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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DJ-JP 이념논쟁

[옛날 정치 지금 정치] <10> 좌파집권 8년의 변화

노무현 정권 3년은 한국의 좌회전이다. 남북문제, 외교, 경제 그리고 대한민국 평가에서 그렇다. 노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자리 매김했지만 꼬리표 신자유주의는 별 의미가 없다.

5.31지방선거 후 열린우리당에선 좌회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들은 지방선거 패인은 경제실패라고 했다. 6월 14일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도 정부의 개혁이 친북, 반미, 반 기업으로 비춰진 게 문제라고 했다. 초선의원들은 생활고 아랑곳없는 대북 퍼주기, 과거사, 세금 등 좌파정권의 중심정책까지 도마에 올렸다. 이쯤이면 열우당은 좌파이념 정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소장파들의 좌파 행진도 주춤해진 상태다.

그럼 좌회전은 멈추는 것인가. 아니다. 노 대통령은 꿈쩍도 않는다. 노 대통령은 좌회전을 멈출 생각이 아니다.

한국정치 좌회전의 출발점은 김대중 정권이다. 김대중씨는 90년대 중반엔 보수 자리를 놓고 다른 정파들과 경쟁했다. 그런데 집권 후 좌회전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의 색깔이 달라졌다. 90년대 중반, 보수를 경쟁하던 정당과 정당 사람들이 2000년대 들어 진보를, 좌파를 경쟁하는 형편이다. 정권의 좌회전이 이런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냈다.

90년대 중반에서 2006년 사이 정세변화는 별로 없다. 그런데 정당과 정치인들은 진보와 보수 사이를 넘나들었다. 국민의 의식도 크게 달라졌다. 이 과정을 보면 정치인 그리고 대중정당들의 말은 이념에 관한 한 믿을 것이 아닌지 모른다. 정당과 정당 사람들은 시류 따라, 민심 따라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다. 보수 쪽도 진보 쪽도 설 수 없는 사람들은 중도다. 이제 그 자취를 더듬어 보자.

90년대 정치권의 이념논쟁은 JP, DJ의 신당 창당이 배경이다. 95년 9월 민주당의 이기택 계열을 떨쳐내고 창당한 DJ의 새천년국민회의는 호남과 운동권 일색. 이래서 보수색깔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보수의 깃발을 걸고 5.6공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여기 포문을 연 것이 자민련 김종필 총재다. 김영삼 정권에서 밀러나 자민련을 창당한 김종필씨는 YS가 토막내고 있는 보수를 끌어안는 데서 활로를 찾고 있었다. 국민회의의 보수 진입은 보수본류라는 자민련의 깃발을 흐리게 하는 경쟁자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정계 은퇴후 김종필씨가 충청 지역언론인들과 골프를 친 뒤 환히 웃고 있다. ⓒ연합뉴스


95년 9월 김종필 총재는 "새로 만든 당이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보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한국전쟁 때 기피했거나 달아난 사람들은 보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YS까지 싸잡았다.

YS쪽은 무시했다. DJ는 대변인 설훈을 내세워 우리는 한번도 진보주의를 주장한 일이 없다는 장황한 해명을 했다. JP쪽의 재 반격으로 두 정당간 성명전이 펼쳐졌다. 요약하자.

"6.25 때 공산침략자와 싸운 정치지도자가 아니고는 보수 운운할 자격이 없다. 우리가 경제개발 할 때 민주주의 운운하며 개발행보를 가로막은 사람이 보수 운운하는 것은 가소롭다."(김종필, 9월 29일 충남 아산지구당 창당대회에서)

"민주주의 안에 보수가 있다. 쿠데타가 아니라 민주투쟁한 사람이 보수다. 국민회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우파정당이다."(김대중 기자회견)

"공산주의자들은 아직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다. 세상이 바뀌니까 옷을 갈아입고 보수를 자처하고 있다."(김종필 기자간담회)

"군사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전복시킨 자는 보수를 말할 자격이 없다. 그것은 수구반동이다." (박지원 국민회의 대변인)

"반동이라는 용어는 공산당 용어다. 김대중씨는 좌파가 아니라 좌익이다. 그는 남로당 산하의 민해청 청년부 소속이었다."(자민련 박규식 의원)

두 정당간에 매일 주고받던 성명전에서 국민회의가 물러섰다. 박지원 대변인은 야당끼리 싸우는 건 김영삼 정권을 돕는 일이라며 이젠 대응을 안 하겠다고 했다. 휴전이었다. 그런데 불을 다시 붙인 건 김대중 총재다. 이번엔 자민련이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이 상대였다.

김대중 총재는 11월 설훈의 도봉을 지구당 창당대회에서 "신한국당이 어제는 극좌인사를, 오늘은 극우인사를 영입하려하고 있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신한국당은 보수인지 혁신인지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노동계 출신 이태복씨 등의 입당을 문제삼았다.

신한국당에선 손학규 대변인이 나셨다."김대중씨는 군사정권 때 색깔논쟁의 피해자라면서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위장 전술"이라고 반격했다.

국민회의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재오 등 민중당 계열의 신한국당 입당도 문제제기를 했다. "신한국당에는 5.3사태 등 민주화운동을 탄압할 구실을 만들어 민주화운동을 저해한 급진과격인사들도 있다. 신한국당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5.3사태란 87년 야당의 인천대회에 친북 전단을 뿌린 폭력시위 주동세력을 말한다.

신한국당도 이에 김대중 총재의 과거를 문제삼고 나섰다. 손학규 대변인은 "김 총재는 서경원을 통해 김일성의 돈을 받았고 노태우 대통령의 돈도 받는 등 극좌에서 극우까지 청탁을 가리지 않고 돈을 받은 주제에 다른 당을 극좌에서 극우라는 용어로 공격할 자격이 있는가" 라고 따졌다.

95년 북한은 수해를 당했다.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조성한 산비탈의 계단식 밭이 무너져 토사가 되어 논밭을 돌밭으로 만든 최악의 피해였다. 북한은 심각한 식량위기에 처했다. 일본과 미국이 지원에 앞장섰다. 미국은 핵 위기로 단행했던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도 풀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조건을 걸었다. 휴전선으로 남하한 공군기지의 철수 등 3개항이다.

이런 대북 정책에 대해 야당도 동조했다. 자민련은 오랜만에 우리와 같은 주장이 나왔다고 했다. DJ의 국민회의도 북한의 태도를 보고 식량지원을 결정해야 한다. 다만 종교단체 등의 식량지원은 열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꼬마 민주당이 유일한 반대당이었다. 이규택 대변인은"신한국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보수층의 표를 의식해 쌀 지원을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식량위기에 대해 북한당국이 달라지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다. 미국도 한국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정부정책이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이게 90년대 후반의 한국이었다.

그 무렵 김대중씨는 국민회의를 우회전시켰다. 보수본류를 자처한 JP의 국민회의와 연합해 집권했다. 우파정권이었다. 그러나 집권하자 바로 좌회전을 시작했다.

DJ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했다. 그 이전의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니었다는 뉘앙스다. 제2건국을 내걸고 전국 조직을 갖는 위원회도 만들어 제1건국과 선을 그었다. 48년의 건국을 제1건국으로 밀쳐낸 차별화의 신호였다.

의문사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50년의 그늘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해방정국, 6.25전란 중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쳤다.

햇볕정책을 앞세워 북에 다가갔다. 김정일과 회담한 후 평화를 선언했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김정일은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이제 전쟁은 없다고 했다.

재벌, 보수언론을 손보기 시작했다. 전교조를 합법화, 사학들에 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재벌, 언론, 그리고 종교계가 중심인 사학은 한국의 보수 본산이다. 보수본산을 허무는 정책들이었다.

노 정권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이 정책을 고스란히 승계하고 있다. 의문사조사위는 과거사조사위로 더 확대되었다. 개혁을 내건 언론법 사학법 그리고 재벌규제가 모두 DJ정책을 계승하고 단계를 높인 것들이다.

지방선거 후 당이 요동했지만 노 대통령은 미동도 안 했다. "한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의식, 문화, 정치구조 등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과 그 시기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창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길게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은 좌회전 8년에 연결해 해석해 볼 발언. 노 정권의 노선에 멈춤은 없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이영석 교수신문 고문/언론인

댓글이 5 개 있습니다.

  • 22 44
    이뭐병

    뭐하는 분이죠?
    세상에 부자당은 없다... 집권에 성공했으니 수구꼴통이 아니다...
    언론 세무조사는 언론 손보기고, 재벌 사정은 반기업이고....
    이건 뭐. 논리도 없고. 학식도 없고.
    완전 진영논리적 정치싸움으로만 세상을 보시는군요.
    세상을 좀 크게 보세요. 어느놈하고 어느놈이 싸워서 누가 이기는지,
    내편은 누구인지, 그것만 보시지 말고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이런 글 보면, 나같은 사람도 출세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별로 똑똑할 필요도, 공부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요.

  • 21 32
    오상희

    용서하기 힘든 이영석 (4)
    ....의문사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50년의 그늘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해방정국, 6.25전란 중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쳤다....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것이 나쁜건가?..왜 이영석은 부정적으로 글을 쓰나?
    "진상을 규명했다"라고 글을 쓰면 어디가 덧나나?
    이영석의 가까운 지인(知人)이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해보자.
    경찰관은 당연히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과거에 의문의 죽음이 있다면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과거에 못했으니 그냥 일관성있게 현재도 하지 말아야 하나?
    불효자와 친일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일관성"을 지키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일관성이 만명통치약인가?..
    도대체 진상규명이 뭐가 나쁜거라고 이영석이 "딴지 걸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김정일은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라는 문장도 문제가 있다.
    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대방에게 "북한 민중을 굶겨죽인 사탄" "민족의 원수"..."악마적인 지도자"라고 말해야 하나?
    그런 말을 하면 회담이 잘 될 것 같나?.
    김정일에게 의례적인 인삿말을 하는것도 문제가 될까?
    이영석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때나마 김정일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호칭한것도 모르나?
    영어에서 "미스터"라는 호칭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DJ가 김정일에게 의례적인 인삿말을 하는것이 죄인가?
    ...전교조 합법화??....
    전교조 합법화가 문제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왜 YS는 전교조 교사를 복직시켰나??
    DJ정부시절 전교조가 합법화 되었지만, 여러가지 제약은 현존한다.
    단체행동권의 제약, 불합리한 복수노조 관련 조항, 교섭 의제의 제한, 단체교섭 효력의 제한 등 곳곳에 여러 독소 조항들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교원노조에게는 단결권만이 제대로 주어져 있을 뿐이며, 단체교섭권은 지극히 제약돼 있으며 단체행동권은 사실상 원천 봉쇄되어 있다.
    이영석은 저런 내용을 알고 있는건가?..모르고 있는건가??..

  • 15 21
    오상희

    용서하기 힘든 이영석 (3)
    ......신한국당도 이에 김대중 총재의 과거를 문제삼고 나섰다. 손학규 대변인은 "김 총재는 서경원을 통해 김일성의 돈을 받았고 노태우 대통령의 돈도 받는 등 극좌에서 극우까지 청탁을 가리지 않고 돈을 받은 주제에 다른 당을 극좌에서 극우라는 용어로 공격할 자격이 있는가" 라고 따졌다..........
    이영석은 서경원을 통해서 김일성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한 손학규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는데 "공정성"에 엄청난 문제가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들으면 오해를 할 것 같다.
    DJ의 1만달러 수수 혐의는 애초부터 "관련자들의 진술"말고는 아무 증거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진술"은 서경원과 그 비서관 방양균 씨한테서 나온것이다.
    그런데 서경원 고문에 따라서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이영석은 왜 서경원의 "고문 주장"에 관한 진술을 무시했나?
    여기서 "서경원 밀입북 사건"과 "DJ의 1만달러 수수의혹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1989년 6월 당시 평민당 국회의원 서경원(62)은 85년 4월경 서독 여행중 북한공작원 성낙영에게 포섭되어 88년 8월 체코 프라하에서 북한 특별기편으로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되었는 바(서경원은 그후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1998년 3월 특별사면 때 잔형집행면제로 출소)
    ▲김일성과 허담 접촉 및 공작금 미화 5만달러를 수수하고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국회와 가톨릭농민회 등을 기반으로 간첩활동을 자행한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정○○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서경원 간첩사건과 연계시킬 목적으로
    ▲당시 안기부는 서경원의 머리, 가슴, 얼굴 등을 무차별 구타하고 구두를 신은 채 발등을 짓밟는 등 가혹한 고문을 통해
    ▲허담으로부터 받은 5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DJ에게 건네준 사실과 DJ가 김일성에게 친서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는 것처럼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등 가혹행위를 통해 김대중 총재에 대한 용공조작을 자행했음.
    DJ는 검찰에서 1만 달러 수수혐의에 대해서 조사를 받았으나,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관련자 진술(서경원, 방양균)과 환전영수증 등을 근거로 “공작금 중 1만달러가 DJ에게 전달된 사실이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다”며 DJ를 기소했다. 다만 검찰은 서 전 의원이 1만달러를 전달할 당시 “조그만 성의입니다”라고 말했고, 김 총재도 출처를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죄가 아닌 외환관리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또 그 해 4월쯤 서경원씨 밀입북 사실을 보고받고도 6월까지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국보법상 불고지죄)도 DJ에게 적용했다.
    그러나 DJ에 관한 재판은 그 이후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다가, 91년 5월 여야가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 조항을 개정하기로 합의하면서 검찰도 가벌성이 없어졌다며 DJ의 불고지 혐의를 공소취소했다. 이때 DJ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도 함께 취소해 버려, 사건의 실체는 끝내 법정에서 가려지지 않았다.
    이후 서경원씨는 법정에서 “5만달러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 “검찰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자백한 것”이라고 부인했으나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인정된다”며 서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저렇게 DJ의 1만달러 수수혐의는 관련자들의 진술 말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것이었다. 게다가 그 진술은 고문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법원은 서경원에 대해서만 재판을 한것이지 DJ에 대해서는 재판 자체를 하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손학규의 진술을 이영석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 공정한 글쓰기인가?

  • 19 29
    오상희

    용서하기 힘든 이영석 (2)
    이영석 칼럼에서 문제되는 부분을 샅샅이 찾아내서 지적해보겠습니다.
    "노무현 정권 3년은 한국의 좌회전이다. 남북문제, 외교, 경제 그리고 대한민국 평가에서 그렇다. 노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자리 매김했지만 꼬리표 신자유주의는 별 의미가 없다."라고 이영석은 말했는데.......
    남북문제?....노무현의 어떤 정책이 좌파정책이었지?.....대북 지원을 말하나?..
    이영석이 지지한 정치인이었던 YS조차도 임기중에 북한에 비료를 지원했고, 한국,미국, 일본이 힘을 모아서, 합의해서 경수로를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이영석에게 묻겠다..."북한에 지원을 하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좌파 정치인인가?
    당신이 정치적으로 지지했던 YS도 좌파 대통령인가?"
    노무현의 외교가 좌파정책이었나?.....미국이 원하는대로 이라크 파병을 했는데 좌파 외교라고 말할 수 있나?....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했다고 좌파 정치인이라고 말해야 하나?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노무현이야 말로 진짜배기 우파 정치인이 아닐까?
    노무현의 경제가 좌파정책이었나?...
    어떤 정책이 좌파정책인지 상상이 안간다.....이영석은 말해달라...얼버무리지 말고.
    혹시 8.31 부동산 대책을 말하는건가?....공시지가 6억 이상(시가는 8억, 9억)인 사람(1.2 %)에게 종부세를 부과한 것이 좌파정책이라고 말하는건가?..
    그 따위 논리라면 보유세(종부세)가 한국보다 무거운 선진국은 모두다 좌파 정부인가?

  • 16 13
    오상희

    용서하기 힘든 이영석.(1)
    지난 5월달 한국일보에 게재된 글인데....네티즌 여러분,,일단 이 글을 읽어보십시오..
    한국일보 이광일 논설위원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병직(70) 서울대 명예교수가 조선일보(4월 25일자) 인터뷰에서 “(치열한 사상전을 할 생각에) 다시 피가 끓는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권의 대부였다가 1984년 우파로 전향한 경제학자다.
    이 재단 기관지 ‘시대정신’ 편집위원이라는 김영환(44)씨는 같은 신문에 쓴 글(5월 3일자)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외면하면서) 겉으로는 인권이요 인간의 존엄성이요 떠드는 사람들의 위선과 이중성에 다시 한번 피가 솟구쳐 올랐다”고 했다. 김씨는 80년대 ‘강철 서신’으로 유명한 주사파였으나 온 세상이 다 알던 김일성 독재체제의 문제점을 1990년대 말 뒤늦게 깨달았다며 전향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발언을 접하면서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렇게 피가 끓을까?
    “그 때 우리들(좌파 운동가들)은 1970년대 말이면 한국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지. 박통이 죽었을 때 우리는 역시 우리 생각이 옳았다고 확신했지요. (그런데) 전통이 누구야?
    ●전향한 우파들의 좌파 피해의식
    박통보다 훨씬 모자란 사람이잖아. 그런데 한국 경제가 죽기는커녕 더 발전하는 거야.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의 자본주의는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던 거지”(안병직 이사장 인터뷰에서).
    정말 뭔가 이상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때 그가 죽으면 한국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두환 대통령 때 한국 경제가 계속 발전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한 경제학자가 얼마나 될까? 경제학 교수라는 사람이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기에 틀린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그 나이에 전향이라는 걸 했을까?
    “북한 인권 운동과 함께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사상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통절히 느끼게 되었다”(김영환씨 기고문에서).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계몽운동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남들이 다 산이라고 하는 것을 산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알고 보니 산이라며 뒤늦게 산은 산이더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일부 언론까지 힘을 실어주는 혹세무민은 곤란하다. 뉴라이트재단 쪽 인사들은 현 집권세력을 시종일관 좌파(“올드레프트”)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 좌파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고 선진화가 안 된다고 울부짖는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현 정권이 좌파인가? 무슨 좌파 정권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정권의 명운을 걸고 밀어붙이는가? 무슨 좌파 정권에서 비정규직이 이렇게 넘쳐나는가? 무슨 좌파 정권이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그리 손쉽게 처리하는가? 좌파 세력이 그렇게 득세를 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민주노동당 의원은 전체의 3.04%에 불과한가?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질문에 답한 노 대통령의 농담은 싱거운 개그다.
    노 정권은 비교적 무능하고, 철없는 언사로 화를 자초하는 딱한 정권일지는 몰라도 좌파 정권으로 봐 주기에는 정말이지 깜냥이 안 된다. 좌파의 개념을 몰라서 하는 소릴까? 아니면 알고도 그렇게 몰아붙이는 걸까?
    ● 철 지난 좌파정권 논쟁 그만둬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거나 문제로서 해결해야 할 것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끝난 좌파와 우파의 대립과 투쟁이 아니다. 헌법이 명령하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입각해 경제 사회 외교 정치 문화 등 각 분야의 다종다양한 진짜배기 현실 문제들을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론과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끓는 피를 가라앉히고 진짜 과녁에 화살을 쏘기 바란다..

    2006.05.05 (금)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광일
    제가 위 글에서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은
    "좌파 세력이 그렇게 득세를 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민주노동당 의원은 전체의 3.04%에 불과한가?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질문에 답한 노 대통령의 농담은 싱거운 개그다."
    라는 부분이다..
    왜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말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세계화 시대에 생존하려면 신자유주의를 통해서 경쟁력을 극대화 시켜야 하기 때문일것이다...그런 면에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것은 사실이다..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망한 것은 노동조합이 약해서가 아니라 경쟁력을 확보하지못해서 시장경제에서 탈락했기때문이다...
    근데 왜 신자유주의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였을까?
    노무현대통령과 유시민장관은 복지확대에 관심이 있다...단지 예산이 부족해서 미흡한면이 있을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좌파"적인 측면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난 "좌파 신자유주의"를 싱거운 개그로는 생각하지 않고 치열한 자기 성찰에 대한 부득이한 수사법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좌파" 또는 "사회주의"라는 말이 공산주의를 뜻했던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말은 곧 빨갱이, 악마라는 단어와 뜻이 똑같았을 적이 있었다.
    그런 거부감을 희석시키려고 사회주의나 좌파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좌파라고 주장하면 공산혁명통해서 대한민국을 북한처럼 만들자는 뜻으로도 쓰인적도 있다.
    아마 내가 알기에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초반까지는 그런 시절이었던것 같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는 그런 공산혁명을 바라는 사람도 있었을것이다.....아주 극소수였겠지만....
    "박노해"와 "백태웅"이 한때 조직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이하 사노맹)도 그런 공산혁명을 꿈꾼 조직이다.
    그들은 감옥에 갔다와서 자기의 사상적 오류를 반성하고 이제는 자본주의타도를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알기에는 자본주의타도를 주장했던 사람은 대한민국 4700만명 인구중에서 아주 극소수다..그런 극소수때문에 한국이 공산화가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그런 극소수조차도 "공산혁명"을 주장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그런 "극소수"를 뻥튀기해서 부풀려서 보도하곤 했지요.
    1996년경 서강대 총장인 박홍의 "고정간첩 5만명"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언론이 바로 조선일보다.
    이런 뻥튀기 장사꾼같은 조선일보를 어찌 미워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강준만은 그런 조선일보 보도태도를 "국가안보 상업주의"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공산주의가 망한이후에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세금이다.
    세금인상을 통한 복지제도에 찬성하면 좌파...반대하면 우파라고 부른다..
    나는 노무현대통령이 말한 "좌파 신자유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분이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금인상을 통한 복지제도도 늘리고, 동시에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해서 살아남으려면 신자유주의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뜻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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