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엄기영...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양정철 "엄기영, 盧 말기에 '나는 진보'라면서 사장운동했다"
이 전 지사는 "MBC사장 할 때부터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최근 이 전 지사와 통화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2일 전했다.
양 전 비서관은 또 "이광재 전 지사는 그를 존경하는 선배로 깍듯이 모셨습니다. 잘 되기를 바라며 도울 수 있는 일을 다 도왔고, 그가 방송에서 못 이룬 뜻을 정치에서 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정성스레 터를 다져놓은 지역구까지 내놓으려 했습니다. 도지사 출마도 그가 고사하자 나가게 된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선배는 후배가 낙마할 날만 기다렸다는 듯 정적으로 돌변했습니다"라며 엄 전 사장을 질타했다.
참여정부때 청와대에서 방송 업무를 맡았던 양 전 비서관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이같은 이 전 지사와의 통화 내용 등을 전하며 엄 전 사장의 '갈지 자 행보'를 질타했다.
그는 특히 참여정부 말기에 MBC사장에 공모한 엄기영씨가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준다”며 자신이 '진보인사'임을 강조하며 사장이 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음을 밝혔다.
양 전 비서관은 특히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아주 친한 한 원로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사장 선임을 앞두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진행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방송가에 떠돌던 출처불명의 풍문까지 일일이 전달하면서 절박하게 매달렸습니다"라고 전하며, 엄기영씨가 당시 “청와대 양정철 비서관이 저를 안 좋게 본다는데, 잘 말씀 좀 해주셔서 방어 좀 해주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저는 지금 그가 차라리 극심한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을 겪고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연민이라도 느낄 것"이라며 "그게 아니면, 우리가 그에게 가졌던 많은 기대 혹은 착시가 참으로 처참해지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납치범에게 세뇌돼 납치범을 옹호하는 정신이상 현상을 가리킨다.
다음은 양정철 전 비서관 글 전문.
엄기영씨에 대한 ‘아주 불편한 진실’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마침내 한나라당에 입당합니다. 유명 앵커 출신답지 않게 항상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안개 속 행보를 거듭해 온 그의 정치색이 이제야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곧 그는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후보로 뛰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도지사 출마하려고 그렇게 오래 연막을 쳤어야 했는지 씁쓸합니다. 신비주의 마케팅의 종결이 겨우 이것인가 싶습니다.
그가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몇 년, 그가 취해 온 행태와 최근의 행보, 그리고 이번 ‘결단’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갈지(之)자여서 당황스럽기 때문입니다. 그의 결정을 지켜보면서 때론 불편하고 때론 불쾌한 지난 행보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알 수 없는 오락가락 궤적]
1. MBC 사장을 꿈꾸며 좌(左)회전
참여정부 말기, 그는 MBC 사장 공모에 응했습니다. 그는 MBC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사장 선임권을 가진) 한 MBC 인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준다.”
실제로 당시 그의 사장 선임을 위해 이름 석자만 대면 알만한 유명 재야인사까지 그를 성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인사도 그런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아주 친한 한 원로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사장 선임을 앞두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진행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방송가에 떠돌던 출처불명의 풍문까지 일일이 전달하면서 절박하게 매달렸습니다.
“청와대 양정철 비서관이 저를 안 좋게 본다는데, 잘 말씀 좀 해주셔서 방어 좀 해주십시오.”(물론 이는 엄 전 사장이 잘 모르고 한 얘깁니다. 더 많은 비화가 있지만 유보하겠습니다.)
그의 깨끗한 이미지를 좋게 본 앞의 원로분과 또 한 사람, 이광재 전 지사. 그들은 엄기영씨를 돕기 위해 주변에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합법적인 선에서, 호의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사회 선택에 의해 그는 사장이 됐습니다.
2.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약간 우(右)회전
취임 후 그는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노라고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강고하게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정권 눈에 난 프로그램이 불방됐습니다. 인사가 흔들렸습니다. 노조는 때때로 개탄을 했습니다.
3. 국민들의 성원 속에 약간 좌(左)회전
MBC 독립성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됐습니다. 그를 겨눈 퇴진 압박이 노골화됐습니다. 그의 대응과 거취는 범민주 진영 전체는 물론 국민들의 성원 속에 ‘방송민주화’의 상징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는 본부장 회의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에는 당당히 맞서겠다. 공영방송 MBC의 수장으로서 우리 모두 함께 지켜온 가치 ‘MBC 독립성, 자율성’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저는 이미 여러 차례 어느 정파, 어느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걸어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자본과 권력 같은 외부의 압력 뿐 아니라 내부의 부당한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겠다.”
4. 정치를 권하자 손사래를 치며 후진
그의 곤란한 처지를 딱하게 여긴 몇몇 인사들이 ‘굴욕을 당하지 말고 그만둔 뒤 출마하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했었습니다. 도지사 출마권유도 했고 심지어 이광재 의원 지역구까지 나가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정치에 뜻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한사코 반대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5. 결국 쫓겨나자 많이 좌(左)회전
퇴진압박이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버티지 못했습니다. 자진사퇴했습니다. 회사를 나서며, 1층 로비에서 정권의 MBC 장악을 막기 위해 투쟁 중인 노조원들과 만났습니다. 노조원들과 악수를 한 뒤 “MBC는 선배들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최고 공영방송으로 남을 것이다. 위기가 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MBC를 지키고 살리는데 힘과 지혜를 내달라”고 말했습니다.
떠나며 그는 마지막으로 노조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비장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6. 이광재가 도지사 출마를 부탁하자 다시 후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광재 의원이 강원도지사 출마를 간곡히 설득했습니다. 그는 또 한사코 고사했습니다. 이 의원의 삼고초려를 끝내 뿌리쳤습니다.
7. 깜빡이 안 키고 계속해서 몰래 우(右)회전
그는 사직 후에 MBC고문 대우를 받았습니다. 억대의 보수가 지급됐습니다. 자신을 처참하게 몰아낸 ‘MBC 김재철 사장체제’에서 고문에 위촉돼 매월 1000만 원에 업무추진비 150만 원, 에쿠스 차량과 운전기사까지 지원받았습니다.
8. 처음 깜빡이 키고 급발진으로 심한 우(右)회전
이광재 의원이 지역구 양보는 물론 자기 대신 강원도지사 출마 등을 권할 때 돌아보지도 않던 그에게 모락모락 수상한 김이 피어오릅니다. 이광재 지사 법원 판결을 앞둔 시점부터 안개가 자욱합니다. 뒤늦은 강원도 사랑.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파란색 점퍼를 입고 방송출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강원도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신을 쫓아낸 ‘김재철 MBC 체제’에서 고액연봉, 업무추진비, 운전기사, 고급승용차를 지원받으면서 정치행보를 한 셈입니다.
[그 때문에 허탈해진 사람들]
그가 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쫓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때 애쓰고 성원한 MBC 후배들은 자존심이 상하게 됐습니다. 본인 스스로 “인사권을 침해받았다”며 쫓겨난 모양새로 그만뒀고, 후배들에게 “MBC를 지켜 달라”는 글도 썼을 뿐 아니라, 팔을 치켜들고 노조위원장과 악수하며 나갔던 그를, 후배들은 믿었습니다.
한편으론 미안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탁대로 MBC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을 부당하게 핍박한 정권, 자신의 후배들을 극한으로 내몬 정권, 자신의 친정을 유린하는 정권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그 정권을 위한 지지의 한 표를 호소하러 나섭니다.
이광재 전 지사는 그를 존경하는 선배로 깍듯이 모셨습니다. 잘 되기를 바라며 도울 수 있는 일을 다 도왔고, 그가 방송에서 못 이룬 뜻을 정치에서 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정성스레 터를 다져놓은 지역구까지 내놓으려 했습니다. 도지사 출마도 그가 고사하자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배는 후배가 낙마할 날만 기다렸다는 듯 정적으로 돌변했습니다.
이 전 지사에게 그의 출마에 대해 소회를 물어봤습니다. 말을 아꼈습니다. “MBC사장 할 때부터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사람을 잘못 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친정의 사장에 올랐습니다. 명예의 정점에서 그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특별한 하자도 없이 욕을 보듯 수모를 당하며 쫓겨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정치는 죽어도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겁박으로 자신을 쫓아내고 능멸했던 사람들의 품에 느닷없이 안겨 정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그가 차라리 극심한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을 겪고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연민이라도 느낄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그에게 가졌던 많은 기대 혹은 착시가 참으로 처참해지기 때문입니다.
■ 스톡홀름 증후군 :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 심리 현상. 인질이 아니더라도 일부 매 맞는 아내, 학대받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 함. 1973년 8월23일부터 6일간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Norrmalmstorg)의 크레디트반켄(Kreditbanken) 은행을 점거하고 은행직원을 인질로 잡았던 노르말름스토리 사건에서 이름을 따옴. 인질들은 범인들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워졌고, 6일 동안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났을 때에는 인질범들을 옹호하는 발언도 함. 범죄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가 뉴스 방송 중에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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