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드러난 '용산 수사기록 2000쪽'의 진실
경찰 수뇌부 "특공대 투입 중단했어야", "무리한 진압이었다"
농성자측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3일 법원이 복사를 허용한 2천여쪽의 미공개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기록 전문 공개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어 이같은 방식으로 내용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밤새 기록을 검토해본 결과, 검찰이 그간 공개 거부 사유로 내세웠던 '경찰의 사생활 침해', '국가안보'와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우선 과잉진압 논란과 관련, "'정보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특공대 투입은 중지했어야 했다', '그때 (특공대를) 투입해서 작전을 한 것이 무리한 진압이었다', 자기들이 '현장상황을 잘 전달받았으면 중지시켰을 것', '특공대가 작전을 성공시키겠다는 공명심에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는 수뇌부의 진술도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최대쟁점인 화재 원인과 관련해서도 "사건 당시 망루에 진입했던 경찰관 2명이 '화염병이 던져져서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며 "현장에 있던 화재 진압 요원이 '화염병과 상관없는 불길이 망루 처마 밑으로 흘러 나와 불을 껐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의 사전 안전조치와 관련해서도 "당초 옥상, 4층 창문, 지상 순의 진입 계획이 갑자기 변경돼 지상부터 진입하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록에 따르면 경비과장은 검찰에서 "망루 구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는 등 정보 부족과 장비 부족으로 인해 현장에서 작전을 변경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변경된 작전이 잘못됐다"며 "시간도 부족했고 보고도 못 받았기 때문에 이같은 변수로 작전을 중단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진압장비 중 바스킷차가 전혀 지원되지 않았고 화학차도 6대 중 2대만 지원돼 작전을 전면 변경할 수 밖에 없었고, 변경된 작전마저도 잘못됐다는 것.
이와 관련 경찰을 조사하던 검찰도 "경찰이 초반에 시너를 20통으로 파악했으나 실제 현장에 60통이 있었다면 작전 방식을 변경해야 하지 않았냐"고 추궁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사건 전날인 지난해 1월 19일 농성자측에서 대화를 요청했지만 구청이 거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록에 따르면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농성자들을 설득하는 절차가 없으면 나중에 문제가 된다"며 "형식적으로라도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1월19일 농성자측은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구청 측의 거절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경찰은 무조건 밤 10시까지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검찰도 '대화나 설득의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고 실제로도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앞서 1심에서도 당시 용산 정보과 형사도 '이런 참사가 날 정도인데 협상자리 없이 했다는 것이 경찰로도 너무 회한이 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또 "김석기 전 서울청장이 사고 전날 '현장에 시너가 많으니 소방관 옷을 빌릴 수 없나'라고 전화를 걸어 질문했다는 기동본부장의 진술도 나왔다"며 "김 청장은 화재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경찰의 안전대책은 염두에 뒀지만 농성자들의 안전은 신경 쓰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농성자들은 소방관 옷은커녕 방염복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는 얼마나 무리한 진압작전이 개시된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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