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의 비정규직 20대 여직원, 해고뒤 자살
유서 등 통해 기업대표의 성추행 폭로하기도
6일 YTN에 따르면, 국내 굴지의 경제단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25살 권 모씨는 퇴직한 지 한달도 안된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일한 버팀목을 잃은 홀어머니는 "결국은 제가 잘 보듬어서 갔었어야 하는데, 제가 좀 바빠서 얘기를 잘 들어주지도 못하니까 혼자 괴로워하다가...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라고 비통해 했다.
대학을 조기졸업한 권 씨는 2년 전 비정규직으로 문제의 경제단체에 입사, 중소기업 CEO들의 교육프로그램을 관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권씨는 초과 근무와 주말 근무가 잦았지만, 특유의 쾌활함을 잃지 않았다.
권 씨의 전 동료 직원은 "사실 처음에는 업무 능력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시켜준다고 얘기가 나왔었어요. 업무 능력도 좋고 사람들한테 싹싹하게 잘하고 정말 원우들도 좋아했어요"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고, 그럴 때마다 간부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에 힘써주겠다고 다독였다.
권 씨 상사는 인터뷰에서 "느낌상 이런 정도면 충분히 전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봤고, 제가 지속적으로 '괜찮다, 될 수 있을 거다'라고 말을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권 씨의 또다른 상사도 "1년이 넘게 근무한 상황이었으니까 좀 지켜보고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지 않겠냐... 전환이 된다든지 다른 회사에 우리 통해서 채용이 된다든지..."라고 말했다.
권 씨는 조금만 참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갖은 어려움을 견디고 또 견뎌냈다. 그런데 권 씨의 이메일에선 스토킹과 상습 성추행을 당한 정황도 나왔다. 권 씨는 상사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워크숍 회식 자리에서 한 기업 대표가 제게 블루스를 추자고 하고...”, “팔, 어깨에 손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 저만 찾아 돌아다니고...”라며 성추행을 호소하기도 했다.
교육프로그램이 끝난 뒤 열린 회식자리에서 아버지뻘 되는 기업인이 몸을 더듬거나, "XXX"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 발언을 수시로 들어 치욕스러웠다는 내용이었다.
권 씨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대표는 이에 대해 YTN과의 인터뷰에서 "전라도에서는 XXX가 학교 수업 안 가고 놀러 가는 걸 XXX라고 해요"라면서, 문제의 단언에 '성행위' 의미가 있다는 걸 몰랐다는 얘기는 질문에 "그거는 진짜 몰랐어요, 정말로 진짜 몰랐어요"라고 부인했다.
권 씨에게 끈질기게 연락하며 '오빠'라고 부르라던 기업대표는 오히려 "본인이 술에 취해서 내 다리에 앉고, 그런 행동을 보여서 제가 이건 전혀 아니다..."라며 권 씨 탓을 하기도 했다.
권 씨는 상사들에게 이같은 성추행 사실을 알렸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고, 결국 권 씨는 2년 계약이 끝난 지난 8월 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6일 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권 씨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토로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어른들을 원망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권 씨는 유서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느 정도는 살 수 있겠지. 하지만 내 나이 스물 다섯에 너무 큰 착각? 오해?”라면서 “내가 꽤 긴 시간, 2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정을 쏟고 기대하고 미래를 그려나갔던 그 경험들이 날 배신하는 순간, 나는 그동안 겨우 참아왔던 내 에너지들이 모조리 산산조각 나는 것 같더라...내가 순진한 걸까?”라고 절규했다.
YTN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몸부림쳤던 20대 계약직 여성의 죽음. 그 이면엔 사회적 약자로 힘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의 고민과 아픔이 숨어 있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