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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잔칫날엔 기자회견도 못하나”

[취임식날 여의도 한쪽에선] 학생-교육단체들 '공원 집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25일, 여의도 국회 앞은 새 정부의 출범을 지켜보고자 몰린 수만여 인파들로 여의도역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그러나 국회에서 조금 떨어진 여의도 공원 앞에는 이들보다 앞서 국회 앞을 지키던 비정규직 노동자, 대학생,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찰에 의해 쫓겨나 모여들었다. 이들은 당초 국회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교육, 노동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경찰 측은 ‘경호’를 이유로 이를 원천봉쇄하자 여의도 공원에서 차례차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경찰, 국회 앞 기자회견 원천봉쇄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 7개 대학생 단체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살인적인 등록금 폭등과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와 인수위는 발족한 지 50여일 넘도록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해결에 대한 어떠한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며 “오히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명분을 세워 비정규직 양산, 노동탄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한나라당 대선 공약을 기초로 한 인수위의 국정과제 중 기업 감세는 핵심과제로 분류하고 ‘청년층 비정규직 50% 축소’, ‘비정규직 해소 우수업체 감세’ 정책은 채택조차 하지 않았다”고 이명박 정부를 질타했다.

이들은 이어 “대학 등록금 수천만원을 빚지고 졸업해도 ‘이태백’을 넘어 ‘장미족(장기미취업자)’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명박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만 부르짖고 있다”며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일자리 창출 없는 사회양극화만 심화시킬 뿐이다”고 주장했다.

“‘오린지’보다 중요한 것은 살인적인 등록금과 입시경쟁”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본부를 비롯한 교육단체들도 같은 자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입시 자율화를 골자로 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규탄했다.

이들은 “대학입시 자율화는 일부 특권 대학들의 그릇된 서열 경쟁을 부추겨 뿌리 깊은 학벌구조와 입시경쟁을 가중시킬 뿐”이라며 “최소한의 교육적 안전장치들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문제는 오린지가 아니라 살인적인 등록금과 입시경쟁에 내몰린 한국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고통”이라며 “정부는 맹목적인 국제화 논리를 남발하지 말고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한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오린지’ 발언을 빗대 청와대 모형에 오렌지를 던져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인의 취임식이 열린 25일, 국회 앞은 멀리서라도 이를 지켜보기 위한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최병성 기자

경찰은 이날 청년실업 및 살인적 등록금 인상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국회로 향하는 이들을 둘러싸고 10여분간 이동을 제약했다.ⓒ최병성 기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본부 등 교육단체들은 이날 청와대 모형을 오렌지를 던져 부수는 퍼포먼스를 갖기도 했다.ⓒ최병성 기자

“공안탄압 급증, 신공안정국 시작됐다”

이밖에도 이날 여의도 공원에서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를 비롯한 6개 청소년 인권단체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회 앞에서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소속 회원 10여명이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보안법 철폐 및 최근 구속된 진보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한총련 의장, 농민시인, 전교조 교사, 민노당 시의원, 진보단체 게시판 검열 등 신공안정국의 탄압이 줄을 잇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5년의 임기를 채울 뜻이 있다면 당장 공안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과 장기투쟁사업장 해고노동자들이 여의도 공원 앞에서 치를 예정이었던 민주노총 순회 집중투쟁 승리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취소됐다. 이들은 대신 오전 11시께 국회 정문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저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다 10여분 만에 경찰의 제지로 해산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 불허에 대한 항의에 "경호실 지시 사항이다", "취임식 끝나고 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국회 앞으로 가려던 이들을 경찰 병력으로 에워쌌다.

경찰은 또 전날 국회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가진 민주노총 해고자들 10여명이 여의도 공원에 나타나자 순식간에 이들을 에워싸고 여의도 공원에서 국회로 가는 모든 통로를 봉쇄하기도 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신공안탄압이 강화되고 있다고 규탄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최병성 기자

“눈에만 띄지 않으면 된다는 건가”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대학 강사들의 교원 인정을 요구하며 1백72일째 천막농성을 벌여오던 대학강사 김모씨는 “경찰 측이 10일 전부터 하루만 피해 있어 달라고 말하더라”며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된다는 근시안적인 발상이 이 정부나 공무원들의 마인드라면 정말 심각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국회 안에서도 한미FTA 비준에 반대하며 국회 본청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의사국 관계자들에 의해 끌려나오는 일도 벌어졌다. 국회 의사국은 24일 오후 취임식을 마칠 때까지만 자리를 피해달라고 요청한 후 오후 9시께 10여명의 경위를 동원해 농성장 이전을 거부하던 강 의원을 강제로 당 원내대표실로 옮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나가자”며 화합과 단결을 강조했지만 이날 여의도 일각에서 벌어진 풍경은 취임 일성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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