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창사후 첫 희망퇴직. '감원태풍' 도래
글로벌 불황 장기화에 조선-철강 등 감원 시작, 전방위 파장
현대중공업은 22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3주에 걸쳐 희망퇴직을 접수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신청대상은 근속 연수에 관계없이 만 50세 이상 과장급 이상 사무직으로, 사측은 희망퇴직자에 대해 퇴직금 이외에 최소 24개월에서 최대 60개월분의 월급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 정년인 만 60세를 기준으로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위로금을 받는 방식이다. 이밖에 정년까지 주어지는 자녀 학자금과 의료비도 일시에 선지급하기로 했다. 사내에 쌓아둔 현금이 많은 현대중공업만이 할 수 있는 조건이다.
현대중공업이 창사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키로 한 것은 장기불황에 따른 수주 급감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말까지 131억1천600만 달러를 수주해 전년 동기 수주액 220억1천800만 달러에 비해 무려 40%나 감소했다.
현대중공업은 선박 최대 발주처인 유럽의 경제가 재정위기로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선박 발주가 급감하자 해상구조물·중장비 등의 수주 확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으나, 유럽 경제위기가 앞으로도 수년간 계속될 것이란 비관론이 확산되자 결국 희망퇴직 형식을 빌은 감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일단은 사무직만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으나, 수주가 계속 부진해 확보해놓은 일감이 계속 줄어들 경우 생산직들도 희망퇴직 대상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감원이 단행될 경우 1차적 피해자는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노노 갈등 발발 등도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조선업계에서 최우량인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이 나설 정도로 동종업계 상황은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미 중소형 조선사들은 연쇄 도산 위기에 직면해 수출입은행 등의 긴급 수혈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며, 최근 들어서는 현대중공업 등 빅3와 신흥 STX 등에도 본격적으로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한 모양새다. STX는 이미 더이상의 M&A(기업 인수합병)를 중단하고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조선업계 불황은 조선업계 자체에 그치지 않고 철강업체 등 연관산업 불황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미 국내 4위 철강업체인 동부제철은 이달초부터 향후 반년간 자진 반납 형식으로 모든 임직원의 임금을 향후 30% 삭감키로 한 상태다. 동부제철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말에도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임금 30%를 9개월 동안 삭감한 적이 있으나 말단 직원들까지 임금을 삭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22일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B등급으로 강등하기로 했다. 포스코 신용등급이 B등급으로 강등된 것은 IMF사태 때를 빼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업계 및 건설업계 불황에 따른 내수 급감과 국제적 공급과잉이 신용등급 강등의 주원인이었다. 현재 도래한 위기가 IMF사태때 못지 않다는 의미다.
한 대형시중은행장은 "어디 한곳에서라도 경기가 나아질 것이란 낙관론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건 더 나빠질 것이란 비관론 뿐"이라며 "갈 길이 멀고 험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ADB(아시아개발은행) 고위 관계자도 "이번 글로벌 위기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국제경제계의 일반적 시각"이라며 "IMF사태때 이상의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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