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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권력전쟁, 그 이면의 거대부패

<기고> 공청단, 상하이방, 태자당의 합종연횡

최고급 사우나의 불

당사자들에게는 참 안된 이야기이지만 싸움구경 불구경 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 "저런 저런 이를 어째",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상황이 일찍 끝나게 되면 "에이 싱겁네" 하고 돌아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인간이 지닌 말초적 가학성과 관음증의 한 모습이라고 할까.

지금 중국의 상황이 목욕탕에 불난 형국이다. 그것도 일반인들의 질시의 대상이 되던 최고급 멤버쉽 사우나에서 말이다. 그 안에서 싸움까지 났다는데 아직 뛰쳐나오는 사람은 없다. 불을 낸 한 사람 벌거벗겨져 나와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 안의 싸움은 단순한 투쟁을 넘어서 전쟁이다.

권력 투쟁이란 말을 넘어서 권력 전쟁 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은 우리 서방 세계라면 파워 게임 혹은 선거에서 졌다고 해도 대개는 창피하고 분통이야 터지겠지만 집에 가서 애라도 보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부인이 피아노 선생을 해도 되고 영어 과외라도 해서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 곳은 그렇지 않다. 한번 밀리면 끝장이다. 그러니 죽느냐 사느냐의 치열한 전쟁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사이좋게 나누면 될 텐데 왜 싸울까?

권력은 부자 사이에도 나누지 못한다고 했던가. 중국을 '죽의 장막' 사회라 한 적이 있었다. 지금 같은 개명천지에도 아직 장막은 걷히지 않았다. 천안문 사태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면서도 도무지 제대로 된 소식이 나오지 않아 또 퍼즐을 맞춰야 한다. 하기는 전쟁이라고는 해도 워낙 만만디의 나라라 이런 류의 전쟁에서 속전속결은 전례가 없기는 하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그 참혹한 전쟁의 상황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국가라는 절대 권력의 필요와 명령에 의해서 나와는 아무 원한이 없는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그런 막장의 상황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

보시라이 사태로 촉발된 중국의 권력 전쟁이 부글부글 끓고는 있지만 아직 어떻게 끓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비유한대로 멤버 쉽 목욕탕 안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각 정파 관계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흘리며 반체제 사이트며 홍콩을 비롯한 해외 언론을 중심으로 사실과 허구가 버무려진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 떠돌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던 왕리진 망명사건(2.7)이 일어난지 석달이 다 돼 가고 보시라이가 공식적으로 해임 당하고 당국의 조사를 받기 시작 했다고 발표(3.25)된지 한 달이 넘었다.

우리 같으면 벌써 뭔 결론이 나도 났을 시간인데 그쪽은 만만디다. 오늘(4.27)은 또 보시라이가 쿠데타까지 기도했기에 이를 조사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어려운 가운데도 큰 조각의 퍼즐을 맞춰보면 후-원(湖-元)으로 지칭되는 현 권력 공청단의 집중포화가 터져 태자당이 큰 타격을 입게 되는가 했더니 상하이방이 나서면서 오히려 싸움은 상하이방과 공청단의 대결 양상으로 비춰진다.

이 과정에서 덕을 보는 사람은 태자당 적자로 차기를 예약한 시진핑이다. 진작부터 그랬지만 권력 이양 준비기라 할 수 있는 요즈음 그는 대단한 심모원려의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두루미와 조개가 싸우는 통에 둘 다 얻은 어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입장이 난처해질 뻔 했던 시진핑에게 활로를 열어준 이는 상하이방의 노(老)돌격대장 저우융캉 (周永康)이다. 보시라이를 구하겠다며 나섰던 그가 코너에 몰리면서 몸이 달은 상하이방에서는 태상왕 장쩌민까지 나서야 했던 모양이다.

와병설이 돌면서 평소 상하이에 머물고 있던 장 전 주석이 이달 초 베이징으로 상경해 상주하면서 이런 저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단다. 그가 공청단을 강력 견제하면서 오히려 시진핑 체제의 조기 정착이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됐다는데...

상경한 뒷방 호랑이

소식통들은 장 전 주석이 4월 6일 베이징으로 비밀리에 상경해 군부 고위층을 상대로 중요한 연설을 한 것을 필두로 나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한다.

장 전 주석의 이번 상경은 태자당과 상하이방을 넘나드는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등 원로들의 아이디어라는데 그만큼 상황이 긴박 하다는 얘기다. 장쩌민과 주룽지야 그렇다 하더라도 칩거한다던 쩡칭훙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유명한 책략가인 그가 18차 당대회의 인사를 앞두고 막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쩌민은 표면적으로는 쩡칭훙의 부친인 쩡산(曾山) 전 내정부장 40주기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쩡산은 1972년 4월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장쩌민의 북경 상경 소식에 대해 그의 와병을 강력 주장하는 측은 전혀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다면서 이 또한 카더라 통신의 하나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 전 주석이 지난 17일 베이징에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과 면담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한 것을 보면 영 와전은 아닌 모양이다. 스타벅스 측은 만남에 대해 노코멘트라고 했다는데 이 경우 부인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여담이지만 슐츠 회장의 생활 철칙이자 큰 사업 자산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점심은 매일 다른 사람과 먹는다’ 란다. 그러니 그 미팅에서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장쩌민의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정상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장 전주석이 베이징 상경 후 먼저 찾은 곳이 역시 중앙군사위 사무실이 있는 시산(西山) 이었다는데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진타오가 물갈이를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군부내 장쩌민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전 주석은 군부 고위층들에게 “시진핑이 18차 당 대회에서 중앙 군사사위 주석과 총서기직을 맡아야 한다. 누가 군사위 주석 승계를 2년 더 미뤄야 한다고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인가”라고 말했단다. 군사위 주석이야말로 자신도 마지막까지 후진타오에 넘기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권력 아닌가.

그는 “보시라이 사건을 정치투쟁으로 연결한 내부 범인이 있으며 이들과 함께 시진핑, 저우융캉 동지를 파괴하고 당을 분열시키며 군대를 분열시킬 것이냐”고 격앙하면서 “나는 여전히 당신들 군사위원회의 수장”이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의 움직임과 원로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보여주는 소식이다.

장쩌민 전주석의 상경설이 카더라 통신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해도 상하이방에서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는 자파 노 선봉장을 그냥 두고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보시라이 낙마와 관련 상하이방에서 이를 용인하는 대신 후임 상무위원 배정을 놓고 빅딜을 했는데 이 딜 가운데는 군사위 주석직의 동시 이양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믿을만한 소식통들이 전하는 바다.

다른 중요한 퍼즐로는 북경일보 사설이 있다. 다른 것이 모두 카더라 통신이라도 이 만큼은 해당되지 않는다. 3월 29일자 이 신문 사설은 ‘총서기는 당의 영도적 직무를 수행할 뿐 최고 영도기관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진타오에게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임을 상기시키며 월권(越權)하지 말라는 경고를 던진 것이다. 북경일보는 베이징시 당 기관지로, 현 베이징시 당서기 류치는 장쩌민의 심복이다.

재미있는 일은 며칠 뒤인 4월 5일자 베이징일보는 논설위원 명으로 ‘총서기의 당부를 명심하자(牢記總書記的囑托)’란 사설을 게재했는데 제목만 보면 지난번 사설로 경을 칠까봐 얼핏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은 엄청난 조롱이라는 것이 내외의 분석이다.

총서기의 당부를 명심하라는 말의 내용은 뜬금없이 녹화 사업과 나무 심기를 강화하라는 후진타오의 예전 말을 전달하는 것이었단다. 이 판국에 나무심기라....

류치의 이런 특별한 행동은 현재 베이징 정세를 반영하는데 은밀하게 감춰진 살기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번 사설은 1천여 자에 불과했고, “총서기의 당부를 명심하자”와 “총서기의 당부를 저버리지 말자”는 말이 4번이나 반복됐지만 나무심기 말고는 내용도 없었고, 총서기에 대한 실질적인 지지도 전혀 없었단다. 거기서 말한 총서기가 누굴까.

또 중국 국방부 사이트에 따르면 청두(成都)군구 민병공작회의(民兵工作會議)가 4월 19일 윈난성 쿤밍(昆明)시에서 열렸다.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자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인 량광례(梁光烈)가 회의에 참석해 한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량광례는 덩샤오핑 이론과 장쩌민의 ‘3개 대표론’ 사상을 견지할 것을 강조하면서 후진타오의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고 한다. 그 며칠 전 량은 후진타오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군부 인사 대열에 있었다.

일련의 사실을 종합하면 현재의 국면이 후원 공청단이 원했던 쪽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위기감을 느낀 상하이 방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합종연횡했던 세 계파

이번 보시라이 사건을 공청단과 태자당간의 파워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내막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공청단이 현 권력이라면 상하이방은 과거의 권력이었고 태자당은 미래의 권력이다.

이들 세력은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합종연횡을 계속해 왔다.

실은 몇 년전만 해도 공청단과 태자당은 아직도 막강한 상하이방에 대항하는 연합구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 구도는 2002년부터 형성돼 2007년 한층 공고해졌다는 게 정설이다.

똰파와 타이쯔 연합은 2006년 장쩌민 전 주석이 이끌던 상하이방의 차기 주자였던 천량위 상하이 당서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당시 장쩌민은 자신의 황태자인 천량위의 체포에 대해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형사 처분은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2007년 천량위에 대한 기소를 의결했다. 상하이방의 우방궈, 자칭린, 리창춘 3명은 반대했으며 원자바오, 우관정, 뤄간 3명은 찬성했다. 쩡칭홍이 기권해 3대3인 상황에서 의장인 후진타오가 찬성해 천량위의 기소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태자당은 상무위원에 한명도 진입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장쩡홍은 당시 범 상하이 방으로 분류 되는 인사였다. 실제 장쩡홍은 장쩌민 시대에 그를 위해 무수한 많은 일을 해냈던 인물이다.

어쨌든 그 직후 공청단과 태자당의 협공으로 위기에 몰린 장 전 주석이 택한 카드는 태자당인 시진핑 당시 저장성 당 서기였다. 내가 못 먹는 감 너도 못 먹는다는 식이었다. 이래서 양측의 환대 속에 시진핑은 상하이 서기로 부임한다.

시진핑의 부상 이후 태자당은 비로소 힘을 받기 시작해 그 후 공청단-태자당-상하이방 3자 정립 정치지형이 갖춰지게 됐다. 태자당은 처음에는 공청단과 가까웠지만 집권 공청단이 세를 계속 넒히는 과정에서 차기 대권을 놓고 리커창과 시진핑이 격돌 했고 상하이방이 적극 시진핑을 밀면서 상하이방과 가까워졌다고 분석되고 있다.

다시 이번사태로 돌아와 장쩌민이 다시금 시진핑을 적극 지원하는 구도라면 칼을 빼든 후원의 공청단은 이를 저지하면서 시진핑을 압박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은 정반대이기 때문에 시진핑이야말로 정말 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중국 목욕탕 전쟁이기에 시진핑을 먼저 나는 꿩으로 만들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공청단 측은 리커창 카드가 아직 유효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파인 상하이방이 신좌파로 자리매김하려는 보시라이와 긴밀한 관계였고 그를 적극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 안에서 계파간 이념 정책 문제는 그리 큰 갈등 요소가 아닌 듯 싶다. 그보다는 역시 꽌시(關係)가 먼저인 모양이다.

절묘했던 시(施)의 후계자 행보

여기서 우리는 그간 시진핑의 행보 그리고 시진핑과 현재의 권력 후진타오의 관계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특히 이번 보시라이 사태를 보면서 최근까지 보여 줬던 보시라이의 충징시에서 행보와 시진핑이 저장성과 상하이시 서기 때 보인 모습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시진핑은 상하이로 오기 전 저장에서도 후진타오가 제창한 정책에 철저히 코드를 맞추었다. 후진타오는 16차 당대회 이후 조화사회를 축으로 하는 '과학적 발전관'을 천명해 '3개 대표론'을 주장한 장쩌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했다.

시진핑은 이에 코드를 맞춰 조화로운 저장(和諧浙江)이라는 구호를 내놓았다. 그는 또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을 저장에 구체적으로 구현한 '팔팔전략(八八戰略)'을 수립해 발표했고 일정한 성과를 올렸다. 시진핑의 이런 태도는 상하이시위원회 천량위의 행보와 대비되면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큰 환심을 샀다.

거시적 조정, 통제정책에 반대하던 중국판 시장주의자 천량위 상하이 서기는 결국 후진타오의 철퇴를 맞아 실각했고 그 자리를 시진핑이 차지했던 것이다.

상하이 당서기로 부임했을 때 시는 장쩌민의 은근한 기대를 무색하게 하면서 천량위 '독립왕국'을 타파하는 데 앞장섰다. 천량위는 다락처럼 치솟는 부동산 문제에는 손을 대지 않고 방관하면서 중앙의 거시경제정책을 저지하는 데 앞장섰다. 시진핑은 부임 즉시 상하이 부동산국 부국장을 비롯한 인사들을 조사해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또 시진핑은 부패척결운동을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벌여 '상하이방'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해 후진타오에게 확실한 환심을 샀다. 특선 비디오까지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단다.

시진핑이 상하이 1인자로서 머문 기간은 겨우 7개월 4일이다. 그때 보여준 모습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후진타오에게 황태자로 용인받기 위한 '충성맹세'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한편으로 상하이 당 명의로 장쩌민 어록을 출판해 장을 달래는 수완을 보였다.

이밖에도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후야요방 전 서기를 두고도 끈끈한 연이 형성돼 있다.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은 후야오방 서기가 대규모 학생시위 이후 '자산계급 자유주의'를 저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수 원로그룹의 역공을 받아 87년1월 실각했을 당시 홀로 후야오방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시중쉰도 정치국에서 쫒겨나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부위원장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나야 했다.

당시 시중쉰이 보인 선비 같은 모습은 당내에서 광범위한 찬사를 얻었는데, 특히 후야오방에 의해 발탁된 심복 후진타오에게 큰 인상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정파논리에 의해 리커창을 밀기는 했지만 후진타오는 결코 시진핑 카드를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니는 대목이다.

반면 보시라이는 신좌파적인 정책, 이른바 충칭모델을 요즘말로 ‘빡세게’ 구현하면서 그 과정에서 후원 공청단 세력에게 큰 스트레스를 줬다.

실제로 충칭은 보시라이 부임 이후 지난 4년간 강력한 정부 주도 정책으로 소득 격차를 확대시키지 않으면서 고속성장을 이루어냈다. 전체 GDP는 지난 4년간 2.1배 늘었고, 1인당 농민 소득 이며 도시 주민 소득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화주의 문화 고취, 범죄 척결, 격차해소라는 목표에 분명 일정한 성과를 보인 것이다.

횃불 속 4만명의 마오쩌뚱 찬가 합창

이를 위해 알려진 대로 따헤이(打黑), 즉 사회의 암흑세력을 척결해 민중에게 경제 활동의 안정적 활동 공간을 제공 한다는 민생 정책을 추진했다. 또 민중의 일체감 및 단결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사회주의 가요를 부르며 도덕 및 사상관념의 정합을 도모한다는 창홍(唱紅) 운동을 제창했다.

이처럼 충칭의 사례가 모델이든 경험이든 일정한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의 확대, 그리고 제도화 투명화에 초점을 맞추는 중국의 현 지도부나 이런 방향으로 미래 권력 구도를 짜려는 입장에서 보면 보시라이 노선은 돌출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창홍 따헤이 과정에서 보시라이는 너무 앞서나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따헤이 과정에서 충칭 공안국은 약 5만 여명을 체포했다. 알려진 대로 공청단 계열 사람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정식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약 1만 3천여 명에 불과해 과도한 단속과 인권 침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또 창홍을 위해 큰 예산을 사용 했다는데 4만 명이 참가한 홍가 부르기 대회는 단 한 차례 행사에 4450만 위안(약 76억 원)을 썼으며 8천명이 참가한 합창대회를 치르기 위해 2080만 위안(약 35억 원)을 썼단다. 횃불이 이글거리는 광장에서 4 만명이 동시에 부르는 모택동 찬가와 보시라이에 대한 환호는 현 지도부로서는 끔찍했던 문화 혁명의 기억이 되살아나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신좌파 충칭모델이 완전 폐기됐고 타도됐다고 보기는 섣부르다.

시진핑이야말로 내심으로 민보다는 당과 관을 앞세우는 신좌파적 정책을 지향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그간 행보도 그랬고 또 그는 후계 체제의 마지막 관문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피선 된 뒤, 3일후 바로 충칭을 찾아 충칭의 업적에 대해 적극 긍정적인 평가를 보인 바 있다.

또 '충칭 모델'은 후진타오의 통치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대립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앞서 언급한대로 제4세대 지도부의 핵심인 후 주석은 전임 장쩌민 주석이 신우파로 평가받던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분배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후,원,시(湖元施)의 개인적 입장이야 어떻든 우클릭 개혁파들은 보시라이가 충칭시 서기로 재임하던 기간 추진했던 대규모 재정 투자와 초대형 프로젝트를 전면 조사하고 있다. 재정적자와 부패, 비효율의 상징으로 충칭모델을 몰아가고 있다. 홍색 좌파 사이트들을 폐쇄하면서 조화와 절충을 내세운다는 광둥모델의 전면적 확산에 나설 태세이기는 하지만 아직 정해지고 알려진 바는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의 보시라이 사태가 기획된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 왜 절호의 기회를 맞은 공청단이 빼낸 칼을 계획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있는가.

바로 자신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부패 문제다. 그리고 자신들이 내세울 업적이 없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10년, 그동안 경제 자유화는 더 진행됐지만,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공산당 간부의 부패가 상상을 초월 정도로 만연돼 있다. 작금의 부패는 국제 규모다. 해외은행이 꼭 등장한다. 2011년 적발돼 현재도 조사를 받고 있는 전 철도부장관은 스위스 은행계좌에 28억 달러를 입금했다고 관영 언론이 보도했고 또 전 산둥성 부성장은 90억 달러의 자금을 횡령했다가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

‘민나 도로보데스’라는 굴레

착복과 뇌물수수, 공산당 간부의 부패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 1인당 GDP 5,000달러 국가로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문학적 액수가 됐다.

공산당 간부들은 열에 일곱 여덟은 자신의 자녀를 구미에 유학시키고 있으며 다수는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단다. 분명 과장과 왜곡은 있겠지만 보시라이 경우는 다 까발려져 있고 실은 시 부주석의 딸도 하바드에 유학 중이다. 개혁을 그토록 주창하던 소문난 청백리 원자바오 총리 같은 이도 저우용캉 사태에서 부인이 기업가로부터 큰 돈을 후원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입을 꾹 다문 형국 아닌가. 원자바오보다 더 청백하다는 후진타오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 할 것 같다. 며칠 전 홍콩 언론에서는 광둥(廣東)성의 한 시위에서 ‘후진타오는 솔선해 재산을 공개하라’는 피켓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5 년간 해외로 도피한 4천여 명 간부급 인사들이 가져나간 현금이 1천억 달러에 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혀 근거 없는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부패지수를 보면 중국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산당 1당 독재 지배구조상 부패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권력을 제한하는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에 의한 감독과 모니터링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는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또 공작비라 불리는 월급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다. 중국의 공직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가 부장(장관)이다. 지방 큰 성의 당서기도 이에 준하는 지위로 꼽히고 정치국 상무위원도 마찬 가지다. 이들의 급료는 월 1만 위안 수준이란다. 우리 돈으로 1백50만원, 이 돈으로 장관의 품위를 유지하고 어떻게 자식들을 하바드에 보내는가.

최고위급이 이럴진대 그 아래는 어떻겠는가. 한마디로 말해 실제 돈을 버는 재계를 빼고 오늘날 중국의 정관계며 학계, 문화계는 꽌시경제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뇌물경제 지하경제다.

내치 문제도 그렇다.

덩샤오핑의 가장 큰 업적은 개혁개방정책이고, 장쩌민 시대는 시장경제의 골격을 만들었다. 후진타오 체제에선 민주화된 정치개혁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경제효율성과 자원효율성은 향상되지 못했고, 산업구조의 전환도 늦어졌다.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장쩌민 시대 활발했던 국유기업의 민영화도 후진타오 체제에선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대변되는 민영기업 퇴보 국유기업 확장 현상이 발생했다.

시장경제와 1당 지배 정치체제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선 민주화된 정치개혁, 다시말해 합리적이며 투명한 정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후정권은 정치의 부패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커지자, 투명성을 강화하기 보단 언론과 인터넷의 ‘관리통제’를 강화하면서 언론의 자유가 더 봉쇄돼 버렸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후진타오의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패 투성이고 문제 많은 체제가 어떻게 망하지 않고 버티느냐 의문이 들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파이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이 민도의 차이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잣대로 중국과 중국 국민을 재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베이징 상하이의 생활수준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우리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정치에 관심두지 않으면 아주 살만하단다. 저들의 얘기다. 필자도 최근에는 서쪽 오지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곳에서도 굶는 사람이 없단다. 중국이란 나라가 존속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란다. 저들에게 마오쩌뚱은 살벌하고 탐욕스런 황제들 대신에 그래도 민중을 얘기했던 영명한 새 황제고 덩샤오핑은 자신들을 굶지 않게 해준 역사 이래 최고의 지도자다.

지도자 덩의 노선에 따라 새로 정비된 공산당의 취지와 논리는 정말 좋은데 일부 탐관오리가 먹칠을 하고 있다 믿는다. 한참 인기 좋던 보시라이는 지금 중국 촌에서는 ‘천하의 죽일놈’이 되어 있단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아니다’

정치에는 관심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도시의 똘똘한 젊은이들과 한참 공들여 사귄 뒤 심중을 떠보면 저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다.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미국이란 나라가 잘 살기는 하지만 문제점으로 치면 자신들보다 더 많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

관씨 경제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공무원 교사는 워낙 월급이 작으니까 그들 덕에 장사해서 돈 버는 우리가 나눠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크기에 대한 불만은 가끔 있어도 그게 사회생활 아니냐는 식이다.

하기는 우리도 60-70년대에 그랬다. 그때 월급으로만 사는 공무원 교사가 있었다고 믿는 국민이 있을까. 동회에서 등초본 땔 때 급행료 안낸 사람 어디 있고, 교통 범칙금 대신 담배 값 한번 안 내준 사람 어디 있던가.

한마디로 말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부패로 단결해 왔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부끄러운 정설이다.

하지만 겉으로 중국 지도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왔다. 당연히 일말의 진실은 있었을 게다.

이번 사태 직전 인민일보조차도 ‘불완전한 개혁이라도 개혁 없는 위험성보다는 훨씬 낫다’라는 사설을 연속으로 발표했었다. 지도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절박한 메시지였다. 새로운 지도부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런저런 비화와 우여곡절을 딛고 올 가을 출범하는 새 체제는 부패 척결, 부의 편중현상 해소, 부패 꽌시를 양산하는 구조 개선을 앞으로 가장 중요한 통치이념으로 둘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잘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를 긍정적으로 평가 하자면 새 시대 정치개혁을 앞둔 성장통이자 부패 척결의 새로운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아주 잘못된 시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최고위층을 포함 당 간부들도 앞으로는 나름대로 애써 조심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선거 풍토가 개선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 막걸리 고무신 찾는 사람 없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중국 공산당 내부에 그나마 이런 계파라도 있었기에 이같은 내부고발, 자체 정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견해에도 수긍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중난하이라는 멤버쉽 클럽에서 일어난 이번 화재와 싸움은 전쟁의 상황으로 가기는 했어도 공멸하겠다는 위기감에 지금 그 멤버들이 발거 벗은 채 욕탕의 물을 퍼 급하게 끄고 있는 상황이라 보아도 될 듯 하다.

무력충돌이 있었네, 체포사태가 있었네 하면서, 큰불로 번지기를 바랬던 측에게는 실망을 던져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벌써 껐는지도 모른다. 워낙 소문이 나 있기에 그냥 나오기 계면쩍어 나올 기회와 명분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사람은 이미 잡아 놓았기에 그를 천하의 몹쓸 파렴치한 방화범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전혀 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듯 싶다. 언급했듯이 이런 류의 전쟁은 늘 만만디였다. 그리고 저들도 세월에 따라 세련된 방향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상하이 천서기 사건만 해도 3년이 걸려서야 결론이 났다.

이런 중국 공산당과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필자 소개

안동일

1982년 부터 뉴욕에 거주하면서 미주 동아일보 세계일보 라디오서울 등 동포 언론에서 활동했다. 북한을 비롯 수교전 중국, 구소련, 쿠바, 베트남, 니카라구아 등 공산권 국가들을 수 차례 방문, 그 취재기를 여러 매체에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방북 경험을 토대로 한 통일염원 소설 ‘해빙’을 93년 발표했으며 이후 2004년 영구 귀국해 우리 역사와 통일문제에 천착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북관대첩비’ ‘영웅 안중근’ ‘구루의 물길’ ‘장수왕의 나라’ 등을 최근 발표했다.
서울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미국 뉴욕 시립대학 메스커뮤니케이션학과를 다녔고 뉴저지 페얼리 디킨슨 대학 국제관계센터의 연구교수를 지냈다.
안동일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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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24 개 있습니다.

  • 1 0
    지금 한국이

    이런식으로 남 이야기 하듯이 중국 이야기를 할수 있는 처지는 아닐텐데. 정부에서 하는 각종 사업치고 리베이트 없이 진행되는거 하나라도 있냐? 한국이 나라규모는 중국보다 작아도 부패규모는 중국보다 크면컸지 작지는 않다. 저나라는 일당독재라 해먹는 놈이 그래도 소수지만 한국은 민주적으로 아주 돌아가면서 해먹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3 6
    1111

    애들이 머리가 안돌아가니까 이런 소설써도 와~~중국 내부 잘알겠다 이런 헛생각만 하게 되지. 어휴..차라리 그시간에 삼국지나 한번 더봐라.시간 그래도 남으면 초한지도 보고..그게도 중국 내부 알려주겠다.어차피 권력 다툼이란 다 그런거니까.

  • 3 4
    1111

    뷰스애들은 다 바보인가? 글 도입부만 읽어 봐도 지도 소설이라고 인정하는 글이 먼 중국 내부를 잘말해주냐? 중국 정치의 내부 권력 다툼에 대해서 팩트 있는 기사냐 이게? 지 상상이지?왕리쥔 망명 사건의 내막도 알려진바가 전혀 없고 소설들이 난무하고 더구나 보시라이 실각도 그렇고 내막에 대한 팩트는 전혀 없고 소설처럼 상상해서 쓴다고 지도 인정한 글을.

  • 4 0
    원틀

    글쎄 이글이 친미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지난번 글과 함께 중국을 바로 알고 경계하자는 의미와 취지에서 쓴글로 여겨짐, 우리는 중국을 바로 알아야 한다. 다소의 견강부회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라는데 한표.

  • 1 4
    5555

    글도 잘 읽어바라,장쩡홍은 머야? 듣도 보도 못한 애는 갑자기 왜 튀어나와.ㅋㅋㅋㅋ 쩡칭훙이란 애는 태자당 상무 위원인데 .장쩡홍은 머냐? 글 쓴애도 도대체 상무위원 이름도 제대로 쓸줄도 모르는애 글을 어휴..이런 소설만 올리니 정확한 중국 내부 사정이 알려지나...

  • 1 5
    5556

    글 쓴 애도 먼 내용인지도 모른다는 처음 글 부분하고 중간에 이것저것 언론 기사들 조각맞춰서 자신의 의도하고 생각에 따라서 (팩트 없이) 쓴 글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한마디로 소설이란 것인데 이런 글을 여기에 왜 실는거야? 글 쓴이 경력이 그리고 벌써 디킨스대 국제관계센터 연구교수 이러면 벌써 사상이 친미적인 관점에서 쓴거란 것이 나오는데

  • 5 0
    원틀

    후진타오 지도부는 운이 좋다고 여겨진다. 내부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G2 반열에 오른것은 유럽과 일본이 정말 죽을 쑤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앞으로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화산처럼 터져 붕괴 될지도 모른다. 빈부격차 양극화 그리고 부패는 정말 큰 문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닐듯 싶다. 좋은글 감사.

  • 4 0
    김세동

    -----------------------------------------------
    아, 재미있다.
    잘 읽었습니다.
    감칠맛나게 잘 쓰시네요.
    감사합니다.
    ----------------------------------------

  • 2 0
    권력

    한국과 다를 바 없네...
    개인의 사욕을 위한 권력추구...

  • 3 9
    55555

    이글은 진짜 소설책도 아니고 글 쓴이 경력도 의심스럽고 뼛속까지 친미로 보이는 사람이 보는 중국에대한 시각이라 정확한 팩트가 전혀 아닌 이런 글을 왜 뷰스에 실지? 조중동이 바라보는 북한 시각이랑 전혀 다른게 없는 글을 먼 기사라고. 중국에 가본적도 수교전에 몇차레 관강차 간 것처럼 보이고 이런 글을 싣는 이유가 머지?뷰스도 중국 좀 까고 싶나?

  • 0 4
    멸쥐

    앞뒤가 안맞는 말씀이구만
    원자바오 후진타오가 아무 성과 없다니?
    지난 10년은 중국의 고도성장기였다
    몰론 빈부격차가 확대된것은 엄청난 실패지
    그런면에서 차기 지도부가 해결해야할 과제이지만 그래도 실패했다는 말은 맞지않다

  • 9 2
    까칠한사람

    중국은 아직 개발독재시대죠..
    그러니 우리나라 박통 때 같이 국민들이 다 마당쇠들입니다.
    고차원적인 정치를 논할 토대가 안되는 겁니다.
    배가 좀 부르면 사회를 보는 시각도 급변하게 마련이죠.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눈을 뜰 때가 국가로선 아주 위험한 겁니다.
    특히 독재국가에선 더 위험하고요...
    다음 10년 시진핑시대가 그럴껍니다.

  • 1 11
    별미친새끼가다있네

    철학과 나왔다는 놈이
    이 따위로 글을 쓰냐?
    논점도 없고 논리도 없고 비전도 없고..............
    이런 꼴통, 아 씨ㅐ발

  • 11 3
    000

    중국도 부패하고 한국도 부패한데 저기는 최소한 엘리트들이 긴장감을 가져야할 이유가 존재하고 때로 일벌백계로 중형에 쳐해지는데 이쪽은 만사태평이지. 끽해야 망신당하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정도지

  • 4 5
    1111

    중국에 대한 많은 기사들을 보면 이를 확대.과장해서 중국에 자스민의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이는 대부분의 기사가 소설과 같은 위의 글처럼 근거가 하나도 없는 기사가 나오는 원인이 되는데 이는 기사의 출처가 미국의 정보계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아마도 ned나 cia).위 글을 보느니 삼국지를 다시 읽는게 도움이 될 것이다.

  • 2 1
    1`111

    중국이 18대 전대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정치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이것은 한국으로 본다면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 혼란이 생기는 것과 같다.올해는 특히나 18대 전대에서 많은 상무위원이 교체될 것으로 보여서 좀더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이다..이는 민주국가에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혼란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 5 1
    감사

    중국을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6 11
    부패의 추억

    글 이렇게 써서 저널리스트가 밥 벌어먹고 살겠나?
    한참 읽어야 논지와 주제가 보이고,
    논리도 뒤죽박죽이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
    내용을 읽다 지치게 만드는...

  • 9 0
    멍청도

    좋은글감사

  • 0 1
    중국은

    미국보다 더 나쁜 상전

  • 0 2
    그래봐야

    반민중 반 민주주의일 뿐이다
    종미에 이어 이제는 종중이냐?

  • 6 20
    ㅇㅇ

    뷰스앤뉴스도 서구똥개 신문이군....

  • 18 1
    중국은 중국

    공산당정부 중국은 역시 과거 봉건왕조 논리가 통하는 나라. 21세기에도 이런 논리가 성공할련지는 지켜볼 문제이지만, 중국의 본질을 정확히 알아야 미중의 패권다툼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됨. 좋은 글 감사...

  • 20 0
    멍이네 청이

    좋은 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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