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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두 노조 이야기

노루페인트 노조-산기평 노조가 '투명상' 받은 이유

"노조가 썩었다."
"노조는 자기 몫 챙기기에만 급급한 이기적 집단이다."

요즘 주변에만 많이 들을 수 있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을 받게 된 데에는 노조 자신의 책임도 크다. 직원 채용비리 등 국민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 여러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노조가 그럴까. 몇마리 미꾸라지를 놓고 전체를 호도하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흥사단이 23일 이례적으로 노조 두 곳을 올해의 '흥사단 투명상' 수상자로 선정, 이날 상을 주었다. 노루페인트노동조합(위원장 김용목)과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산업기술평가원지부(지부장 안형수)가 그곳이다. ‘흥사단 투명상’은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 박혀있는 부정부패를 없애고 공정-투명한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2003년부터 매년 시상하고 있는 의미있는 상이다.

왜 이들이 꼽혔을까.

'IMF고통'을 극복한 노루페인트 노조

노루페인트 노조는 '노루표' 페인트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DPI의 노조다. DPI는 해방직후 설립된 우리나라의 간판급 도료전문기업.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이 그러했듯, 1997년 IMF사태가 닥치면서 혹독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장에 대형화재까지 발생하면서 더 큰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결국 3백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해야 했다.

이때 회사는 한가지 약속을 했다. 반드시 해고자들을 다시 복직시키겠다고. '살아남은' 직원들도 피눈물로 '떠나는' 동료들에게 약속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정상화시켜 다시 함께 일하게 하겠다고...그로부터 노사는 '떠나보낸 이'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고, 결국 3년에 걸쳐 거의 모든 해고자를 복직시켰다. 이때 형성된 '믿음'으로 노사는 올해까지 8년내리 '무교섭 임금타결'이라는 새로운 노사문화 창출에 성공했다. 지금도 노사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용안정을 이루는 등 타의 모범이 되는 노사관행을 만들어가고 있다. '변화에 밀려가기보다 변화를 이끌어가자'는 프론티어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노루 노사문화'가 만들어지기까지에는 직원들을 대등한 동반자로 여기는 사측의 선진적 사고가 큰 바탕이 됐다. 그러나 노조의 역할도 이 못지 않았다. 흔히 '무교섭 임금교섭' 운운하면 '어용'으로 비친다. 실제로 그런 노조들이 적잖이 존재한다. 그러나 흥사단이 '노루페인트 노동조합'을 올해의 '투명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노조가 조합원들의 절대신뢰를 받는 남다른 비결이다. 다음은 흥사단이 밝힌 선정 사유다.

■ 노동조합 회계의 투명성

1. 정기 회계감사 실시 ; 연 2회 정기적으로 금전출납부, 각종 증빙서류, 지출전표 관련통장에 대해 소상하면서도 투명하게 조합비에 대한 사용내역을 감사하고 있음.

2. 조합비 사용내역 상시 공개 ; 회계장부와 각종 영수증에 대한 열람을 상시로 가능하게 열린 공간에 비치하여 언제든지 조합원들이 조합비 사용에 대해 확인 할 수 있게 하여 신뢰도를 높이고 있음.

3. 조합비 관련 회계내용 및 감사결과의 보고 ; 조합재정에 관한 사항을 감사하고 그 내용을 상집위원회와 대의원회의에서 자세하게 보고 및 설명회실시.

4. 사업계획에 기초한 경비집행 ; 년초 수립된 사업계획에 기초하여 지출경비에 맞게 사용하게 하여 무분별한 전용을 막고 조합비 사용을 알뜰하고 투명하게 하였으며 부득이 전용이 필요할 경우는 대의원회의에서 승인을 얻은 후에 사용함.

■ 조합원 의견의 민주적 수렴과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 공개성

1. 매월 정기적으로 대의원회의 개최 ; 월 1회 정기적으로 상집위원회의 및 대의원회의를 개최하여 주요사안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견을 수렴하고 의사결정을 실시하고 그 내용을 회의록을 통하여 전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고 있음.

2. 전 조합원 대상 설명회 개최 ; 중대한 사항(임금 및 고용, 단체협약 등)은 집행부에서 직접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여 여론을 수렴하고 승인을 얻어 의사결정을 실시하여 조합원 신뢰도를 높힘.

3. 8년연속 무교섭 임단협 실시 ; 집행부에서 직접 나서서 조합원을 설득하고 여론수렴을 실시한 결과 올해로 8년연속 임단협을 무교섭으로 타결하는 업적을 만들어 냄. 이는 모든 의사결정을 조합원과 함께 함으로써 가능한 결과라고 사료됨.


한마디로 말해 노조를 유리어항처럼 투명하게 운영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절대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라"는 노조의 캐치프레이즈를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8년째 무교섭 임단협 체결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노루페인트 노조.ⓒ노루페인트 노조


'국민예산 지킴이' 산기평 노조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약칭 산기평은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으로서 기업, 대학, 연구소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연간 2조여원의 정부예산을 집행하는 심의평가기관이다. 정부 기술개발(R&D) 재원의 20%가량을 집행하는 중요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산기평으로부터 한푼이라도 더 많은 지원을 따내기 위한 로비가 대단히 치열하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산업기술평가원지부, 약칭 산기평 노조가 이 와중에 '국민예산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산기평의 김준, 김태진 연구원이 내부고발을 했다. 산자부가 기업이나 대학, 연구기관의 연구개발 지원금으로 사용돼야 하는 ITEP의 예산을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민간재단인 한국산업기술재단에 4백88억원을 2회에 걸쳐 부당 지원했고, 한국산업기술재단은 이 돈을 공익사업 외에도 자체 수익 사업 및 강남 소재 17층짜리 건물 매입 등에 사용한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 과정에 두 연구원은 해고를 당하기도 했으나 노조의 끈길긴 조합원 보호투쟁과 법정소송 끝에 승소해 1년만에 복직했고, 당시 원장은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부당 해고한 사실이 인정돼 1심에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노조는 이 사건이후에도 공정한 심의평가를 통한 기술개발 투자 유도 활동, 국가예산의 배분 투명성 확보를 위한 활동, 무분별한 선심성 해외 외유 및 예산 낭비 방지 활동 등 '국민예산 지킴이'로서 충실히 외길을 걸어왔다.

흥사단은 산기평 노조에게 '투명상'을 수여하며 그 이유로 "노동조합은 공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 예산의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을 위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가져야 하며, 부당한 압력과 청탁에 맞서는 조합원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공기관 노조의 나아갈 길을 밝혔다.

흥사단은 이어 "따라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산업기술평가원지부는 임금요구와 복지요구가 아닌 공익적 관점에서 국가과학기술예산이 국가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활동을 비롯하여 꾸준한 공익 활동을 하였다"며 그동안의 노고와 고초를 위로했다.

우리나라에서 노조의 발전은 시민사회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해왔다. 따라서 우리 시민사회가 한 걸음 더 성숙한 발전을 위해선 '시민사회의 선도자'로서의 노조 역할이 한층 요구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노조는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는 우리사회 노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하겠다. '두 노조 이야기'가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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