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의 불출마 선언에 정치권 희비가 엇갈렸다. 4.25 재보선 참패후 극한 내홍에 시달리던 한나라당은 예기치 못한 '낭보'에 환호성을 올렸다. 뚜렷한 정파성을 주장해온 민주노동당도 정 전총장 불출마로 한나라당과 민노당간 대립각이 분명해질 것으로 판단, 환영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범여권은 정 전총장 불출마로 오픈프라이머리에 치명적 타격이 가해진 것으로 판단하며 크게 당혹해 했다.
한나라당-민노당 "정운찬 결단 높게 평가"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30일 오후 정 전총장의 불출마 선언후 브리핑을 통해 "정운찬 전 총장의 행적과 발언으로 볼 때 범여권보다는 한나라당에 더 어울리는 분이라는 지적도 많았다"며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으나 학문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좀 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 전총장 결단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범여권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국민들은 학자적 양심을 따르며 지식인으로서 사회발전에 노력하겠다는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거듭 정 전총장의 불출마 선언에 환영입장을 밝혔다.
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 역시 국회 브리핑에서 "백번 잘한 결정"이라며 "정 전 총장은 이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주시길 바란다"고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김 대변인은 "정치참여 고민 과정에서 현실정치의 벽을 높게 느꼈을 것이고 불쏘시개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는 고민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리고 아무런 실질적 진전없이 상호경쟁만 가속화하고 있는 범여권의 지리멸렬함도 이번 결정의 배경의 되었으리라 본다"고 정 전 총장의 사퇴에 대한 이해를 표시했다.
그는 그러면서 화살을 범여권으로 돌려 "후보 중심의 통합이니, 세력 중심의 통합이니 모두 통합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뭉쳐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내용이 없다"며 "반한나라당 외에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내기 위한 아무런 선언이 없고, 그러다보니 자신의 목소리와 입지를 높이기 위한 노력에만 몰두한다. 이것 또한 정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일 것"이라고 범여권을 꼬집었다.
정운찬 전서울대총장의 대선 불출마에 한나라당은 환호한 반면, 범여권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불출마 선언후 회견장을 떠나고 있는 정 전총장. ⓒ연합뉴스
열린우리당-통합신당모임 '당황'
열린우리당은 크게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재성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논평을 통해 “평화개혁세력의 대권후보 경선에 참여하기를 기대했으나 오늘 출마 포기를 선언해 아쉽다"고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최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불출마선언을 계기로 판단이 엇갈리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본다"며 "우선 평화개혁세력의 대통합신당을 향한 시간표가 앞당겨진 느낌이다. 도전하겠다는 사람만이 남아서 앞으로 정치일정들이 경쾌하게 진행돼 속도감이 붙을 것 같다”고 애써 긍정적 측면을 찾으려 애썼다. 그는 “정 전 총장이 경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개인의 판단"이라고 거듭 아쉬움을 드러내며 "열린우리당은 평화개혁세력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내심 정운찬 옹립을 추진해온 통합신당모임의 충격은 더 컸다.
양형일 통합신당모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 전 총장은 유력한 대선주자로서 여론조사 지지율은 낮았으나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가진 인물이었다”며 “참신성, 충청권 출신이라는 지역성, 경제전문가, 개혁적 마인드 등이 높은 평가를 모을 인물이었으나,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범여권에 뚜렷한 주자가 없다는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여타 범여권 대선후보들에 대해 “현재 범여권의 후보군들은 열린우리당에서 지지율의 족쇄에 갇혀있다는 점에서 발버둥을 쳐도 뜨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탈당해 족쇄를 풀어헤치고 국민앞에서 진솔한 사과와 동시에 비전을 제시하고 신뢰를 받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열린당 조기탈당을 촉구했다.
민주당 내심 '회심의 미소'
민주당은 정 전총장 불출마에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명 경제학자이며 교육에 대한 소신으로 존경을 받았던 분”이라고 정 전총장을 추켜세운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마를 결심했다가 현실 정치의 벽이 두터운 것으로 보고 포기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유 대변인은 그러나 곧이어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정 전 총장의 중도 포기를 보고 교훈을 느낀다. 현대 사회는 프로의 세계로, 오랫동안 검증 숙련된 프로들이 움직이는 세계임에도 유독 정치권만 프로들이 배척되는 풍토가 있는데 잘못된 것”이라며 “결코 정치인들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 오랜 세월 검증받은 정치인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화살을 열린우리당에게 돌려 “열린우리당에서 나온 대권후보 중심론의 위험성이 오늘 입증됐다"며 "이번 사안은 정당이 급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켰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