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수십만마리 생매장, "안락사 약 동났다"
"MB, 제발 KBS <뉴스9> 보고 구제역대책회의 다시 열라"
이명박 대통령이 6일 긴급 소집한 구제역 관계장관대책회의가 정말 맥없이 끝났다. 축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를 대재앙에 직면한 축산농민들에게 최소한 사과 한마디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없었다. 정부가 구제역 방어에 실패했음이 명명백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안했다.
기껏 나온 지시가 "설 연휴때 구제역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라", "내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한량한 내용이다. 설까지는 아직 한달이나 남았다. 이때까지도 구제역이 계속되면 말 그대로 축산업은 사실상 붕괴된다.
회의에 참석한 장관들도 한심하기란 마찬가지다. 누구도 언제까지 구제역을 잡을 수 있다고 확언하지 못했다. 어느 도는 어떨 것 같고, 다른 도는 어떨 것 같다는 식의 관전평만 나왔다. 현장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무엇이 부족하니 어떤 지원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하니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지가 나오지 않았다.
혹시 요즘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TV뉴스조차 보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인터넷에선 이미 한달째 구제역으로 난리다. 수많은 축산농들이 실시간으로 눈물나는 사연을 쏟아내고 있고,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 식구들도 심각한 현장의 모습을 속속 전하고 있다. MB정권은 워낙 인터넷에 거부반응을 보이니 인터넷 상황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공중파 TV는 다르지 않나.
TV들도 며칠 전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 주재 긴급장관회의가 열리기 전날인 5일 밤에도 TV들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구제역 상황을 전했다.
울면서 생매장되는 수천마리 돼지들, 방역요원 "안락사 약 동났다"
5일 밤, 여러 TV뉴스 중 압권은 KBS <뉴스9>의 '이슈 & 뉴스'였다. 그동안 인터넷 등에서 제기한 문제점들을 헬기까지 동원해 현장에서 제대로 다뤘다. 그동안 정부가 해온 주장이 '말짱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현장 화면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살아있는 가축'들이 그대로 생매장되고 있었다.
KBS 카메라는 5일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충청도의 돼지 농가를 비췄다. 매몰 대상이 워낙 많다보니 산 채로 매장하기 위해 돼지들을 10여m 이상 깊게 파여진 매몰지 낭떠러지로 몰고가고 있었다.
인천시 서구에서도 3천여마리의 돼지가 살아있는 채로 생매장되는 장면도 찍었다. 돼지들도 생매장되는 줄 아는지 끌려가면서 울어댔다.
안락사를 시키거나 마취제를 주사해야 한다는 규정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방역당국은 "찍지 마세요"라며 현장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한 방역 담당 공무원은 인터뷰에서 "(안락사) 주사약품을 조달할 수 없어요. 주사약이 대한민국 안에서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라며 생매장을 하는 이유를 밝혔다. 약품과 인력이 태부족이란 하소연이었다.
![](image/article/2011/01/0613420586205200.jpg)
생매장 때문에 핏물 흘러나와
매몰지마다 핏물이 흘러나와 지금 전국 농촌이 난리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생매장'이라는 사실이 KBS 취재결과 밝혀졌다.
KBS는 "이렇게 생매장을 하다 보면 매몰되는 가축이 발버둥을 치면서 구덩이에 깔아놓은 비닐 등이 찢어져 침출수가 새 나올 수 있다"며 생매장의 후유증을 지적했다.
생활용수에서 핏물이 나오는 영상도 생생히 공개됐다.
지난달 말 경기도 파주에서는 돼지 매몰지 인근 농가에서 생활용수로 먹는 물에 가축 피가 섞여 나왔다. 이 사실을 신고한 주민은 "계속 식수로 먹고 깨끗했고 개도 먹이고 그랬어요. 주민들도 떠 다 마시고...."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KBS는 "1년 전 구제역이 발생했던 경기도 포천과 연천의 경우,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수질 오염이 보고됐던 매몰지는 10곳 가운데 3곳꼴이나 됐다"며 전국적인 '침출수 2차 재앙'을 우려했다.
도로공사 "도로 어니까 소독액 뿌리지 말라"
전국 곳곳에서 1만7천여 명의 방역 인력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으나, 여전히 방역망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KBS는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된 원인과 관련, "먼저 경북지역에서 초등대응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방역 당국은 경북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경기로 옮겨온 지난달 중순을 전국 확산의 시점으로 보고 있는데, 축산 분뇨 차량이 두 지역을 오가면서 옮긴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수도권과 전국을 잇는 촘촘한 도로망을 통해 방역대가 뚫리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지금도 구제역 방어망에 구멍이 뚫려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KBS 카메라에 잡힌 구제역 발생지역의 방역 초소, 하얀 생석회만 뿌리고 있었다. 이유는 추위에 도로가 언다며 소독액을 뿌리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석회는 물과 만나야 고열을 내면서 소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사실상 방역효과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방역직원은 소독액을 뿌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처음에는 물을 뿌리고 하는 걸로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도로공사측하고 협조가 안 됐어요"라고 전했다. 도로 결빙을 우려한 도로공사의 반대로 방역효과가 의심스러운 생석회만 뿌리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image/article/2011/01/0613435782884400.jpg)
이밖에 우수한 종축들을 키우고 있는 국립축산과학원 전직원 160여명이 구제역 감염을 막기 위해 출퇴근도 못한채 수용소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장도 방영됐다. 과학원 사무실마다 빈 공간에는 이부자리가 깔렸고, 차가운 복도 바닥에 직원 예닐곱 명이 잠자리를 폈는 장면도 나왔다. 침낭 밑에 스티로폼을 깔았지만 한기를 온전히 막진 못하고 있었다.
이곳마저 구제역에 뚫리면 수십년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온 한우 등이 몰살하면서 다시 축산업이 30~40년전으로 후퇴하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직원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KBS는 결론적으로 정부가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 백신도 사망-유산 등 각종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전한 뒤, "정부는 백신 접종이 끝나는 앞으로 2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5일 밤 KBS <뉴스9>의 충격적 구제역 뉴스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이제라도 꼭 봐야할 뉴스였다. 그리고 회의를 다시 긴급히 열어야 마땅하다. 지금은 한국 축산업이 정말로 붕괴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