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경제 더 어려울 것"
박재완 "유럽문제, 양대선거, 북한 변화 등 3중 위기 도래"
유럽 재정위기에서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의 위축이 각국의 실물경제를 본격적으로 타격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국내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더욱 둔화하거나 침체에 빠질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다시 손질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을 잇달아 강타한 불황 여파가 예상치를 훨씬 넘어 더욱 매서워지면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는 `확장적 코드'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장관들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비장한 각오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경기침체ㆍ성장동력 위기감 사뭇 달라
`돌다리도 두드리는' 경제부처 장관들이지만, 최근 이들이 드러낸 위기감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우리 경제가 `3중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고강도 경고음을 울렸다.
박 장관은 지난 26일 출입기자단 송년모임에서 "유럽 문제가 (내년) 상반기에 정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20여년 만의 양대 선거(총선과 대선), 북한의 변화 가능성이 맞물려 이른바 3중 위기가 엄습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그는 28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도 이런 불안 요인을 열거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치밀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박 장관보다 한층 `비장한' 어조로 내년을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27일 출입기자단 송년모임에서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가장 걱정하는 게 실물경제"라고 전망했다.
위기 경보가 격상된 것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재정위기 5개국의 국채 만기가 내년 1분기에 2천75억유로나 몰리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경색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금이 국내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맞먹는 충격을 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이미 침체의 늪에 들어서고 있다는 진단도 곳곳에서 나온다.
출산율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저축률 하락과 투자 부진으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 위원장은 22일 금융공학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4% 밑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며 "성장동력 약화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언급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3.6%로 잠재성장률 추정치(3.8%)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잠재 GDP를 뺀 `GDP 갭'이 -7조7천억원의 `디플레이션 갭' 상태가 될 것으로 봤다.
◇추경편성 가능성 거론…연대보증 폐지, 신용대출 개선
이런 위기의식 탓에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초점을 위기관리와 안정에 맞췄다.
거시정책은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경제활력을 높일 수 있도록 상황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운용할 방침이다. 경기부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경기를 지탱하거나 둔화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지난 7일 주택시장 정상화 대책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중소기업 흑자도산을 막는 긴급 유동성 지원제도(패스트트랙)나 기업구조조정 세제지원을 연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경기 하강곡선의 기울기가 급해지면 재정지출을 늘리는 `확장적 코드'로 격상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박 장관은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 "유럽 재정위기 해법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혼돈에 빠지는 상황이 온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 같은 적극적 재정정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위기가 다양한 형태로 가중됨에 따라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다시 손질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외화보유액 공급이나 중소기업 총액한도대출 확대 등 리먼 사태 때 접했던 대책이 큰 줄기를 이룰 전망이다.
특히 한미 통화스와프는 정부가 아껴둔 시장안정 대책이다. 2008년 10월 300억달러 규모로 체결했다가 지난해 4월 종료했지만, 양국은 위기 시 통화협력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부문에서는 기업금융 시스템의 혁신이 먼저 거론됐다. 2008년처럼 상황이 급박해지면 정책금융기관들이 재원을 만들어 유동성을 푸는 방안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일자리를 많이 늘릴 수 있는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금지원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쳐 창업ㆍ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게 금융위의 확고한 의지다.
창업ㆍ중소기업 금융지원은 고질적인 연대보증 관행을 없애는 데 먼저 주력한다.
금융위와 기업은행 경제연구소의 실태조사에서 400여개 창업기업의 4분의 1이 연대보증의 직ㆍ간접적 폐해를 경험했다고 하소연했다. 김 위원장이 "기업인들이 `아무리 말해도 안 되니까 아예 연대보증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전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담보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이 신용대출로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돕는다.
김 위원장은 "신용대출 문제는 반드시 할 것"이라며 "신용대출로 문제가 생겼다고 (금융회사) 담당자를 문책하면 정부가 그 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