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큰 어른' 법정스님 입적
'불교계의 살아있는 양심', 김수환 추기경과 두터운 친분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우리 시대의 큰 어른들이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폐암 투병을 해온 법정스님은 올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다가,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긴 뒤 입적했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법정 스님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하다가 대학 재학중이던 1955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을 만나 불문에 몸을 담았다.
1960년 봄부터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4.19와 5.16을 겪고 사회참여의 길에도 나섰다. 그는 유신시절 함석헌옹,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불교계의 사회참여가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 불교계 대표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다가 1975년 박정희 정권의 '사법살인'인 인혁당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출가 본사인 송광사로 내려온 이래 1976년 그 유명한 산문집 <무소유>를 펴냈다. <무소유>는 단순한 산문집 차원을 넘어서 준엄한 권력 비판 의지가 담겨, 당시 유신 강권통치에 신음하던 많은이들에게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후 나온 그의 산문집도 마찬가지로 권력에겐 더없이 따가운 쓴소리의 연속이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천주교의 살아있는 양심이었다면, 법정스님은 불교계의 살아있는 양심이었다.
두 분은 생전에도 서로를 존경하며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다. 특히 1996년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 할머니(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없이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하던 날, 사전 법정스님의 초청을 받은 김 추기경은 길상사를 찾아 세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답례로 법정스님은 명동성당에서 특별강연을 하기도 했다.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는 어른들의 교류였다.
지난해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접한 법정스님은 추모의 글을 통해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기도 했다.
"십여 년 전 성북동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그분은 흔쾌히 나의 초청을 받아들여 힘든 걸음을 하시고, 또 법당 안에서 축사까지 해주셨다.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도 농담과 유머로써 종교간의 벽, 개인간의 거리를 금방 허물어뜨렸다. 그 인간애와 감사함이 늘 내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다.
그리고 또 어느 해인가는 부처님오신날이 되었는데, 소식도 없이 갑자기 절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나와 나란히 앉아 연등 아래서 함께 음악회를 즐기기도 했었다. 인간의 추구는 영적인 온전함에 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참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깨어지고 부서진 영혼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법정스님은 말년에는 가능한 한 세속의 일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 했으나 때로는 준엄한 꾸지람을 하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강행하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그러했다.
법정스님은 이 대통령이 취임초 대운하를 밀어붙이던 2008년 4월20일 길상사에서 행한 법회에서 "근래에 와서 이 땅의 생태계가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다. 주위를 보면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허물고 파헤쳐져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며 "그런 중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 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를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라며 반드시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옥같은 수많은 산문집과 법경을 남긴 법정스님은 자신의 입적을 예상한 듯 지난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하기도 했다. 책 제목 그대로 법정스님은 마무리는 아름다웠다.
입적한 법정스님에 대한 다비식은 오는 13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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