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재야원로들 도마위에 올리다!
"재야원로들은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공개 질타
진보논객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12일 작심한듯 재야원로들에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
강준만 "재야원로들까지 정치공학쇼 요구하다니..."
강 교수는 이날 <한국일보>에 기고한 '국민은 노망이 들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백낙청, 함세웅, 고은, 한승헌, 황석영 등 최근 '반(反)한나라 대연합'을 절규하고 있는 재야원로들에 대한 신랄히 비판했다.
시작은 지난 11월19일 재야원로 19인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며 발표한 시국성명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가치의 밑받침이 없는 정치공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과거 회귀세력과의 가치 차이가 명백한 상황에서,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치공학을 통해 최대한의 세력 연합을 달성하는 것이 민주개혁 세력이 역사 앞에 책임져야 할 임무이다."
강 교수는 이어 이 시국성명에 대한 이광일 <한국일보> 논설위원의 비판을 소개했다.
"백낙청, 함세웅, 고은, 한승헌, 황석영 같은 쟁쟁한 이름들이 어쩌다 이런 비교육적인 발언을 대놓고 하게 됐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범여권의 진정한 문제는 이들이 지적한 '패배주의'가 아니라 진짜 문제가 뭔지 진짜 모르는 맹목이다."
강 교수는 "나는 이 두 담론에 이번 대선의 핵심적인 문제와 더불어 노무현 정권의 치명적인 문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본격적으로 재야원로 등 범여권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그는 "노정권과 범여권 세력은 아직도 자신들이 왜 민심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라며 "오히려 '국민이 노망 든 게 아닌가' '국민들이 집단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범여권은 바로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정치공학'을 위해 발버둥쳐 왔다"고 범여권의 '맹목'을 질타했다.
그는 이어 "급기야 당대의 양심과 지성을 대표하는 원로들까지 그런 발버둥에 동참해 범여권이 '정치공학 쇼'를 화끈하게 벌여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게 되었다. 비극"이라며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정녕 모르는 걸까? 이건 정치나 권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습속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야 원로들의 성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가치의 밑받침'"이라며 "바로 이게 노정권을 병들게 하고 재야 원로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함정이다. '가치의 밑받침'이 있는 한 정당화되는 건 비단 '정치공학' 뿐만이 아니다. '편 가르기' '승자 독식주의' '증오의 정치' 등도 정당화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가치의 밑받침'을 절대시하는 한 '내부 비판'이 설 땅은 없다. 적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내부 비판'은 심지어 이적행위로 매도된다"며 "어느 재야 원로는 '내부 비판'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하는 것이 요즈음 지식인에게는 참 남는 장사"라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며 백낙청 교수의 얼마전 <한겨레> 인터뷰 내용을 거론하며 꼬집기도 했다.
"재야원로들은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강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노무현 정권시절 재야원로들의 '침묵'을 줄줄이 열거하기도 했다.
그는 우선 지난 2005년 한나라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언급하며 "노정권은 한나라당과의 차이가 없다며 '대연정'을 제안했던 정권"이라며 "이번에 성명을 발표한 재야 원로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힐난했다.
그는 "당시 대연정을 공격적으로 옹호하던 친노 인사들은 대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분열이라는 질병의 한 증상'이라는 욕설까지 퍼부었다"며 "노 정권을 옹호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세를 폈을 때 재야 원로들은 무엇을 했던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지지했던 이들이 지금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드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며 "재야 원로들은 이들과 연대하여 '한나라당 집권 망국론'을 펴는 셈인데, '가치의 밑받침' 이전에 더욱 근본적인 정신상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거듭 쓴소리를 했다.
그는 또 "재야 원로들이 노정권을 비판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어야 마땅했던 일들은 노정권 하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민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정적(政敵)만을 상대로 정치를 한 노정권의 자폐적 일탈을 무섭게 질타했어야 했다"며 "그러나 재야 원로들은 침묵하거나 오히려 일탈을 거들었다. 이제 그런 '잔치'가 끝나 가는 시점에서 '잔치'를 또 한번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으니, 과연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재야 원로들은 무엇보다도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가치의 밑받침'을 공유하면 '한 몸'이 되어 치정적인 편들기를 하는 정신세계와 습속이 문제였다"며 재야원로들의 권력지향성을 질타한 뒤 "이걸 깨달아야 대선 이후의 해법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시작된 '10년 체제' 논쟁
강 교수는 2002년 대선때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논객. 이회창 후보로 대표되는 '앙시앙레즘'은 한국사회 발전에 역행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정권 출범후 곧바로 '노무현 비판'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노대통령 집권후 통치행태를 보니 "속았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던 그는 얼마 전에는 중앙정치권에 신물을 느꼈는지, 아예 풀뿌리 지역언론운동을 선언하고 정치 이슈에 대한 언급을 삼가해왔다. 그러던 그가 다시 중앙정치권, 더 나아가 일종의 성역이던 재야원로들까지 정조준해 신랄할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강 교수 비판은 논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앞서 최장집-백낙청의 진보논쟁도 그러했듯, 김대중-노무현 10년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담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범여권 궤멸'이 몰고올 거대한 후폭풍을 우려한 재야원로들의 단일전선 구축 호소를 단순히 '정치공학쇼' 동참으로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도 이견은 존재한다.
그러나 강 교수는 언제나 그러햇듯, 이번에도 '성역'을 건드렸다. 이미 정권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보수진영에서는 진보 재야원로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보수진영 역시 '정파성'에 물들어 있기는 마찬가지인 만큼, 강 교수가 제기한 비판과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강 교수가 제기한 화두중 가장 중용한 것은 글 말미의 '거리 두기'이다. 시민사회운동권이 가져야 할 근본자세인 권력의 '비판적 거리떼기'에 재야원로를 비롯해 시민사회운동권, 친여언론 등이 실패함으로써 민심의 이탈을 초래, 오늘날의 궤멸적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의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이제 범여권에서 '10년체제 논쟁'이 시작된 양상이다. 그러나 논쟁이 '참회록적 성격'을 띄지 않는한, 국민적 시선을 끌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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