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화스왑의 막후 1등공신, '이광주의 힘'
미국 설득하고 압박하고...한은 사람들 "역시 이광주다"
통화스왑 체결을 발표한 30일 아침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통화스왑 체결 과정을 알려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이크를 옆에 배석한 이광주 한은 국제담당 부총재보에게 넘겼다. 이 총재는 마이크를 넘기며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광주 부총재보가 실무를 총괄했다"며 "미국까지 갔다가 좀 전에 귀국했다"고 덧붙였다. 막후의 1등공신이었음을 공개리에 밝힌 셈.
이광주, 미국 설득하고 압박하고...
방금 귀국한 까닭에 피곤함이 역력해 보이는 이광주 부총재보는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그동안의 경과를 밝혔다.
이 부총재보는 미연준(FRB)과 맨처음 스왑 가능성을 타진한 시기와 관련, "먼저 미 연준에서 기존에 유럽중앙은행, 영국, 일본, 스위스 중앙은행과 했던 것을 덴마크, 노르웨이로 확대했다. 그때 주재원이 일단 미연준과 접촉해 내용을 알아보고 성사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밝혔다. 미연준이 호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4개국 중앙은행과 추가로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달 24일. 한달여 전부터 한은이 물밑에서 조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워싱턴주재 한은 지점 관계자들이 만나 체크한 미연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 부총재보는 "거래의 기본 요건은 통화가 국제 결제성 통화이어야 하고 국가 신용등급이 `AAA'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A'였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미연준이 한국의 신용등급이 통화스왑을 체결한 나라들보다 낮아 스왑체결이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 것.
이 부총재보가 10월초 직접 미국으로 날라갔다. 이 부총재보는 국내 직위는 '부총재보'이나 국제무대에서는 '부총재' 대접을 받는다. 외화운용 등 국제담당을 총괄하고 있기에 그동안 미연준 등의 부총재와 대등한 자격으로 협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그동안 자신의 파트너였던 윌리엄 더들리 미연준 부총재와 독대할 수 있었다.
이 부총재보는 "10월 8일에 미연준 부총재와 만나서 방한에 대해 얘기하고 당사자를 직접 만났다. 연준 이사회의 도널드 폰 이사장과 만나서 성사 가능성을 얘기했는데 부정적이었다"며 "한국경제에 대한 설명과 질의응답을 거치면서 연준 쪽에서는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애로를 표명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로리 미 재무부 차관보도 만났으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총재보는 이들에게 "한국의 실물경제는 세계 13위 규모다. 그런데 금융부문에서 그에 걸맞지 않은 대우받고 있다.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의 금융통화 통합이 상당히 진전됐다. 한국처럼 개방화가 빨리 진전된 나라도 없다. 외국인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 등을 설명하며 한국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경우의 문제, 우리가 국제금융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부각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강력 경고도 빠트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로 한국의 금융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빠져나가고 있고, 이를 메우려고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써야 한다면 결국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이 투자된 미 국채 등을 팔 수밖에 없어 미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경고한 것.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미 재무채권(TB)를 팔기 시작할 경우 미국 국채 신인도도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사실을 지적하며 미국을 압박했다는 얘기다. 한국은 미국채를 4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이 부총재는 "11일부터 담당 국장을 만나 실무적으로 접촉하면서 성사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며 "그 후로 오늘 아침 발표 때까지 실무접촉이 급속히 진행됐다"고 밝혔다.
재정부-이대통령도 지원사격
한은의 물밑 작업에 기획재정부와 이명박 대통령도 총력 지원사격을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G-20 '긴급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의 달러 스와프 체결 국가에 신흥국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다른 신흥국들도 동조의 뜻을 나타내면서 힘을 실어줬다.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도 G-20 회의가 열리기 며칠 전 미국으로 출국, 통화 스와프 체결에 난색을 보인 미 재무부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귀국후에도 재무부와 접촉을 계속했다.
지난 21일 한-미 양국 정상 전화회담도 큰 힘이 됐다. 미국측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전화 통화에서 부시 대통령은 국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 정부에 협조를 구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도 국제 공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겠다"며 공조를 확인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은도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정부도 나름대로 상대국 정부와 접촉하면서 많이 노력했고, 이 대통령이 미 부시 대통령과 따로 전화를 한 것도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공을 정부와 이대통령에게 돌렸다.
한은사람들 "역시 이광주답다"
미연준이 한국,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 등 4개국과 통화스왑을 맺기로 한 데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미 동유럽을 강타해 줄줄이 IMF행을 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의 뒷뜰인 중남미와 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발발할 경우 통제불능의 세계 대공황으로 발전할 것이란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연준이 이런 결정을 하도록 이끌어내기까지에는 이성태 한은총재와 이광주 부총재보의 신속한 판단과 발빠른 물밑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평가다.
정통 한은맨인 이 부총재보는 '정조 매니아'로 유명하며, 정조가 좋다는 이유로 지금도 수원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높아 한은 직원들 투표에서 2년내리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히기도 했다. 베이징 초대 한은소장을 맡아 인민은행 등 중국과의 이른바 '콴시'도 두텁고, 정운찬 전서울대총장이 한국경제학회장을 맡았을 때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각계에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연초 과천에서 '환율주권론' 등이 흘러나오며 환율시장을 불안케 하자 펄쩍 뛰며 최중경 당시 차관보와 여러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한은 사람들은 통화스왑 발표뒤 "역시 이광주답다"고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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