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방적 살처분' 포기...또 '면피 정책'?
"구제역 걸린 가축만 도살, 해당농장 가축들도 안 죽이겠다"
정부는 20일 예방백신 주사를 맞고 2주가 지난 소가 구제역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면 농장에서 기르던 모든 소를 도살처분하지 않고 해당 소만 매몰하는 등 처분범위를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예방접종 후 2주가 지난 후 돼지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발병한 모돈과 종돈만 매몰처분하기로 했다. 다만 해당 양돈장내 비육돈과 새끼돼지는 종전대로 모두 살처분된다.
이같은 새로운 정부 방침은 종전에 구제역이 발생하면 해당 농장의 모든 가축을 살처분하는 것은 물론, 구제역이 걸리지 않은 인근농장의 가축까지 모두 '예방적 살처분'하던 방침과 180도 다른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동물보호단체와 종교계 등이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고 있다며 즉각 중단을 요구해왔으나 외면해 오다가, 예방백신 접종을 이유로 구제역 발생 농장의 가축들까지 살처분하지 않기로 입장을 확 바꾼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 입장 변화의 이면에 다른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우선 기존의 '예방적 살처분' 정책을 고수한 결과 매일같이 10만~20만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되면서 살처분 가축숫자가 220만마리에 달하자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비난여론이 비등하는 데 대한 '면피성 대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피해액이 2조원을 넘어서면서 정부가 책정한 예비비 2조4천억원에 육박, 추경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진 데 따른 궁여지책이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 정부는 야당에게 구제역 추경예산 편성을 요청할 경우 '정권 무능론'이 확산되면서 장관 등의 줄줄이 문책이 뒤따를 것을 우려, 추경 편성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다른 이유로는 한마리당 10억원을 호가하는 씨소들을 관리해오던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에서조차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되면서 종전의 방침대로 할 경우 씨소가 몰살되면서 축산업이 수십년 전으로 퇴보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실제로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는 이날 발표된 정부방침에 따라 한우육종개량과 고급 브랜드육 생산을 위해 시험사육되고 있는 한우 404마리와 토종가축 혈통 보전을 위해 어렵게 복원된 칡소 83마리 모두를 살처분하는 대신에 의심증상을 보인 암소 6마리만 살처분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외형적으로는 살처분 가축숫자를 크게 줄일지 모르나, 아직 돼지에 대해선 백신 접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며 백신 효과도 100%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구제역 발생 농장의 가축까지 죽이지 않기로 함에 따라 구제역이 근절되지 않고 만성화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정부 대책에 국민 시선은 나날이 싸늘해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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