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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분신, 너무나 참담하다"

<현장> 허세욱씨 분신에 격분한 3천명 밤샘 게릴라시위

택시노동자 허세욱씨가 ‘한미FTA 반대’ 구호를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 1일 저녁,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주최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는 시작부터 긴장이 감돌았다.

범국본 등은 당초 휴일인 이날 촛불문화제에 5, 6백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허씨의 분신 소식이 속보로 알려지면서 당초 예상보다 많은 3천여명이 모여들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침통한 표정으로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경찰도 허씨의 분신후 크게 긴장, 병력을 5천명으로 늘려 광화문을 비롯해 청와대 인근 효자동, 옥인동 일대 대부분의 골목과 도로를 원천봉쇄했다.

촛불문화제 참석자들 "성실하게 살아 온 허씨 분신, 참담하다"

분신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는 공공운수연맹 소속 한 노동자는 “참담하다. 믿기지 않는다”며 “군부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왜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오셨던 선배가 목숨을 걸어야 하나. 왜 정부는 민심을 듣지 않나”라고 한탄했다.

허씨를 잘 알고 있다는 민주노동당의 한 당직자도 “평소에도 한미FTA 반대 집회가 있는 날은 어김없이 참석하셨고 택시 일을 하실 때는 손님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열성적으로 FTA에 대해 설명하셨던 분”이라며 “노무현 정권이 다시 분신정국을 만들고 있다”고 정부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택시노동자 허세욱씨의 분신소식이 알려지면서 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애도의 촛불을 밝히려는 시민들이 모여들었다.ⓒ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허씨가 가입한 참여연대의 한 회원은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시회단체에 꼬박꼬박 소액의 후원금을 내던 분”이라며 “국민적 합의 없이 진행되는 한미FTA협상이 평소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의 그 분을 극단의 행동으로 몰고갔다”고 분개했다.

정광훈 범국본 공동대표는 “한미FTA는 범죄단체 구성에 관한 일반협정이고 이를 체결하려는 노무현 정권은 범죄정권”이라며 “막을 길은 국민의 반란 밖에 없다”고 범국민적 저항을 촉구했다.

허씨가 입원해있는 한강성심병원에 들렀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허세욱씨의 분신은 서민의 삶을 미국과 일부 대자본의 이익가 바꾸려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며 “노무현 정부가 이대로 한미FTA협상을 강행한다면 ‘폭력정권’의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 의원은 “민주적 절차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대통령의 결단은 곧 독재자의 길”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스스로 배신한 서민들과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버리지 않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시작된 게릴라시위

각계각층의 정치발언과 자유발언으로 이어지던 촛불문화제는 오후 9시30분께 마무리되고 이어 게릴라 시위가 시작됐다.

1천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기습적으로 서울시청 앞 광장을 뛰쳐나와 을지로와 종각, 낙원상가를 거쳐 안국역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곧바로 버스로 벽을 구축하고 이들의 행진을 막아섰으며 이에 시위대는 다시 종각을 거쳐 광화문 4거리를 점거하고 곳곳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9시 30분께 기습적인 가두시위를 감행,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을 시도했다.ⓒ최병성 기자


경찰과 시위대는 효자동, 옥인동 골목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충돌했다.ⓒ최병성 기자


이어 시위대는 오후 11시께 다시 이동해 금호아시아나 사옥과 새문안교회 사이 골목을 통해 청와대 진출을 시도, 경찰의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세종로 대우빌딩을 거쳐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에서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서울맹학교 앞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 이곳에서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당초 한미FTA 협상 종료시한으로 알려진 2일 오전 1시까지 "한미FTA 중단" 구호를 외치고 허씨의 쾌유를 비는 정치연설을 이어가다 장소를 허씨가 입원중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개별적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협상결과 브리핑 예정시각인 오전 5시까지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협상이 진통을 거듭하자 지금까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범국본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에서 협상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7시에는 다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청와대 앞 노상농성의 규모도 확대할 예정이다.

범국본은 또 향후 ‘허세욱님 쾌유를 기원하는 특별대책위’를 구성하고 전국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회의를 소집해 대응방침을 논의할 것을 알려지고 있다.

각계각층 허씨 애도 논평 줄이어

이날 허씨의 분신소식이 알려지면서 각계의 논평이 줄을 잇기도 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날 구두 논평을 통해 “너무나 안타깝다. 허세욱 동지가 쓴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는 말이 바로 한미FTA협상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한미FTA협상은 지금까지의 국민적 반대보다 협상체결 결과가 밝혀지는 순간 더 큰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도 성명을 통해 “망국적인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 허세욱 서울 평통사 회원은 언제나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성실한 모습으로 작은 일 하나도 성심을 다하던 모범회원”이라며 “이 성실하고 순박한 노동자 허세욱 회원이 지금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메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평통사는 “허세욱 회원의 분신투쟁은 한미FTA강행이 초래할 한국 경제의 파탄을 막고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이 나라 다수 민중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라며 한미FTA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범국본도 긴급 성명을 내고 “온몸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도 허세욱 님은 한미FTA 즉각 중단을 계속 외쳤다”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미FTA협상시기 동안 완전히 실종됐고,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부의 ‘참여’는 오직 한미FTA협상의 나팔수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비판했다. 범국본은 “오늘 허세욱님의 분신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고 또한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낳은 것”이라며 한미FTA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허세욱씨가 1일 오후 1시께 분신을 시도해 용산 중앙대 병원으로 응급후송되고 있다.ⓒ민주노총


허씨 측이 공개한 유서.ⓒ민주노총


허씨가 소속된 민주노총도 2일 새벽 긴급성명을 통해 “우리는 허세욱 조합원이 분신까지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 몰고 있는 정부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국민의 삶을 재앙으로 몰아가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국민들은 망국적 한미FTA협상을 막기 위한 절박함으로 애가 타고 피가 끊는다”고 분노했다.

민주노총은 이석행 신임지도부의 핵심사업인 현장대장정을 중단하고 지도부가 서울에 상주하며 2일 오전 긴급 산별대표자회의를 소집해 강도 높은 비상대응방침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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