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미 말레이 협의, 미국 정부와는 무관"
미국의 극비 협상에 당혹, "美정부 계속 대북제재 가할 것"
북미간 말레이시아 접촉을 계기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는 대북 협상론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23일 북미 접촉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이번 협의가 민간 차원의 '트랙 2' 대화로 미 정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면서 이례적으로 미측 입장을 신속하게 전했다.
이 당국자는 "미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성급히 대화 거론시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할 뿐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한미 양국은 앞으로도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 아래 강력한 대북 제재·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접촉에 참석한 미측 인사들에 대해서도 "길게는 20여년전 대북정책을 담당했던 전직 인사들로 미 정부의 현 대북정책과 무관하하다"고도 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미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리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와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미국의 대북협상 특사를 맡았던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미측에서는 리언 시걸 미 사회과학원(SSRC)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 토니 남궁 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한국학 연구소 부소장 등도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주재 차석대사 등이 나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트랙2에 참석한 미측 인사들은 오래전에 미국 정부를 떠난 사람들"이라면서 "북미간 트랙2 접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계기에 미 학계 인사와 미 대선 캠프 쪽 인사들을 접촉한 사실을 거론하며 "미측의 공통된 의견은 현재 북한과 대화할 시점이 아니고,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통해서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이번 북미간 트랙2 접촉은 미 주류와 많이 동떨어진 얘기"라고 평가했다.
시걸 SSRC 국장은 이번 접촉결과에 대해 "개인적 견해로 일부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측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기 전에 미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북측은 여전히 선(先) 평화협정을 주장했다는 얘기다.
다만 그동안 비핵화는 물건너갔다면서 확고한 핵보유 노선을 천명해왔던 북측이 비핵화 부분에 대해 다소 모호하게나마 여지를 남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접촉에도 북측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하기는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북측이 다음달 대선 이후 출범하는 차기 미 행정부를 염두에 두고, 미측의 여론을 탐색하면서 비핵화에 대한 태도변화는 보이지 않은 채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일각에서 대북 선제타격론과 협상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대화 가능성을 흘리며 대북 제재·압박 기조에 대한 판 흔들기를 시도하는 한편, 이를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위한 틈새를 물색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 차기정부 출범시 우리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미간 대화의 장이 펼쳐질 가능성 등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내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전쟁까지 감수해야 하는 현실적 제약이 따르는 만큼 실전배치가 임박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막판 제동을 걸기 위한 전격 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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