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대표팀 은퇴, "2002년이 가장 행복했다"
11일 나이지리아와 친선전후 16년간 대표팀 생활 마감
"대한민국을 위해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 땀 흘리며 뛰었습니다. 후회 없는 대표팀 생활이었고 행복한 삶을 얻었습니다"
오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와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국민 골키퍼' 이운재(37.수원)에게 지난 16년간의 국가대표팀 생활은 `후회없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운재는 6일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다. 지금은 나의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떠나지만 후회 없는 대표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더 나은 기량과 능력으로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나도 다른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이미 남아공 월드컵 전부터 은퇴를 염두에 뒀고 남아공에서도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생각해왔다"며 "은퇴한다면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나이지리아와 친선전이 예정돼 있어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물러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운재가 A매치에 처음 데뷔한 것은 1994년 3월 5일 미국과 친선경기다.
당시 21살이던 청년은 그해 미국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2006년 독일, 2010 남아공 대회를 거치면서 한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는 베테랑 수문장이자 대표팀의 맏형이 됐다. 지금까지 거친 A매치만도 131경기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지난 16년간 무엇을 얻었는지를 묻자 그는 `행복한 삶'이라고 답했다.
이운재는 "인생에서 축구가 절반이었다면 대표팀 생활은 축구인생의 절반이었다. 축구와 대표팀 생활이 인생을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대표팀에서 뛰면서 이운재라는 축구선수의 삶, 행복하게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인생 자체를 얻은 것이 가장 값진 수확"이라고 말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이운재는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2년 한일월드컵 스페인과 8강전 승부차기에서 신들린 선방으로 이름을 날렸다. `승부차기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도 그때 얻은 것이다.
그에게 지금까지 대표팀 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역시 2002년이었다.
이운재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가 역시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4강 주역 이런 것보다는 당시 조별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주전으로 선택을 받은 게 너무나 기뻤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방'은 의외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들을 꼽았다.
이운재는 "그동안 선방 중에 딱 하나를 꼽기는 어려운데 굳이 고르자면 2002년보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과 경기나 정대세 선수의 골이 무효가 됐던 북한전이 생각난다"며 "마지막으로 열정을 펼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더 큰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골키퍼로서 영광도 있었지만 아픔도 있었다. 이운재는 2007년 7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본선 기간에 음주한 사실이 드러나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당시의 기자회견이 생각난 듯 회견장에 들어오며 "그때보다는 (기자가) 적네요" 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 그는 "대표생활 하면서 그때가 가장 힘들고 가슴이 아팠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고 많은 분들을 실망시켰다."고 덤덤히 말했다.
이어 "그 뒤로 실망한 팬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뛰었고 다행히 2008년 소속팀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한다"며 "후배들은 나처럼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웃었다.
앞으로는 소속팀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겠다는 이운재는 수년 뒤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후의 진로에 대해서는 골키퍼 코치나 감독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운재는 "아직 선수생활 이후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려놓은 건 없다. 나 혼자 바란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지금까지 축구로 살던 사람이 다른 일 하겠느냐. 골키퍼 육성에 힘을 쓸 수도 있고 감독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단은 공부를 더 해야할 것이다. 만약 지도자가 된다면 외국 선진 축구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우리에 맞는 훈련방법들을 접목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일단 제자리에서 차분히 필요한 공부를 한다면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여운을 남겼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한국팀 문전을 지킬 후배 골키퍼들에게는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자만하지 말고 땀을 흘리라"고 주문했다.
이운재는 "대표팀 골키퍼 자리는 더 많은 땀을 흘린 자에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흘린 만큼, 아니 그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그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언젠가 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가 자신의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노력하면 훌륭한 골키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인 만큼 강심장을 갖추고 주변의 질타를 견뎌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와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국민 골키퍼' 이운재(37.수원)에게 지난 16년간의 국가대표팀 생활은 `후회없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운재는 6일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다. 지금은 나의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떠나지만 후회 없는 대표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더 나은 기량과 능력으로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나도 다른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이미 남아공 월드컵 전부터 은퇴를 염두에 뒀고 남아공에서도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생각해왔다"며 "은퇴한다면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나이지리아와 친선전이 예정돼 있어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물러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운재가 A매치에 처음 데뷔한 것은 1994년 3월 5일 미국과 친선경기다.
당시 21살이던 청년은 그해 미국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2006년 독일, 2010 남아공 대회를 거치면서 한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는 베테랑 수문장이자 대표팀의 맏형이 됐다. 지금까지 거친 A매치만도 131경기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지난 16년간 무엇을 얻었는지를 묻자 그는 `행복한 삶'이라고 답했다.
이운재는 "인생에서 축구가 절반이었다면 대표팀 생활은 축구인생의 절반이었다. 축구와 대표팀 생활이 인생을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대표팀에서 뛰면서 이운재라는 축구선수의 삶, 행복하게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인생 자체를 얻은 것이 가장 값진 수확"이라고 말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이운재는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2년 한일월드컵 스페인과 8강전 승부차기에서 신들린 선방으로 이름을 날렸다. `승부차기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도 그때 얻은 것이다.
그에게 지금까지 대표팀 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역시 2002년이었다.
이운재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가 역시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4강 주역 이런 것보다는 당시 조별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주전으로 선택을 받은 게 너무나 기뻤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방'은 의외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들을 꼽았다.
이운재는 "그동안 선방 중에 딱 하나를 꼽기는 어려운데 굳이 고르자면 2002년보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과 경기나 정대세 선수의 골이 무효가 됐던 북한전이 생각난다"며 "마지막으로 열정을 펼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더 큰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골키퍼로서 영광도 있었지만 아픔도 있었다. 이운재는 2007년 7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본선 기간에 음주한 사실이 드러나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당시의 기자회견이 생각난 듯 회견장에 들어오며 "그때보다는 (기자가) 적네요" 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 그는 "대표생활 하면서 그때가 가장 힘들고 가슴이 아팠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고 많은 분들을 실망시켰다."고 덤덤히 말했다.
이어 "그 뒤로 실망한 팬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뛰었고 다행히 2008년 소속팀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한다"며 "후배들은 나처럼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웃었다.
앞으로는 소속팀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겠다는 이운재는 수년 뒤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후의 진로에 대해서는 골키퍼 코치나 감독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운재는 "아직 선수생활 이후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려놓은 건 없다. 나 혼자 바란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지금까지 축구로 살던 사람이 다른 일 하겠느냐. 골키퍼 육성에 힘을 쓸 수도 있고 감독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단은 공부를 더 해야할 것이다. 만약 지도자가 된다면 외국 선진 축구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우리에 맞는 훈련방법들을 접목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일단 제자리에서 차분히 필요한 공부를 한다면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여운을 남겼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한국팀 문전을 지킬 후배 골키퍼들에게는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자만하지 말고 땀을 흘리라"고 주문했다.
이운재는 "대표팀 골키퍼 자리는 더 많은 땀을 흘린 자에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흘린 만큼, 아니 그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그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언젠가 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가 자신의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노력하면 훌륭한 골키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인 만큼 강심장을 갖추고 주변의 질타를 견뎌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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