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투자 강요? 독약 먹으란 소리"
이준구 "투자 강요했다간 기업은 물론 나라경제까지 거덜"
"투자 강요했다간 기업은 물론 나라경제까지 거덜나"
이준구 교수는 이날 "빵과 고기를 얻으려면 빵 만드는 사람과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닌 이기심에 호소해야 한다"는 아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전날 박희태 대표 발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기업가들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진정한 영웅이며 애국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치장하지 않은 그들의 맨 얼굴은 이윤에 대한 불타는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날 박희태 대표 발언을 거론한 뒤, "기업이 투자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이윤을 얻을 것 같으면 투자하고 손해를 볼 것 같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며 "지금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공황상태로 빠져들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웬만한 강심장도 겁을 내게 마련이다. 이런 때 아무리 기업의 등을 밀어 보았자 꿈쩍이라도 할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 기업에게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독약을 먹으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윤을 낼 자신이 없는 기업이 투자에 나서면 기업 자신은 물론 나라 경제까지 거덜이 나고 만다"고 경고했다.
그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도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기업들의 과잉투자에 이르게 된다"며 거듭 투자 강요의 위험성을 강조한 뒤, " 당장 급하다고 기업의 등을 떠미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정부의 모습은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노총각을 연상케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지금의 투자 부진은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기에 겪는 성장통"
이 교수는 지난 수년간의 투자부진 원인과 관련, "근래 우리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과잉투자 때문에 이제는 전통적 산업에서의 투자 기회가 거의 소진된 상황"이라며 "첨단산업에서는 새로운 투자 기회가 창출되고 있지만,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이것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투자 부진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단계에서 부득이 겪게 되는 성장통이란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 부진에 대해 정부가 조바심을 내는 사정은 이해해 줄 만하나 냉정함을 잃지 말고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어야 한다"며 "지금은 어느 모로 보나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때가 아니다. 세계 경제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가실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기 전에는 관망하는 태도를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업의 생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거듭 투자 강요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지금 이 단계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뿐이다. 하루 빨리 경제를 안정시켜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며 "아무리 급하다 한들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짝사랑으로 끝난 비즈니스 프렌들리
스미스(Adam Smith)는 사람들의 이기심 덕분에 우리의 저녁거리가 생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빵과 고기를 얻으려면 빵 만드는 사람과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닌 이기심에 호소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행동이 남에게 뜻하지 않은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장경제체제를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손’의 놀라운 힘은 바로 여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기업가들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진정한 영웅이며 애국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들이 정말로 봉사심과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이란 뜻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치장하지 않은 그들의 맨 얼굴은 이윤에 대한 불타는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는 것이다.
좋은 경제정책의 요체는 기업가의 이기심이 최대한의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들에게 사회적 이익에 직접적으로 봉사하라고 요구해서도 안 되고 요구할 필요도 없다. 물론 기업 역시 일정한 몫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 책임이란 것이 사회봉사단체처럼 행동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윤추구가 기업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정부는 출범 초부터 자신의 정책기조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점을 계속 강조해 왔다. 마음 놓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테니 일자리와 소득을 많이 만들어 달라는 주문임이 분명하다. 대기업 총수들도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에 화답해 이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1년 전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대규모 투자는 이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초조해진 정부는 협조해 달라는 부탁도 하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해보지만 기업은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정부는 읍소작전으로 바꾼 듯, 이제는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까지 꺼내고 있다. 냉담한 기업의 소매를 붙잡고 매달리는 정부의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기업이 투자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이윤을 얻을 것 같으면 투자하고 손해를 볼 것 같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공황상태로 빠져들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웬만한 강심장도 겁을 내게 마련이다. 이런 때 아무리 기업의 등을 밀어 보았자 꿈쩍이라도 할 리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이 투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이윤을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업에게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독약을 먹으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윤을 낼 자신이 없는 기업이 투자에 나서면 기업 자신은 물론 나라 경제까지 거덜이 나고 만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도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기업들의 과잉투자에 이르게 된다. 당장 급하다고 기업의 등을 떠미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대해 대규모 투자로 화답하지 않는 것이 못내 섭섭한 모양이다. 기업들이 거의 100조원이나 되는 잉여금을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투자할 생각을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게 아니냐는 은근한 압력까지 동원한다. 이런 정부의 모습은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노총각을 연상케 한다.
대기업 총수들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것이 이번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참여정부 때도 그런 약속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약속은 입치레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정부가 애 달아 있는 것 같으니 화답하는 척하는 것일 뿐, 실제로 투자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현 정부 출범 초기 그런 약속을 받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순진해도 이렇게 순진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투자 촉진에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기업들은 으레 규제가 너무 심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는 이 말이 100%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언제나 밑지고 판다고 말하듯, 기업을 하는 사람은 늘 규제 탓을 하게 마련이다.
물론 과도한 규제가 투자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과잉 규제가 투자의 결정적 걸림돌은 아니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불평은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규제의 대못만 뽑으면 봇물 터지듯 엄청난 투자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지금보다 규제가 훨씬 더 심했던 60년대, 70년대에도 줄기찬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래 우리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과잉투자 때문에 이제는 전통적 산업에서의 투자 기회가 거의 소진된 상황이다. 첨단산업에서는 새로운 투자 기회가 창출되고 있지만,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이것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투자 부진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단계에서 부득이 겪게 되는 성장통이란 성격이 강하다.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이와 같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과잉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기업의 엄살을 액면 그대로 믿은 나머지 핀트를 잘못 맞춘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당초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의 투자 창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경제상황이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기업 총수들이 약속한 대규모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 부진에 대해 정부가 조바심을 내는 사정은 이해해 줄 만하다. 그러나 냉정함을 잃지 말고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느 모로 보나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때가 아니다. 세계 경제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가실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기 전에는 관망하는 태도를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업의 생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껏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썼는데도 아무 화답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약 억지로 기업의 등을 미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뿐이다. 하루 빨리 경제를 안정시켜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아무리 급하다 한들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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