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공포의 대상 아닌 질병”
[토론회] 차별.편견.무지의 정부정책이 ‘에이즈 공포’ 확산
"HIV/AIDS(에이즈) 감염인 P씨는 일하던 도중 갑자가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간 후 감염 사실을 알게됐다. 이후 높은 병원비와 장기입원에 따른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에게는 두 명의 결혼한 누나와 한 명의 동생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후 연락을 끊고 P씨를 피해 이사를 갔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26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HIV/AIDS 감염인과 인권’을 주제로 가진 토론회에서 나온 한 증언이다.
차별과 통제로 얼룩진 HIV/AIDS 감염인들
참석자들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반인권적인 사례가 잇달아 공개되면서 보건복지부가 새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반인권적인 독소조항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감염인의 인권보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국내에 HIV/AIDS 감염 사례가 최초 발생한 1985년 이후 차별과 감시정책으로 일관했던 정부 정책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IV/AIDS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HIV/AIDS는 죽음’이라는 뿌리깊은 무지와 편견 속에서 감염인들은 취업을 제한당하거나 세상 바깥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의료기관에서의 차별적 진료 행위, 본인 동의 없는 강제검사와 감염사실 누설은 이미 감염인들에게는 일상적인 고통이 된지 오래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2005년 ‘HIV 감염인 및 AIDS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누적 감염인 수는 3천6백57명에 달하며 그 중 7백5명이 사망했고 주요 사인은 자살이었다.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아름다운 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의 표현을 빌면 우리 사회는 “감염인들로 하여금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적절한 정보와 치료를 포기하고 문제를 은폐하도록 만들어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가 지난 2004년 11월 전국의 공공보건의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염인 인권 인식 조사에서 의사들의 76.3%는 ‘에이즈는 눈물과 침을 통해 감염된다’고 답변했다.
이미 지난 90년대 중반 미국 의학계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정된 감염경로를 한국의 많은 의사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특정 질병에 대한 무지가 공포를 부르고 다시 차별과 격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감염인들과 인권단체들은 에이즈라는 질병을 사회 전체와 격리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정부의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을 지목한다.
특정질병에 대한 무지가 공포와 차별.격리 부르는 악순환
에이즈예방법은 지난 1987년 제정된 이래 다섯 차례의 개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국가에 의한 강제검진’, ‘취업제한’, ‘감염인의 거주지 이전에 따른 신고의무’ 등의 인권침해 조항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감염인들은 정기검진을 받는 회사에는 취업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실명으로 정부에 신고해야한다. 감염자의 배우자 등 가족들도 강제검진의 대상이 되고 이를 어길 경우 영장 없는 강제처분으로 강제치료를 받아야한다.
국가에 의한 ‘격리조치’를 명시한 최초의 예방법은 삭제됐지만 여전히 ‘질병의 치료’가 아닌 ‘감시와 강제’조항이 예방법의 핵심 조항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정 변호사는 “현행법은 강제치료.강제격리.취업제한.전파매개행위 처벌.보고체계 실명전환.강제퇴거 규정들을 통해 AIDS에 대한 일반의 공포와 무지를 확산하고 있다”며 “이러한 통제 위주의 정책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실패했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격리, 우생 수술에 의한 낙태와 단종으로까지 이어졌던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도 무지와 공포를 걷어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다수의 피해자들을 만들었다”며 “우리 사회의 대응을 통제와 감시를 통한 예방에서 치료와 지원, 인권 보장을 위한 예방으로 전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인권 침해를 해소하기 위해 ‘에이즈 예방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서 복지부는 ▲근로관계에 있어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 ▲시.도지사 감염인 명부작성 금지 ▲익명검사제 도입 등을 명시했다.
인권단체 “복지부 개정안은 실효성 없어, 특별법으로 감염인 인권보장해야”
하지만 복지부의 개정안은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핵심문제들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개정안은 우선 근로관계에 있어 사용자가 감염인을 차별할 경우의 구체적인 제재조항을 명시하지 않고 선언적인 금지조항만을 포함시켰다. 정책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개정안은 감염인의 가족들까지 평생을 감시와 통제 속에 머물게 했던 ‘사망신고제도’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주소이전 신고제도’는 존치시켜 사실상 실명보고체계를 통한 정부의 통제 정책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행 실명검사를 익명검사로 전환한다 해도 정보누설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감염인들의 인권 신장’을 목표로 내놓은 개정안이 정작 감염인들과 인권단체들이 심각한 인권침해 조항이라며 폐지를 요구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유지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동행동은 복지부의 예방법 개정안과 별도로 감염인들의 인권 보장과 치료 및 예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의 입법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행동이 준비하고 있는 특별법은 ▲감염인의 정책 결정 참여 제도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할 교육.홍보 강화 ▲현행 예방법상 강제조항 삭제 ▲차별금지 및 제재조치 구체화 ▲사회보장 접근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통제와 관리에서 인권의 보장으로 법과 제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허점투성이 예방법의 개정.보완이 아닌 별도의 특별법을 마련해야한다”며 입법 취지를 밝혔다.
브라질의 HIV/AIDS TV용 공익광고 ‘AIDS 환자에 대한 편견 깨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편견으로부터 거리를 두되,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말라! 편견은 치료될 수 있다!”
지난 20년간 HIV/AIDS 감염인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통제와 관리로 일관해왔던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26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HIV/AIDS 감염인과 인권’을 주제로 가진 토론회에서 나온 한 증언이다.
차별과 통제로 얼룩진 HIV/AIDS 감염인들
참석자들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반인권적인 사례가 잇달아 공개되면서 보건복지부가 새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반인권적인 독소조항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감염인의 인권보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국내에 HIV/AIDS 감염 사례가 최초 발생한 1985년 이후 차별과 감시정책으로 일관했던 정부 정책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IV/AIDS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HIV/AIDS는 죽음’이라는 뿌리깊은 무지와 편견 속에서 감염인들은 취업을 제한당하거나 세상 바깥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의료기관에서의 차별적 진료 행위, 본인 동의 없는 강제검사와 감염사실 누설은 이미 감염인들에게는 일상적인 고통이 된지 오래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2005년 ‘HIV 감염인 및 AIDS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누적 감염인 수는 3천6백57명에 달하며 그 중 7백5명이 사망했고 주요 사인은 자살이었다.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아름다운 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의 표현을 빌면 우리 사회는 “감염인들로 하여금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적절한 정보와 치료를 포기하고 문제를 은폐하도록 만들어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가 지난 2004년 11월 전국의 공공보건의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염인 인권 인식 조사에서 의사들의 76.3%는 ‘에이즈는 눈물과 침을 통해 감염된다’고 답변했다.
이미 지난 90년대 중반 미국 의학계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정된 감염경로를 한국의 많은 의사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특정 질병에 대한 무지가 공포를 부르고 다시 차별과 격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감염인들과 인권단체들은 에이즈라는 질병을 사회 전체와 격리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정부의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을 지목한다.
특정질병에 대한 무지가 공포와 차별.격리 부르는 악순환
에이즈예방법은 지난 1987년 제정된 이래 다섯 차례의 개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국가에 의한 강제검진’, ‘취업제한’, ‘감염인의 거주지 이전에 따른 신고의무’ 등의 인권침해 조항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감염인들은 정기검진을 받는 회사에는 취업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실명으로 정부에 신고해야한다. 감염자의 배우자 등 가족들도 강제검진의 대상이 되고 이를 어길 경우 영장 없는 강제처분으로 강제치료를 받아야한다.
국가에 의한 ‘격리조치’를 명시한 최초의 예방법은 삭제됐지만 여전히 ‘질병의 치료’가 아닌 ‘감시와 강제’조항이 예방법의 핵심 조항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정 변호사는 “현행법은 강제치료.강제격리.취업제한.전파매개행위 처벌.보고체계 실명전환.강제퇴거 규정들을 통해 AIDS에 대한 일반의 공포와 무지를 확산하고 있다”며 “이러한 통제 위주의 정책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실패했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격리, 우생 수술에 의한 낙태와 단종으로까지 이어졌던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도 무지와 공포를 걷어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다수의 피해자들을 만들었다”며 “우리 사회의 대응을 통제와 감시를 통한 예방에서 치료와 지원, 인권 보장을 위한 예방으로 전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인권 침해를 해소하기 위해 ‘에이즈 예방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서 복지부는 ▲근로관계에 있어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 ▲시.도지사 감염인 명부작성 금지 ▲익명검사제 도입 등을 명시했다.
인권단체 “복지부 개정안은 실효성 없어, 특별법으로 감염인 인권보장해야”
하지만 복지부의 개정안은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핵심문제들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개정안은 우선 근로관계에 있어 사용자가 감염인을 차별할 경우의 구체적인 제재조항을 명시하지 않고 선언적인 금지조항만을 포함시켰다. 정책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개정안은 감염인의 가족들까지 평생을 감시와 통제 속에 머물게 했던 ‘사망신고제도’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주소이전 신고제도’는 존치시켜 사실상 실명보고체계를 통한 정부의 통제 정책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행 실명검사를 익명검사로 전환한다 해도 정보누설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감염인들의 인권 신장’을 목표로 내놓은 개정안이 정작 감염인들과 인권단체들이 심각한 인권침해 조항이라며 폐지를 요구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유지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동행동은 복지부의 예방법 개정안과 별도로 감염인들의 인권 보장과 치료 및 예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의 입법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행동이 준비하고 있는 특별법은 ▲감염인의 정책 결정 참여 제도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할 교육.홍보 강화 ▲현행 예방법상 강제조항 삭제 ▲차별금지 및 제재조치 구체화 ▲사회보장 접근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통제와 관리에서 인권의 보장으로 법과 제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허점투성이 예방법의 개정.보완이 아닌 별도의 특별법을 마련해야한다”며 입법 취지를 밝혔다.
브라질의 HIV/AIDS TV용 공익광고 ‘AIDS 환자에 대한 편견 깨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편견으로부터 거리를 두되,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말라! 편견은 치료될 수 있다!”
지난 20년간 HIV/AIDS 감염인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통제와 관리로 일관해왔던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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