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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전문] '한국 시민단체에 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나'

'20년 시민운동'이 극복해야 할 5가지 과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냉정히 진단하며 '시민운동의 윤리' 확립을 촉구한 22일 경실련 등 4개단체 토론회는 향후 시민운동계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이에 이날 주제발표를 한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의 발제문 전문을 게재한다. 박 실장의 문제제기에 반박하는 다른 시민단체의 반론이 있을 경우 이도 전제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한국 시민단체가 나아갈 방향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성

Ⅰ. 들어가며

최근 몇 년간, 지난 20여 년간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온 시민단체들은 대단히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 이후, 특히 참여정부가 등장한 이후 시민단체들의 정치ㆍ사회적 영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그에 비례하여 심각한 사회적 비판과 지지기반의 감소라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정파적 편향성, 정치과잉, 비전문성, 일방주의 등의 개념들이 시민운동을 수식하는 말로 언론지상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이런 외부로부터의 도전과 아울러 내부적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개선되지 않는 재정적 어려움, 점점 약화되는 인적 역량, 경영역량의 부족 등은 시민운동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시민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도전들은 근본적으로 시민운동의 태동기인 1987년 6월 항쟁 이후 20여 년간 우리사회에서 진행된 대내외적 환경변화와 아무런 질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기존의 낡은 시민운동 패러다임 간의 불일치와 충돌에 기인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한다.

첫째로 시민단체와 정책성향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정당과의 연대 혹은 제휴를 통해 보수정당을 고립시키고 사회적 진보를 성취하려는 고전적 연대운동 모델이 시민운동의 정파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을 초래한 주된 원인으로 기능했다.

둘째, 도덕적 우위에 기반한 심판자(judge)적 역할모델은 과도한 자기옳음(self-righteousness)의 오류로 나아가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피(彼) - 아(我) 구분, 비타협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운동방식의 채택을 가져왔다.

셋째, 우리사회가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급속히 다양화, 다원화, 이해관계집단의 조직화 및 정치화가 이뤄지면서 ‘다양성의 존중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일치와 단결, 비타협적 투쟁’이 여전히 시민운동을 관통하는 가치로 유지되면서 시민단체는 사회적으로 ‘경직’된 ‘갈등당사자’로서, 그리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전문성이 부족한 집단’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넷째, 정치적으로 과소대변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을 본질적인 사명으로 하는 애드보커시 NGO에게 있어 이들의 권리와 이익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중치를 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권익에 대한 대변은 사회전체의 편익 증진의 관점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민주화가 진척됨에 따라 노동자, 농민 등 제 집단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상당 수준의 정치적 역량과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고, 그들이 요구 또한 ‘억압되었던 보편적 권리의 회복과 생존권 등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내용을 넘어서서 보다 직접적인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관한 것으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환경변화와 관련하여 시민단체들은 과거 이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데에 집중했던 방식을 탈피하여, 사회 전체적 편익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ㆍ중재하는 등 대변활동의 방식을 바꾸는 변화가 필요했지만 여전히 과거방식을 답습하거나 소극적 동조에 그침으로써 오히려 ‘불특정 다수인 국민들의 이해관계’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다섯째, 언론 등을 통한 시민단체의 비판에 대해 이를 증대된 영향력에 수반되는 공적 감시로 인식하고 수용하지 않고 이념적 및 정치적 시각에서만 해석하고 ‘저항ㆍ방어’모드로 대응함으로써 시민단체들은 타 집단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는 무책임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초래했다.

여섯째, 2002년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우리사회에 정치적 서포터스 운동이 시민단체의 형식을 띠고 등장했고, 이후 이념적으로 매우 상이한 다양한 그룹들이 대거 등장하였으며, 네티즌 중심으로 자발적인 대중운동이 일어나는 등 시민단체 영역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로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었고, 이러한 혼란은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정치적 서포터스 단체들을 시민단체와 분리하여 정립하는 등 시민단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키려는 진지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은 기존의 운동방법론을 부분적으로 손질한다거나 ‘좀 더 잘해보자’는 식의 도덕적 재무장으로는 극복되기 어려운 성격의 것이다. 현재 직면한 어려운 현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연유하는 것이라면, 현실의 극복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현재 시민운동에 지배적인 철학과 가치, 방법론이 변화된 현실에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지난 20여 년간 진행된 한국사회의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민운동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정립해야 한다.

정당성과 도덕적 권위의 시대, 합리성과 합법성의 시대, 그리고 책임성의 시대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를 통한 노태우정부의 등장 이전까지 한국사회의 정치는 파시즘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군부독재정권은 군부, 경찰, 정보기관 등 물리력을 토대로 사회를 억압하고 통제했으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당시의 사회운동단체들은 체제 바깥에서 말 그대로 ‘사회변혁적인 (재야)운동단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시민들과의 의사소통이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재야단체들은 시민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제도 밖의 공간인 ‘길거리’로 나갔고, 일시적으로 잠깐 열려진 공간을 지키기 위해 돌과 화염병으로 상징되는 대항적 폭력을 사용했다. 상황의 엄중함으로 인해 외부적으로는 ‘비타협성’, 내부적으로는 ‘일치ㆍ단결’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다.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라는 재야단체들의 주장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슈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헌신성 등 ‘도덕적 우위’에 의해 힘입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시민들은 이러한 재야운동단체의 주장과 방식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렇듯 시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정당성이 재야단체들의 사회적 존립 근거로 작용했다.

6월 항쟁이후 200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민주사회로의 이행기로 볼 수 있다. 정치체제는 점진적이지만 분명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행되었다. 사회운동단체와 일반 시민간의 언로가 열렸고 점차 확대되었다. 사회적 문제제기와 해결을 위한 제도적 통로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거시정책의 개혁’과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억압되었던 사회적 약자 그룹들의 권익 증대가 시대적 과제로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시민운동이라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을 가져왔다. 이들은 열려진 의사소통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데 초점을 맞춘 활동방식들을 주로 채택했다. 시민들은 과거의 방식과 주장을 고수하던 재야운동단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대안의 합리성’과 ‘방식의 합법성’을 모토로 내세운 시민운동단체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시민단체들은 제한적이나마 법적으로 활동이 보호받게 되었는데, 국가정책의 수립ㆍ집행ㆍ평가의 과정에 의미있게 참여하는 주요한 역할자의 위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2000년 이후, 특히 참여정부가 등장한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및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숙단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거시정책적 변화가 진행되었고, 사회가 점점 더 다양화ㆍ다원화ㆍ전문화되면서 사회적 이슈도 훨씬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었다. 2000년 낙천ㆍ낙선운동이후 시민단체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격히 증대되었거나, 최소한 사회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었고, 국가 및 지역사회의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한 역할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반면 시민단체의 정치ㆍ사회적 영향력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영향력 행사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불러 일으켰고,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감시기제의 작동을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변화로 인해 시민단체는 ‘책임성 증대’라는 사회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러한 책임성의 이행은 과거와는 다른 프로페셔널리즘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애드보커시 NGO로서 재야단체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독재타도 라는 ‘주장의 정당성’과 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도덕적 권위’를 사회적 존립의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이 시기는 ‘정당성과 도덕적 권위의 시대’로 볼 수 있다. 6월 항쟁 이후 200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는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환경변화에 부응하여 ‘합리적 대안과 합법ㆍ평화적 방법론’을 앞세운 시민운동이 태동했고,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따라서 ‘합리성과 합법성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성숙과 시민단체의 정치ㆍ사회적 역할 증대는 시민단체에게 사회적 영향력과 역할에 걸맞는 ‘책임성의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회피하거나 우회할 수 없는 근본적인 도전이며, 따라서 시민단체에게 현 시기는 ‘책임성의 시대’로 다가오고 있다. 시민단체에게 ‘사회적 책임성’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실천적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Ⅱ. 왜 사회적 책임이 요청되는가?

1. 시민단체의 양적 증가와 혼란. 1990년대 중반이후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고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시민단체의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시민단체의 양적 증가는 시민운동 활동영역의 다양화ㆍ세분화로 이어져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민주화와 시민참여를 확산시켰으며 점점 다양해지는 시민들의 공공정책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증가는 시민단체들의 이질성 확대와 시민단체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과 활동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 단체들이 난립하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사실상 한사람으로 구성되어 활동하는 단체들도 있고,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무늬만 시민단체 - 사실은 위장된 이익집단 외곽단체’도 존재한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후원하는 정치적 서포터스 단체들이 시민단체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민단체라는 공익적 조직으로서 갖추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요건과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시민단체 전체의 공신력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 시민단체의 정치적ㆍ사회적 영향력 증대. 1990년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확산되어온 시민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의 낙천ㆍ낙선운동이후 급속히 확대되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와 참여정부의 등장은 특히 정치적 측면에서의 시민단체의 영향력 증대에 기여했다. 시민단체의 영향력 증대는 필연적으로 그에 부합하는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수반했다. 어떠한 형태의 사회적 힘도 그 책임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이 힘과 책임의 관계가 바로 해당 기관이나 조직의 사회적 책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사회에 거버넌스(Governance)가 확산되면서 시민단체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의 수립ㆍ집행ㆍ평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한 파트너 중 하나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을 더욱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게 되었다.

3. 시민단체에 대한 공적감시(public scrutiny) 기능 활성화. 그동안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주로 언론에 의해 이루어져 왔는데, 2000년 낙천ㆍ낙선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낙천낙선운동과 참여정부 등장 이후 우리사회가 정파적 및 이념적 편가르기와 갈등이 심화되면서 몇몇 보수언론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시민단체에 대한 공적 감시’로 인식되기보다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에 대한 보수적 언론의 공격 혹은 정치적 상대진영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시민단체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가 시민단체의 책임성 제고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언론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면서 ‘책임성’에 대한 자각과 실천은 오히려 지연되었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공신력이 동반하락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언론과 시민단체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설혹 이념적 및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시민단체에 대한 공적 감시기능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시민단체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단체는 주목하지 않았다. 따라서 보수언론의 이념적ㆍ정치적 공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의 활동이 있었을 뿐, 스스로의 책임성을 높여 보다 엄격해진 사회적 기대와 일상적인 공적 감시기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은 매우 미진했다.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기반한 공적감시에 대해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는 일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올바른 대응방안이다.

4. 정부기관과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성 요구. 시민단체는 정부기관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로서 정부기관의 투명성과 정책의 책임성을 촉구해 왔으며, 최근 몇 년간 기업의 투명성과 윤리성 등을 포함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을 전개해 왔다. 정부 및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요구는 필연적으로 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자체가 동일한 수준의 사회적 책임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기업에 요구하는 수준의 책임성을 스스로 갖추지 못하게 되면 시민단체는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 잣대’를 가진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5.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기대수준과 실제적 성과간의 격차 확대. 사회가 변화하면서 사회의 핵심적 기관들에 대한 기대의 수준과 내용도 변화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대 사회운동단체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주장의 정당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1990년대에는 ‘대안의 합리성’과 ‘운동방식의 합법성’으로, 민주화 성숙단계로 볼 수 있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안과 운동방식의 책임성’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기대수준은 단계적으로 상승ㆍ이동했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성과가 이렇듯 높아진 사회적 기대수준을 충족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활동성과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하더라도 사회적 기대수준의 상승에 미치지 못한다면 사회적 기대수준과 시민단체의 실제적 활동성과 간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간격은 시민단체에 대해 충족되지 못한 사회적 기대를 나타내며 이는 시민단체에 대한 불만과 비판으로 표출된다.

이 간격이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공감은 약화되게 된다. 현재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비판들은 모두 시민단체에 대한 높아진 기대수준과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민단체의 현실적 수준 간의 갭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높아진 사회적 기대수준에 따른 기업비판에 대한 전략적 대응인 것처럼,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 활동 또한 높아진 사회적 기대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민단체 차원의 적극적 대응전략의 의미를 갖는다.

6.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한 내부적 역량과 조건. 시민단체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의 내부역량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재정적 여건은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으며, 인적자원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대부분 시민단체 상근자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자기계발 및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도 매우 미진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시민단체의 상근자들의 연간이직률은 20% 안팎에 이를 정도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상근자 등 내부 멤버들에 대해 책임적이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은 시민단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협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재정적 측면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현실이 시민단체의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시민단체가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들과 개인, 기업 혹은 재단 등의 기부자들에게 얼마나 투명하고 신실했는지, 달리 말해 책임적이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시민단체에 대한 기대수준의 불충족’도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내부의 조직체계와 시스템, 조직문화와 사업풍토 등도 참여하는 임원이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얼마나 책임있게 설계되고 운영되는 지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시민단체가 직면해 있는 재정과 인적자원, 조직운영의 문제 또한 임원, 상근자, 자원봉사자 및 회원에 대한 책임성의 관점에서 점검하고 재구성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시민단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Ⅲ. 누구에 대한 책임인가?

NGO의 사회적 책임성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와 동일하게 이해관계자 모델을 통해 보다 잘 설명되고 수용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 모델에 따르면, 시민단체는 단체의 정책과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집단과 개인 - 시민단체의 이해관계자 - 에 대해 책임적이어야 한다.

시민단체의 책임성은 이해관계자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위로 향한 책임성(upward responsibility)’으로 시민단체에 재정적 후원을 제공하는 기부자와 재단, 그리고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정부기관에 대한 책임성이다. 둘째는, ‘아래로 향한 책임성(downward responsibility)’으로 시민단체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혜자나, 시민단체에 의해 자신들의 이해가 대변되어지는 피(被)대변집단에 대한 책임성이다. 셋째로는 ‘수평적 책임성(horizontal responsibility)’으로 동료 시민단체들에 대한 책임성이며, 넷째로는 조직의 사명과 가치, 임원과 직원 등 스스로에 대한 ‘안으로의 책임성(inward responsibility)’이다.

그런데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를 향한 책임적 관계의 크기와 명확성은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단체에 대해 가지는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서비스제공형 NGO의 경우 통상적으로 기부자와 정부기관과의 책임성 관계가 가장 명료하고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 단체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부족한 수혜자들과의 책임성 관계는 종종 약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불균형은 근본적으로 NGO가 창출하는 서비스의 수혜자와 자원제공자가 각기 다르기 때문인데, 자원의 제공 여부를 결정하고 이를 감시ㆍ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들의 영향력이 단체의 생존과 활동에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 ‘위’와 ‘아래’를 향한 책임성 간에 균형을 맞출 것인가, 달리 말해 아래를 향한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수혜자와의 책임성 관계, 곧 ‘아래로 향한 책임성’은 일반적으로 ‘안으로의 책임성’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는 대부분의 NGO들이 수혜자들의 편익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혜자들이 프로젝트의 결정ㆍ집행ㆍ평가의 전 과정에 책임있게 참여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도 아래를 향한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채택되는 주요한 방안이다.

애드보커시 NGO인 시민단체의 경우에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정 기관으로부터 거액의 기부를 받아 운영하는 경우나, 이처럼 직접적이고 명료하지는 않더라도 중산층들의 후원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을 위한 운동을 하는 경우에도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피대변집단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면 전체로서의 사회적 편익 측면을 경시하게 되어 이익집단으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불특정 다수인 일반시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우에는 회원들의 회비와 민간부문에서의 개인모금을 통해 재정을 충당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즉, 운동의 수혜자와 자원제공자를 일치시킴으로써 ‘위’와 ‘아래’ 간의 책임성 관계를 동일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문제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아래로 향한 책임성을 보증할 수 있는 프로세스나 도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는 단체에 대한 기부자들의 영향력을 분산ㆍ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위’와 ‘아래’를 향한 책임성 관계가 동일하게 약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Ⅳ. 무엇에 대한 책임인가?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은 시민단체에 대한 다음의 질문과 관련된 것이다; 애드보커시 NGO인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시민들의 필요(Needs)를 정확ㆍ신속하게 파악해서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는가? 또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수용가능(socially acceptable)한 방법으로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가?

이는 Carroll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과 정확히 대칭된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어떤 특정한 시점에 사회가 기업에 대해 가지는 경제적(economic), 법적(legal), 윤리적(ethical), 자선적(philanthropic) 기대들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를 실천적이고 경영적 관점에서 다시 쓴다면,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기업은 다음의 사항들을 추구해야 하는데,

ㆍ이윤 창출(Make a profit)
ㆍ법률 준수(Obey the law)
ㆍ윤리 경영(Be ethical)
ㆍ선한 기업시민(Be a good corporate citizen)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 경제적 책임 + 법적 책임 + 윤리적 책임 + 자선적 책임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의 경제적 책임은,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 ‘시민들의 필요 충족’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 법률을 준수하고 윤리적인 방식이어야 한다는 법적ㆍ윤리적 책임은 시민단체에게 있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방법으로의 목적 수행’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사익추구를 본질로 하는 기업에게 있어 ‘공익에의 기여’라는 자선적 책임이 부여되는데, 시민단체에게 공익성은 본질적 요소이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은 주로 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과 그 목적을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방식으로 이뤄내야 할 책임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은 공공성을 지닌 조직이라면 누구나 요구받는 보편적 책임성과 애드보커시 NGO에만 적용될 수 있는 책임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익적 조직으로서의 보편적 책임

보편적 책임은 참여단체들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NGO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헌장이나 행동규범들은, △보편적 가치와 원칙의 존중, △NGO로서 요구되는 독립성, 자율성, 자발성, 비당파성 및 공익의 추구, △투명성 및 정보의 공개, △단체의 도덕성, △건전한 의사결정구조, △윤리적 모금 그리고 △전문적 및 효과적 경영과 프로그램 등에 관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단체의 유형이나 특성과 무관하게 ‘공익적인 비정부기구’로서 사회적 신뢰를 획득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에 해당된다.

이 범주의 책임성과 관련되어 그동안 시민단체에 제기되었던 비판들로는, 시민단체 리더들의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언행, 부적절한 모금관행, 그리고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 등 단체의 명성과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활동패턴 등을 들 수 있다.

애드보커시 NGO로서의 책임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책임 위에 애드보커시 NGO로서의 한국 시민단체에 적용되어야 할 책임의 내용구성과 방향설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애드보커시 NGO들의 유형과 특성,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자들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민단체들에 해당되는 순수한 애드보커시 NGO들의 사회적 책임성에 관한 헌장이나 행동규범, 나아가 연구와 논의조차 찾아보기 어려워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는 것 또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이뤄진 NGO의 사회적 책임성에 관한 논의와 연구, 실천들은 대부분 서비스제공형 NGO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근 국제시민사회에서 이뤄지는 NGO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는 국제NGO(INGO; International NGO)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 수 십 년간 제3세계 등지에서 빈곤퇴치, AIDS퇴치 등 소위 개발원조사업을 수행해 온 단체들로, 현장에서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관련 이슈에 대한 애드보커시 역할을 점차 증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단체들 또한 서비스제공을 본질로 하면서 부가적으로 단일 혹은 한정된 이슈에 대해 애드보커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한국 시민단체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 국제NGO에 대한 사회적 책임성 논의도 참고자료 이상의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애드보커시 NGO의 경우, 그 개념조차도 해당 국가의 역사적 및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맥락에 따라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애드보커시 NGO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는 그 사회의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가 사회적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대한 비판에 대한 적극적 대응방안으로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 논의 또한 시민단체의 활동과 성과에 대한 현재의 사회적 비판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즉, 시민단체가 직면한 비판에 기초하여 어떻게 ‘사회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책임성 있는 애드보커시(socially responsible advocacy)'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는 데에서 애드보커시 NGO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시작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책임성 논의의 출발점으로서의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

이러한 접근방식에 따르면, 한국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은 그동안 제기되어진 사회적 비판들에 대한 대응방안을 그 내용으로 포함해야 한다.

첫째, 시민단체의 정파적 편향성에 관한 것이다. 시민단체 출범이래 비당파성(non-partisan) 원칙은 시민단체가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시민단체들이 특정 정파에 치우친 태도를 취해 왔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ㆍ관계 진출이나 정부기관 내 각종 자문위원회 등에의 참여,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 등이 그 이유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각종 선거과정과 대통령탄핵정국 등 민감한 정치상황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특정 정파에 치우쳐 왔다고 시민들이 인식하는 데에 있다.

둘째, 시민단체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이슈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지나치게 정치이슈에 집중한다는 것과 함께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이슈에 소홀하다는 양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후자의 지적은, 시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도, 그것을 충족시키지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시민들의 실제적 필요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응성(responsiveness)과 효과성(effectiveness)에 대한 지적이다. 반응성의 문제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시민단체 내부참여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 간에 간격이 벌어질 때, 그리고 시민과의 의사소통 프로세스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효과성의 문제는 이슈에 대한 우선순위의 설정과 그에 따른 내부역량의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리고 이슈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전략과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았을 때 드러난다.

지나치게 정치이슈에 집중한다는 비판과 관련하여, 실제로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의 경우 전체 사업 중에서 정치이슈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특히 정당 간 첨예한 대결국면이 형성된 이슈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활동들은 시민들의 눈에 잘 드러난다. 특히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실종되고, 정략적 접근이 지배하는 우리사회의 정치현실에서는 비정치적 이슈도 급속하게 정치이슈로 변질되어 정쟁의 소재로 활용된다. 이러한 정치현실을 감안한 보다 사려 깊은 접근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셋째, 시민단체들의 일방주의적 운동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거나 그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일방주의는 자신들이 대변하는 집단의 이해관계나 추구하는 가치에 지나치게 높은 가중치를 두어, 다른 경쟁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의 이익이나 사회전체적 편익 혹은 다른 가치와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데에 주로 기인한다.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가능한 한 예방하고 해소하려는 갈등해소지향적인 접근방식의 부재 또한 시민단체의 일방주의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넷째, 시민단체들의 전문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에 관한 것인데,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의 크기에 걸맞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를 평가하기에 앞서 몇 가지 지적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먼저 그릇된 운동방식이 전문성에 관한 왜곡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이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은 이슈에 대해 이름걸기식 연대운동을 펼칠 경우, 전문성도 없이 여러 이슈에 대해 얼굴을 내미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 없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운동방식은 시민단체들의 ‘합리성과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이러한 운동방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시민단체의 주장과 충돌되는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에 의한 ‘시민단체 깎아내리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해당 영역에서 자신들만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시민단체의 주장은 신뢰성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전문성 자체가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이슈의 복합화, 전문화 추세에 맞춰 어떻게 필요한 전문성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는 시민단체의 신뢰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시민단체들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는 개별 단체의 활동과 영향력의 수준, 활동패턴 등과 연계되어 이뤄져야 한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풀뿌리 시민단체와 광역 혹은 국가 단위에서 활동하는 고도로 전문화된 시민단체에 동일한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다섯째,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되어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비판들로는 대체로 전체수입에서 차지하는 회비수입의 비중이 낮고, 주요한 의사결정기구에서 일반시민들의 참여비중이 낮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원봉사 활동가들의 수가 적다는 점 등이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개별적으로 의미있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 ‘회비’ ‘의사결정과정에의 회원참여’ ‘자원봉사자의 참여’와 같은 이슈들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슈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비수입 비중의 크고 작음이 단체의 재정적 독립성과 안정성, 그리고 시민 참여의 정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시민의 있고 없음’을 가르는 핵심적 변수는 아니다. 평범한 일반시민들이 주요 의사결정기구에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만큼 참여’해야 한다는 것도 반드시 옳은 명제가 아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풀뿌리 시민단체와 고도로 전문화된 정책중심의 시민단체에 있어 의사결정기구의 구성원이 동일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활동가들의 참여와 활동 폭에 대해 언급할 때, 통상적으로 주부, 학생 혹은 은퇴자 등 일반시민들만을 자원봉사자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접근방식 또한 한계를 갖는다. 한국사회에서 전문화된 시민단체들의 경우 전문가들이 자원봉사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원봉사자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상근자들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시민운동의 본질적 사명은 ‘시민들의 필요를 얼마나 정확히 그리고 민감하게 파악하고 대변ㆍ충족시켜 주느냐’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에서 ‘시민의 있고 없음’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도 ‘시민의 필요에 제대로 반응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주고 있는 가’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내적인 프로세스나 기제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회원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토록 하는 것은, 시민단체가 시민적 관점을 유지하고 시민들의 필요가 의사결정과정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프로세스로 기능한다. 또한 충분한 회비수입은 기부자들의 과도한 영향력을 배제함으로써 시민단체가 시민들을 향해 열려 있게 만드는 수단의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회비나 회원 참여 등은 ‘시민들의 필요 충족’이라는 사명의 수행을 돕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시민없는 시민운동’에 관한 비판도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Ⅴ. 어떻게 사회적 책임성을 높일 것인가?

이러한 사회적 비판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애드보커시 NGO로서의 한국 시민단체들이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Carroll은 자신의 삼차원 기업의 사회적 성과모델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반응양식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시민단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ㆍ저항(Reaction)
ㆍ방어(Defence)
ㆍ수용(Accommodation)
ㆍ주도(Proaction)

주도적 양식이란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이슈와 문제들을 사전에 예측하고, 사전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그 사회적 반응은 저항 → 방어 → 수용 → 주도적 양식으로 발전하며, 그럴수록 단체의 목표를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우리는 기존의 시민단체들에 대한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보다 주도적으로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잠재적 의제들을 개발하고, 스스로에 대한 평가의 모형과 기준을 정립함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 솔선수범하여 실천함으로써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적절한 비판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긍정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비판으로 그 초점과 관점을 이동시키거나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운동의 실행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비교하여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와 실천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이다. 첫째는 기업의 경제적 성과는 계량화할 수 있어 측정과 평가가 용이한 데 반해 시민단체의 사회적 성과는 본질적으로 가치지향(value-oriented)적이어서 계량화가 불가능하며 측정ㆍ평가가 매우 어렵다. 둘째로 목적 수행의 방식에 대한 사회적 수용에 대해서도 기업의 경우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한 도덕ㆍ윤리가 확립되어 있는 데 반해 시민단체의 경우에는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점이다. 기업에게 요구되는 도덕ㆍ윤리는 대체로 앞서 언급한 시민단체의 보편적 책임성에 해당되는 것들로써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내용들이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의 경우, 이러한 보편적 책임성 위에 ‘특수한 책임성’이 부가되는 데, 이는 전체로서의 사회 및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가치체계와 깊숙이 연결되는 것이어서 모두가 수긍할만한 명확한 방향과 원칙을 세우기가 매우 어렵다.

자기규제 메카니즘(self-regulatory mechanism) 도입의 필요성

선진국 및 국제시민사회에서 NGO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용하는 메카니즘들은 다양하다. 이러한 도구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많은 경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와 기대수준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조합을 이뤄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으로는 자기규제(self-regulation) 메카니즘을 들 수 있다.

자기규제 메카니즘은 NGO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관한 헌장이나 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은 행동규범(혹은 윤리규범) 등을 제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것이다. 2006년 상반기에 CIVICUS, ActionAid International, Oxfam International, Transparency International 등 유력한 11개 국제 NGO들이 참여한 “국제비정부기구 책임성 헌장(International NGO Accountability Charter)'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이와 같이 참여하는 단체들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헌장 혹은 행동규범들이 제정되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여러 기구들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규제는 본질적으로 자율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 NGO들은 자유롭게 특정한 헌장 혹은 행동규범을 지킬 것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이러한 자율성이, 시민단체들의 이행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규제의 가장 근본적인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타당한 비판은 아니다. 자기규제 메카니즘을 채택하는 거의 모든 기구들(Initiatives)이 참가단체들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들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러 나라에서 개인, 기업, 재단 및 정부를 포함하는 기부자들은 NGO 행동규범에의 참가여부를 그 단체에 대한 기부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행동규범에의 참가 여부가 그 단체의 사회적 평판과 신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적 이미지와 공신력을 유지 혹은 증대하기를 원하는 단체들은 이에 참여하게 된다. 더욱이 NGO들이 수적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활동분야도 다양해지면서 자신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데, 높은 수준의 자기규제 기구(Initiative)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행동규범이 제정되고 NGO들이 이에 서명하는 것만으로는 NGO의 책임성을 증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행동규범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서명한 단체들이 의무적으로 행동규범 이행에 관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필요한 경우 개선권고안을 채택, 이를 이행토록 하는 등의 방안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자기규제 메카니즘 외에 각 단체의 사회적 보고(public reporting) 및 정보공개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여 의무적으로 이행하도록 한다거나 단체활동의 수혜자를 포함한 다양한 구성원들이 단체의 활동과 프로젝트의 계획에서 평가에 이르는 과정에 의미있게 참여하도록 하는 참여프로세스를 마련하도록 강제하는 방안, 사회 감사제(social auditing) 등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활용될 수 있다.

Ⅵ. 글을 맺으며; NGO 사회적 책임 운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기규제 메카니즘은 한국 시민단체들에게도 매우 유효하고 적절한 접근방식이 될 수 있으며, 시급히 채택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해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의 책임수준에 도달한 단체들이 함께 모여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 운동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진국 및 국제시민사회에서의 전개된 ‘NGO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와 실천의 성과를 토대로 한국의 정치ㆍ사회적 맥락과 시민운동의 역사적 경험 및 특성에 맞게, 무엇보다 현재의 시대정신과 시민적 기대수준에 적극 부응하는 방향으로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 헌장 및 행동규범’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에 정통한 학계와 함께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의 방향과 핵심적 의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합의수준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성은 조만간 우리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민단체에 대한 기존의 비판들이 이미 시민단체의 사회적 책임에 관련된 이슈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다. 시민단체는 선택에 직면해 있다; 저항하고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수용하고 주도할 것인가? 선택을 미룰 수 있는 시간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모든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책임성’의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너무 늦지 않게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된다.

NGO 사회적 책임 운동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의 자발적 노력과 더불어 사회각계의 협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계와 언론 등이 NGO 사회적 책임성에 관해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NGO의 사회적 책임성에 관한 이슈가 시민단체의 다양성과 창의성, 역동성을 제한하는 규제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시민단체가 처해 있는 열악한 현실을 무시하고 실현불가능하거나 측정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근거로 시민단체를 비판함으로써 시민단체의 성장잠재력과 가능성을 훼손해서도 안된다. 시민단체의 건전성, 지속가능성 그리고 신뢰성의 증대를 목표로 필요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시민단체는 우리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지속적으로 더욱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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