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합종연횡 성공할까
[옛날 정치 지금 정치] <8> 정계개편의 역사
대통령 탈당도 거론된다.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이 9일 개최한 지방선거 후의 대책에 관한 토론에서 노 대통령이 탈당해야 새 길이 열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통령의 탈당과 정계개편은 대세가 된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게 잘 될까.
우선 바른 길이 아니다. 정계개편,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선 없는 말이다. 정계개편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단어다. 대통령의 탈당은 더더욱 잘못된 논의다. 먼저 탈당부터 짚고 가자.
열린우리당 정책토론에서 주제를 발표한 김형준 교수는 노 대통령의 탈당을 "초당적인 국정운영과 열린우리당의 향후 행보에 전략적 유연성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의 새 출발은 대통령의 탈당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인 정치학자의 진단이지만 무슨 소린지 알아들기 어렵다.
쉽게 풀어보자. 초당적인 국정운영이란 무슨 말인가. 왜 초당적이라야 하는가. 초당 다음엔 연립이니 거국이니 하는 걸로 연결될 텐데 대통령제에 무슨 연립이 있고 거국내각이 있는가. 노 대통령이 구성하는 내각은 노무현 정부의 내각이다. 그 이상일 수 없다.
당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게 뭔가. 대통령이 탈당해야 새 출발이 시작되는 구조라면 집권당 자리에서 나앉는 걸 말하는가. 대통령이 빠져주어야 가능해지는 전략적 유연성이 뭔가. 주판알 퉁기듯 "지금까지 것은 없던 일로 하자. 지금부터다"라고 할 것인가.
민주정치는 정당정치다. 대통령은 정당추천 후보로 당선했다. 그의 공약은 정당의 공약이다. 그러기에 5년짜리 대통령이 10년 20년이 걸릴 일도 공약하고 100년 구상도 내놓는다. 대통령은 정당과 함께 공약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책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정당은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의 임기 5년이란 역사에서 보면 찰나다. 책임은 정당이 지니고 간다. 권력을 잃더라도 정당은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그들이 내걸었던 공약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야한다. 임기 도중 대통령이 탈당해야 할 사태라면 탈당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먼저라야 한다. 그게 책임정치다.
대통령이란 사람들이 임기 후반에 슬그머니 탈당하고 대통령이 탈당하면 국정의 실패는 대통령이 지고 가고 정당은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건 속임수다. 그런 속임수를 계속하라는 말인가.
노 대통령은 당선하자마자 민주당을 버렸다. 그때 민주당과 함께 한 공약에 대해 국민한테 단 한마디 말도 안 했다. 민주당한테 떠나는 인사조차 안 했다. 또 그럴 참인가.
이제 정계개편으로 옮아가자. 열린우리당이나 고건 캠프나 방향은 호남과 충청을 묶어내는 이른바 서부벨트다. 그런 점에서 중심에 한화갑 민주당이 있다. 그런데 한 대표는 "신당은 안 된다. 신당을 만들어 성공한 건 DJ뿐"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명분이 있건 없건 정계개편에 성공한 건 DJ뿐이다. 그럼 DJ정계개편을 보자.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을 50년 전통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다. 한화갑 민주당의 출발은 평화민주당이다. 평민당은 DJ가 대통령에 나서기 위해 통일민주당의 절반을 쪼개나와 독립을 선언한 정당이다. 왜 반쪽인가. 그 설명이 정계개편의 시작이고 사연이 된다.
김영삼씨가 정치정화법에 묶인 몸으로 DJ와 운동권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이 신민당이다. "민한당은 여당의 들러리 야당이다. 진짜 야당을 만든다." 이게 그 때 신민당의 깃발이다. 창당 25일만에 치른 선거에서 67석의 제1야당으로 올라서고 민한당을 공중분해시켜 야당통합을 이뤄낸 괴력(怪力)을 선보였다. 이 정당을 두 김씨가 87년 공중분해하고 통일민주당이란 새 정당으로 재조립했다. "이민우 총재가 고분고분하지 않다. 사쿠라다"라는 게 파괴의 논리였다. 두 김씨 합작의 정계개편 1호다.
김영삼 총재, 김대중 고문의 통일민주당은 총재와 고문이 권력을 반분했다. 지구당위원장, 당직 등 모든 것을 철저하게 반분했다. 둘이 합의하면 뭐든 할 수 있고 둘의 합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참 한국적인 별난 정당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수명은 반년 갔다.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진행되자 둘이 나눌 수 없는 대통령후보라는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김대중씨는 공천 없이 둘이 무소속 대선 후보로 같이 나서자는 제안도 했다. 김영삼 총재가 이를 거부하고 지명대회 강행을 채비했다. 그러자 10월 28일 DJ가 자기 지분 절반을 몽땅 보따리에 싸서 나갔다.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 확정된 다음날이다. 그리고 평민당을 창당했다. 이게 DJ 단독 정계개편 역사의 시작이다.
91년 평민당은 당명을 두 번 바꾼다. 4월 재야 운동권인 신민주연합과 통합하면서 신민주연합당(약칭 신민당)으로 그리고 9월 이기택의 꼬마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민주당으로 개명했다. 이건 정계개편이 아니라 92년의 대통령선거에 대비한 DJ의 세력 불리기다.
DJ의 두 번째 정계개편은 95년 9월 새천년민주당 창당이다. 그는 민주당의 대부분을 데려나왔다. 이기택 민주당은 DJ와 합치기 전의 꼬마 민주당보다 더 꼬마로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다.
DJ가 이기택과 민주당을 버린 것은 96년 국회의원 선거 공천권 때문이다. 그 해 봄 지방선거 공천에서 이기택 대표는 합당 당시의 6대4 비율을 공천에서 적용하려 들었다. 이 때문에 경기지사 후보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여러 지역 후보 공천을 이기택 대표한테 넘겼다. 국회의원 선거에선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게 이기택을 버린 이유였다.
2000년인가 김윤환씨가 반이회창 깃발을 단 신당창당을 추진했다. 주변에서 말리자 김씨는"DJ는 정당을 아홉 번이나 깨고 만들었는데 나라고 한번도 못할까"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 못했다. DJ의 정당 바꾸기는 아홉 번이지만 깨고 만든 건 다섯 번이다. '킹 메이커'로 불리던 천하의 김윤환이지만 신당 창당은 한번도 못했다. 그런데 DJ는 어떻게 다섯 차례나 손쉽게 해냈을까. 95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때의 어느 위원장의 일화가 그 해답이 된다.
95년 여름 민주당 원외위원장 한 사람이 인천대학 조전혁 교수를 찾아왔다. "DJ가 신당에 따라오라는데 어떻게 해"라는 의논이었다.
-가야지.
-명분이 없다.
-그럼 따라가지 마.
-그래도 따라가면 22% 고정 표가 생기는데….
-그럼 따라 가. 이기택 민주당에 남아봤자 무슨 명분이 있어. 명분이 있다해도 국회의원은 안되잖아.
DJ가 신당 깃발을 들면 이런 사유로 따라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호남 지역은 DJ 공천은 당선통지서와 마찬가지 위력을 갖는다. 수도권에서도 준 당선통지서의 위력을 갖는 지역이 꽤 된다. 거기엔 미치지 못해도 수도권엔 25% 내외의 고정 표를 지니게 되는 지역이 적잖다. 전국의 호남 출신들이 DJ 대통령 만들기에 하나가 돼 DJ만이 아니라 DJ 공천장을 들고 오는 사람은 무조건 찍어준다. 그 표가 DJ의 힘이었다.
지금 그런 지역패권을 가진 정치인은 없다. 한화갑 대표가 안 된다는 건 그래서 하는 말이다.
한 대표 말대로 신당 창당은 쉽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선거 직후는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찻잔 속의 태풍 꼴이다. 뛰쳐나와 정당을 만들 실력자가 없다.
고건 진영은 입장이 다르다. 김근태 쪽에선 손을 내밀지만 노 대통령은 말이 없다. 한화갑 대표 말대로 노 대통령은 고건 쪽을 보수파로 분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몸을 담기엔 너무 작다. 그러니 새집을 짓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어쨌거나 여론 조사에선 1번 주자다. 호남 민심이 고건 주변서 맴돈다. 그러니 신당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갖췄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계재편이 잉태되고 있다. 방향은 그들의 실토대로 서부벨트다. 중도통합세력이니 평화민주세력이니 하는 건 명분 만들기고 분칠이다. 대통령 표 장사에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탐색을 하는 것 아닌가. 공연히 헷갈리게 하는 말의 분칠 같은 건 안 하는 게 그나마 솔직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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