한테
    해처먹는 수법을 그대로 배운 모양이여.

  • 14 19
    개신교인

    더이상 이 나라를 장로의 손에 맡기지 마라
    목사들아, 이 독사의 자식들아..... 양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마를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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