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1대1로 싸우면 누구에게도 진다
[김행의 '여론 속으로] <2> 고건 '탭핑 정치’의 한계
물론, 고건은 지지율 20%를 웃도는 막강 후보다. 손학규는 고작 2~3%의 지지율로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 중 가장 경쟁력이 낮다. 그래도 손학규가 이긴다. 구도 때문이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구도 싸움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강금실 후보는 처음엔 마치 ‘무적의 용사’처럼 보였었다. 당권 경쟁을 놓고 정동영, 김근태는 그녀를 잡기 위해 애를 태웠다. 그녀의 몸값은 계속 올랐다. 출사표를 던졌다.
참담하게 무너졌다. 왜 졌을까? 선거가 본격화하면서 강금실의 실체가 드러나서일까? 막판에 급습한 오세훈 후보 때문에? 아니다. 그녀의 패배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녀의 열린우리당 입당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도,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그래서 한나라당에서는 외부 인사를 수혈해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폈을 때에도, 선거전문가들은 ‘열린우리당 강금실은 한나라당 맹형규, 홍준표 중 누구와 붙어도 결국 질 것이다’라고 전망했었다.
구도 때문이었다. 대통령 임기 중 치러지게 되는 선거는 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 될 수밖에 없다.
노 정권의 무능과 열린우리당의 오만은 유권자들을 분노케 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반토막도 못됐다. 이런 구도에서 ‘인물의 상품성’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한나라당에서 누가 나왔어도 강금실 후보는 질 수 밖에 없었다.
대전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의 초반 지지율은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전문가들은 대전을 한나라당의 경합지역으로 분류해 놨었다. ‘인물’이 아닌 ‘당 대 당’ (黨 對 黨) 구도싸움으로 판이 바뀔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건은 ‘2% 부족할 때’ 뿌려진 단비였을 뿐이다.
호남 출신-호남 정당은 자력으로는 대권 쥘 수 없다
고건 대 손학규라는 1 : 1 맞대결을 ‘구도 싸움’으로 다시 보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고건은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본인은 서울출신이라는 주장도 하지만, 만약 그가 서울 출신이었다면 역설적으로 오늘의 그도 없었다. 손학규는 경기도 출신이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었다 치자.
구도는 신속히 영-호남 대결구도로 재편된다. 이 구도에서 손학규의 신분은 영남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을 대표해서 출전하는 경기도 출신 용병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영남표를 다 업고 뛰게 된다는 얘기다.
지난 5 ․ 31선거 기준으로 유권자 비율은 영남 26.94%, 호남 10.65%다. 나머지 지역을 반반씩 나눠 먹는다 해도 게임은 끝이다. 손학규가 이긴다. 그래서 호남출신 정치인과 호남에 근거를 둔 정당은 자력으로 대권을 잡기 어려운 운명에 있다.
DJ의 집권은 DJP의 연합(호남과 충청의 결합)과 이인제의 출마에 따른 '영남표의 분산' 때문에 가능했다. 대통령 노무현은 기본표인 '호남표 + 영남출신 정치인'이라는 구도의 조합과 당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승리, 그리고 약 60%에 달했던 ‘反이회창 정서’에 따른 동진(東進)의 결과다.
DJ와 노무현 대통령은 구도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했었다.
‘오늘의’ 고건은 호남에 ‘죽을 죄’ 진 전두환의 필연적 선택이 시발
혹자는 말할 것이다. 고건은 영남에서도 거부권이 적은 인물이라고. 박근혜를 보라. 그 역시 호남에서 거부감이 적은 정치인이다. 그래도 지난 5 ․ 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득표율은 호남에서의 한나라당 지지율보다도 낮았다. 호남유권자가 한나라당을 찍을 수 없듯이 영남유권자가 호남출신 정치인을 찍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슬픈 한국정치의 구도다.
혹자는 항변할 것이다. 고건은 부친이 호남일 뿐이라고. 고건을 호남출신 정치인으로 몰아 부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그는 지역색이 가장 옅은 화합형 정치인이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물론 그는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처럼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만큼 출세하지 못했다, 호남 출신이기에 가능했다. 그의 정치인생은 민정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호남에 ‘죽을 죄’를 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호남을 잡기 위해 고건을 중용한 것은 필연적 선택이었다. 지금의 고건도 호남출신이라는 강력한 지역기반 때문에 가능하다.
결국 고건은 한나라당 후보와 1 : 1로 붙으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지역구도’를 ‘ 고착된 구도’로만 보면 대한민국 유권자를 얕잡아보게 되는 결정적 실수를 하게 된다. 고착된 구도란 없다. 구도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고건 식 ‘탭핑(tapping) 정치’로는 어느 편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해
이쯤에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고건이라는 인물이 구도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DJ는 ‘최악의 선거구도조차 바꿀 수 있는’ 대단한 집념의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은 ‘명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탁월한 승부사였다. 그 둘은 치열한 대가를 치루면서 구도를 바꿔 갔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몽땅 날릴 수 있는 도박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고건은 무임승차했다. 어떤 희생도 치루지 않았다. 흙탕물이 튈 것이 뻔하니 지방선거도 모르는 척했다. 그에겐 그에게 빚 진 정치인이 없다. 목숨을 함께 건 동지도 없다.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지도 않았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무르익기까지 시간만 가늠하고 있었다.
때가 온 듯했으나 그의 계산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이 쉽게 깨지지도 않을 것 같다. 초조한 기색마저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연대도 가능하다는 말을 흘린다. 이런 식의 슬쩍 슬쩍 두드려보는 ‘탭핑(tapping) 정치’로는 어느 편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그는 정계개편의 중심인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 매력적인 카드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지역구도 때문에, 호남출신이어서, 대통령이 못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대가를 치루면서 만들어 놓은 구도 위에 ‘나를 옹립하라’는 식은 곤란하다. 공짜 점심도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하물며 대권에 공짜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되는가. “강력한 권력의지(very strong will to Power)”를 가지고 쟁탈하는 자만이 주인 될 자격이 있다. 이력서로 뽑는 자리가 아니다. 모두가 주시할 것이다. 그가 어떤 값을 치러나가는지를. 그 값의 정치적 가치를. 그 값이 확인되어야만 그는 진정한 대권주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정치 구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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