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새벽에 가서 보니 시신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놨다. 신분증도 손실되지 않고 나왔는데 부검을 했다. 이건 두 번 죽인 것이다."

용산 참사때 타계한 고 이성수(49)씨의 부인 권영숙씨는 21일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끊임없이 "치가 떨린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전두환 때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지금 벌어져"

권씨가 시신을 확인한 것은 사망한 지 하루가 지난 21일 새벽 3시. 시신은 발끝만 남기고 모두 타버린 상태였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신원확인을 명목으로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검을 마친 상태였다.

권씨는 "신분증이 그대로 있었고 벨트는 끼워져있는 상태에서 반은 타고 반은 남아있었다"며 "남편을 또 한번 죽인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유족들과 함게 시신을 확인한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도 "변사체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유족을 찾거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신분증도 있는데 유족 동의 없이 부검을 진행한 것은 두 번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새벽에 확인한 시신 5구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탔고 팔이 꺽이거나 몸이 뒤틀리고 얼굴을 감싸고 있어 마지막 순간에 참으로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신분증을 갖고 유족에게 연락할 수 있었고 지문말고도 확인할 방법이 있었는데 유족에게 아무 연락 없이 부검했다는 점에 강력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며 "진상을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과거 고 이철규씨 사건때도 유족의 동의를 거쳐 유족이 의사 입회하에 부검을 했다"며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부검할 이유가 없다. 가족을 마지막 보내는 길에 부모, 형제, 자식 얼굴은 봐야하지 않느냐. 가족을 보는데도 대표가 있느냐"며 "지금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대책위, 용산 현장서 이틀째 촛불추모제

한편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용산철거민살인자진압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철거민들의 폭력행위를 강조하며 진상을 왜곡하고 있다"며 진압책임자들의 처벌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화재원인을 철거민들의 화염병 탓으로 돌리는 등 철거민들의 불법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며 "정부가 진상규명 지시를 내렸지만 정부와 공권력이 살인을 자행한 세력인에 살인자에게 진상조사를 맡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이번에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경찰특공대의 투입 배경, 화재 발생의 원인,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 등에 대해 정확한 조사를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날 오후 4시 신용산역 인근 진압 현장에서 향후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며 오후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이틀째 촛불추모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아고라 등에는 촛불추모제 참석을 독려하는 사발통문이 나돌고 있다.

대책위는 또 오후까지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순천향대학병원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분향소도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도 병력을 투입해 영안실 출입을 원천봉쇄했으며 유족들과 전국철거민연합 관계자들은 이틀째 장례식장 로비에서 대기하며 시신 인계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