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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속 허세욱씨 절규, “FTA 중단하라”

<현장> "3년전 盧 살리겠다고 절규하던 그를 어떻게..."

1일 오후4시께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 앞에서 분신을 단행한 택시 노동자 허세욱(54.서울 봉천동) 씨는 온몸에 불이 붙은 불길 속에서도 "한미FTA 중단하라"를 외쳤고 의식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가면서도 “한미FTA 중단하라”는 구호를 4번에 걸쳐 되뇌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허세욱 씨, 2장의 편지 남겨놓고 후배에게 전화 걸어

허 씨는 분신직후인 이날 오후 4시 직후 구급차량에 의해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긴급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상황이 위독해 오후 5시께 화상전문병원인 서울 영등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으로 재이송됐다.

1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 따르면, 허 씨는 이 날 오후 12시50분, 1시12분께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직장후배인 민주택시 한독운수 조합원 이 모 씨에게 전화를 해 자신의 집에 와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후배 이 씨는 2시 50분께 허 씨가 사는 봉천동 소재 집에 도착했으나 허 씨는 이미 분신 장소인 하얏트 호텔로 간 이후였다. 3시 1분께 다시 허 씨는 후배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편지가 있으니 챙겨서 집회 때 읽어달라”고 말했다.

오후 3시 8분께 허 씨의 집 옷장 서랍에서 유서로 보이는 편지 2장을 발견한 이씨는 화들짝 놀라 그 즉시 민주노총과 경찰에 신고했다. 한강성심병원에서 본지와 만난 민주노총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도 상황이 위급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몇 차례에 걸쳐 허 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경찰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의뢰하는 등 사단을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허 씨가 남긴 2장의 편지에는 “망국적 한미FTA 폐지하라”, “토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평택기지 이전, 한미FTA 토론한 적 없다”며 노무현 정부를 질타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허 씨는 또 편지에서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며 “저 멀리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다”고 이미 분신을 단행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도 남겼다.

이 날 오후 7시, 한강성심병원 의료진은 브리핑을 통해 “허 씨는 현재 전신 63%의 화상을 입는 등 그 상태가 심각하다”며 “특히 이 중 51%는 3도화상, 나머지 12%는 2도 화상”이라고 밝혔다. 의료진은 또 “1일 밤이 고비이며 현재 가족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면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달 29일 청와대 앞 1인시위에서의 허세욱 씨. ⓒ참여연대


허 씨 입원 치료중인 병원, 침통한 분위기 속 가족들 속속 도착

독신으로 어렵게 살아온 허씨의 분신 소식을 듣고 한강성심병원으로 달려온 허씨의 친인척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만 붉혔다.

허 씨의 형과 조카를 비롯한 친인척들은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병원측은 감염 문제 등 위독한 환자 상태를 고려, 빨라야 2일 오전 중에나 가족 면회가 가능하다고 말해 이들은 허씨를 볼 수 없었다.

이 날 병원에는 민주택시 조합원을 비롯한 민주노총 관계자와 허 씨가 대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민주노동당 관계자,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속속 찾아와 허 씨의 쾌유를 빌었다. 특히 김혜경 민노당 전 대표, 김기수 최고위원, 노회찬 의원, 김형탁 대변인 등 민노당 지도부가 대거 허 씨가 입원하고 있는 한강성심병원을 찾아 허 씨의 상황을 확인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또 허 씨가 회원으로 활동해온 참여연대의 김기식 사무처장, 이태호 협동사무처장 등도 병원에 찾아와 허 씨의 상태를 살폈다.

허세욱 씨가 입원치료중인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김동현 기자


“허 씨, 3년전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었는데...”

나경채 민노당 관악구위원회 지방자치위원장은 “허 씨는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그동안 지역활동과 사회문제에 열심히 활동해 왔다”며 “특히 3교대라는 택시 노동자의 힘겨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각종 집회 현장을 지켰을 정도로 적극적인 분”이라고 허 씨의 평소 모습을 기억했다. 나 위원장은 특히 “허 씨가 FTA 문제 뿐만 아니라 열악한 택시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당 지역 회의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한 당의 노력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민노당은 이같은 허 씨의 활동을 평가해 지난 2001년 모범당원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나 위원장을 비롯해 이 날 본지와 만난 복수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허 씨가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 때도 현장에 참석했었다고 전한다.

정종권 민노당 서울시장 위원장은 “3년전에는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던 허 씨가 3년이 지나 이제와 겪은 그 배신감과 울분이 얼마나 컸겠냐”며 “평범한 노동자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다름 아닌 노무현 정권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고 분개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노무현 정권을 살려낸 서민을 이렇게 궁지로 내몰다니... 정말 역설이다. 역설”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6년간 택시 노동자로 일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에서 외쳤던 노동자

경기 안성에서 7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허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만 마친 뒤 어려운 삶을 살아와야 했다. 여러 번 철거를 당하는 등 도시빈민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는 80년대 초반부터 핸들을 잡고 지난 16년간 택시노동자로 일해왔다.

허 씨는 지난 2000년 민노당에 가입하며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관악구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왔다. 지난 2006년에는 민노당 서울시당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당에서도 허 씨의 열정을 인정했다. 또 참여연대에 가입하며 사회 현안 문제에 있어서 누구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강조했던 인물로 그의 지인들은 기억했다.

민노당 관계자에 따르면 허 씨는 분신 하루 전날인 지난 달 31일에도 시청 앞 촛불집회에 참석, 한미FTA 협상 중단을 외쳤다. 또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중인 문성현 민노당 대표도 격려 방문했다. 허 씨는 특히 지난 달 29일 서울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9일차 릴레이 단식농성에 참석, 자신이 손수 제작한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자원하기도 했다.

허세욱 씨가 남긴 편지글

망국적 한미FTA 폐지하라.
굴욕 졸속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
나는 이 나라의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비열한 반통일적인 단체는 각성하고 우월주의적 생각을 버려라.
졸속 밀실적인 협상내용을 명백히 공개 홍보하기 전에 체결하지 마라. 우리나라 법에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은 곧 술책이다. 의정부 여중생을 우롱하듯 감투 쓰고 죽이고 두 번 죽이지 마라. 여중생의 한을 풀자.
토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평택기지 이전, 한미FTA 토론한 적 없다.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 실제로 4대 선별조건, 투자자 정부 제소 건, 비위반 제소 건 합의해주고 의제에도 없는 쌀을 연막전술 펴서 쇠고기 수입하지 마라. 언론을 오도하고 국민을 우롱하지 마라.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저 멀리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민주택시 조합원 2007. 4. 1
허세욱 드림.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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