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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은 군부정권의 집단학살 허가”

삼청교육대 피해자들, 26년만에 ‘눈물의 추념식’

임천석(47)씨의 팔목에는 문신이 하나 있다. 처음 새겼을 때의 색깔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퇴색된 그 문신은 조그만 하트에 화살이 꽂힌 문양 위로 ‘LOVE’가 새겨져있다. 임씨는 이 문신 하나로 80년 9월, 책방 납품업을 하던 임씨는 ‘살아서는 돌아오기 힘들다’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정확히 1백22일을 강원도 전방에 위치한 교육대에서 보낸 임씨는 이듬해 만신창이로 사회에 나왔다. 척수손상에 허리디스크로 몸은 이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있었고 주민등록증 상단에는 ‘순화교육이수자’라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후 임씨는 26년을 병든 몸과 사회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조직폭력배도, 전과자도 아니었지만 몸에 새겨진 문신 하나로 21살 청년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렸다. 80년대 군부 독재정권 시절 ‘사회정화’의 미명 아래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른 폭력 중 하나다.

“도로교통법 위반했다고, 머리가 길다고, 술 먹고 소리질렀다고”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 26년만에 처음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에 대한 추념식이 열렸다. 삼청교육대 피해자.유가족 모임인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이 주관한 이날 추념식은 공권력의 야만적인 폭력 앞에서 무기력했던 아픈 사연들로 가득했다.

80년대 군부독재정권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알려져있는 삼청교육대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26년만에 처음으로 추념식을 열었다.ⓒ뷰스앤뉴스


21살의 나이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이후 20년 넘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임채현씨.ⓒ뷰스앤뉴스


단지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1년 후 반송장이 돼서 나온 사람부터 17세의 나이로 단지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잡혀들어가 평생을 실어증과 정신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까지 피해자들의 경험은 일반인이 상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삼청교육대는 5.18 광주항쟁 직후인 8월 4일 국가보위입법회의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 발표로 시작됐다. 당시 국보위는 ‘폭력사법, ’공갈 사기사법‘, ’사회풍토 문란 사범‘을 주요 단속대상을 정하고 A.B.C.D로 유형을 나눠 군경을 투입해 단속을 실시했다.

국보위는 전국 각 경찰서에 검거 숫자를 할당했고 경찰은 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영장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경찰은 당시 고등학생을 비롯해 대학생.대학교수.공무원.언론인.가정주부.지체장애자.노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검거했다.

"피해자만 10만 헤아리지만 명예회복은 요원"

검거된 사람들은 일체의 소명기회 없이 육군 25개 사단으로 분산 배치됐고 이곳에서 일상적인 구타와 강제노역이 실시됐다. 이 과정에서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조교들의 일상적인 구타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당시 검거된 인원은 총 6만7백55명. 이 중 4만3천5백99명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길게는 8년에서 짧게는 4주간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구금당해야했다.

지난 89년 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들 중 부대 내 사망자가 54명이었고 그 중 10명이 구타로, 3명은 총격으로 숨졌다. 또한 후유증으로인한 사망자는 3백97명, 행방불명자 4명, 정신장애 등의 상해자는 2천6백78명에 달했다.

여기에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들과 당시 삼청교육대에 입소한 이후 실종 처리된 사람들의 숫자를 더하면 피해자는 10만을 넘을 것으로 유가족들은 추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삼청교육대에 들어가 사망한 죽음의 숫자는 54명이지만 이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피해자들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수천명에 달한다.ⓒ뷰스앤뉴스


한 피해자 유족이 아들의 영정사진을 가져가고 있다.ⓒ뷰스앤뉴스


하지만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가족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더디다.

최초로 삼청교육대 피해자의 인권문제가 제기된 8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피해배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고 국방부의 실태조사 또한 당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3년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 2004년부터 현재까지 피해자 보상이 실시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터무니없이 낮은 피해보상금과 까다로운 신청 조건으로 인해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피해자들 절규 "국가가 우리를 두 번 죽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생활지원금 지급, 장애 외 피해는 보상에서 제외하는 현행법을 졸속법안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80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무려 8년 동안 교육대와 청송감호소를 오가며 사회와 격리됐던 김송석씨(55)는 일반 병원에서 받은 장애 7급 판정을 국방부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뚜렷한 심의기준 조차 공개하지 않고 13급으로 판정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80년에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던 사람을 끌고 가 8년을 살게 해놓고 이제 와서 보상금이라고 제시한 돈이 7백80만원”이라며 “오랜 기간 나와 내 가족이 겪은 고통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며 통탄했다.

김씨는 “우리 사회는 80년에 억울하게 사람들을 잡아들여 한번 죽였고 26년이 지난 지금 미흡한 명예회복조치와 터무니없는 피해보상으로 두 번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무엇보다 20년 넘게 범법자, 폭도로 낙인찍힌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조치가 취해져야한다고 강조했다.ⓒ뷰스앤뉴스


피해보상과 더불어 또 하나 시급한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퇴소 이후 '범법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따가운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취한 명예회복 조치는 이날 추념식의 법적지원 외에는 없었다.

피해자 편점수(53)씨는 "26년간 죄없이 끌려들어간 당시의 악몽같은 경험으로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왔다. 피해보상도 문제지만 본질은 우리를 여전히 폭도.범법자로 알고 있는 것이 이 사회"라며 "최소한 우리 피해자들이 자식들에게만이라도 떳떳할 수 있도록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사죄한다면 왜 당시 가해자나 가해자가 속한 기관의 관계자가 이 자리에 나오지 않냐"며 "추악한 역사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국가와 가해자들은 아직 아무도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국회, 정기국회서 보상법 개정안 통과 추진

한편 국회는 이번 9월 정기국회서에 삼청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현행 보상법의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3년 현행 보상법을 대표발의한 장영달 의원 주도로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 개정안 계류 중에 있고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도 개정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삼청교육피해자의 보상범위를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에서 당시 강압적인 교육을 받은 전원으로 확대하고 보상액 현실화, 생활지원금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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