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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그곳엔 녹슨 포탄만 가득했다

<현장> 54년만에 상처투성이로 반화되는 매향리 국제폭격연습장

“너무나 오랜 세월을 폭음에 찢겨 살아온 이 땅/너희의 더러운 이 전쟁놀음을 이제 견딜 수 없다/되찾으리라 매향리의 봄 되찾으리라/매화꽃 향기 가득 퍼지는 날에 너를 안고 춤을 추리라.”(안치환 ‘매향리의 봄’)

폭음은 멈췄고 더 이상 사격을 알리는 황색 깃발은 올라가지 않는다. 황금어장을 빼앗긴 채 미 공군 전폭기의 오폭에 이웃들을 잃어야했던 슬픔도 과거사가 됐다.

이제 주민들은 그토록 원했던 ‘평화’를 위해 해상사격장에는 평화박물관을, 육상사격장에는 평화마을을 짓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54년 만에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는 매향리 국제폭격연습장은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

반세기 넘어 되찾은 매향리 연습장, 남은 것은 포탄더미와 오염된 땅

미군이 자체 환경정화를 마쳤다며 지난 14일 반환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쿠니 사격연습장. 지난 21일 배를 타고 들어간 해상사격장 농섬은 녹슨 포탄의 잔해로 가득했다.

매향리 포구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만에 도착한 농섬은 54년간 미군이 퍼부은 포탄의 흔적들이 일반 해안가의 모래알만큼이나 흔하게 널려있었다.

3천평에 달하던 섬은 수만발의 포탄에 깍여 1천여평밖에 남지 않았고 섬 곳곳에는 MK-82/84 BDU-33 등 적게는 2백27kg에서 많게는 9백kg를 훌쩍 넘는 연습탄이 ‘전시’되어있다.

포탄의 중량을 당해내지 못하는 개펄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주민과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여전히 폭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불발탄들의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매향리 육상사격장 넘어로 보이는 농섬 해상사격장.ⓒ뷰스앤뉴스


미군이 지난 14일 매향리를 비롯한 15개 미군기지를 반환하면서 발표한 치유항목에 따르면 이미 이곳 농섬 일대의 불발탄은 모두 제거되어있어야 한다. 토양, 수질오염을 오염정화 항목에서조차 제외한 미군의 치유항목에는 적어도 ‘사격장 내 불발탄 제거’는 또렷이 명시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발탄과 연습탄이 뒤섞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농섬 일대는 미군의 발표가 얼마나 기만적이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폐허가 된 현장은 미군의 일방적인 기지반환을 한미 양국의 협의에 따른 반환이라 주장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게도 협상내용과 반환절차 전반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히 미군에 의해 제거되지 않은 불발탄과 연습탄의 숫자만이 아니다. 과거 수백종의 어패류가 서식하던 황금어장으로 어로활동 주민들의 생계유지가 어렵지 않을 정도였던 이곳은 이미 중금속으로 인한 토양.해양 오염으로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농섬일대, 구리.납.카드뮴 모두 오염기준 초과

미군이 “토지와 수질오염 등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준의 오염은 그때그때 자체적으로 정화했다”며 부정했던 환경오염 정도의 심각함이 54년만에 되찾은 매향리 사격장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8월 15일 매향리 농섬 7곳의 흙과 모래, 갯벌 등 토양샘플을 채취해 전문연구소에 중금속 분석을 의뢰한 결과, 오염수준은 금속공업단지 일대를 넘어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분석결과를 보면 납은 전국 평균 4.8mg/kg의 최고 5백21배에 달하는 2천5백mg/kg이 검출됐다. 이는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우려기준의 25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밖에도 구리는 전국 평균의 13.3배, 토양오염우려기준의 1.3배였고 카드뮴은 23.1배가 검출, 오염기준을 1.4배 초과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 정도 수준이면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토양 오염정화조치를 명할 수 있고 정밀 조사를 실시하게 되어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54년만에 반환된 농섬. 미군 전폭기의 기총사격 표적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뷰스앤뉴스


같은 해 국가지정연구기관인 광주 과학기술원과 서울신문의 토양오염 공동조사도 환경운동연합의 조사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사결과, 납은 4천7백46mg/kg으로 전국평균대비 9백88배가 검출됐고 구리는 80.4mg/kg로 오염기준치를 웃돌아 오염수준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줬다.

이처럼 오염된 땅의 귀환은 결국 우리 정부와 지자체의 몫으로 남게 된다. 오염 치유 비용은 논란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5천억원을 주장하는 정부를 제외하고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또한 기름 유출과 중금속에 따른 토양오염 수준이 심각해 수조원대의 비용을 들인다고 해도 언제쯤 정화가 가능할 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기지를 반환하면서 말했던 ‘이번 기지반환은 한국 국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 주민들은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게 된 것이다.

매향리 주민들 “오염된 땅 주고받은 한미 양국 행위는 범죄”

16년의 오랜 투쟁 끝에 매향리를 되찾은 주민들의 분노는 더하다. 지난 1986년부터 매향리 폭격장 폐쇄 투쟁을 이끌었던 전만규 매향리 대책위원장은 “반세기가 넘게 폭격장으로 사용하며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는 이렇게 오염된 땅을 방치한 채 내놓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 위원장은 “불발탄은 직접적인 인명살상을 불러 올 수 있는 위험한 문제인데도 이렇게 방치한 채 이관하는 것은 범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매향리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로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했던 이 곳 주민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미군의 폭격연습에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임신 8개월의 임산부는 생명을 잃기까지 했다.

매향리 사격장의 폐쇄 논의가 본격화된 것도 지난 2000년 5월 8일 미 공군 주력 전폭기 A-10의 오폭사고로 비롯됐다.

당시 주민들이 ‘방망이탄’이라고 부르는 MK-82포탄 6발이 목표지점인 해상사격장 농섬을 벗어나 매향1리 앞바다에 떨어졌고 이로 인해 마을 주민 7명이 부상을 입었다. 폭음진동으로 인해 파손된 가옥은 5개마을 1백70여채로 전체 가옥의 4분의 1에 달했다.

농섬 일대에는 수십여종의 불발탄과 연습탄이 방치되어있다.ⓒ뷰스앤뉴스


수풀이 짙게 우거져 예부터 그리 불리웠다는 농섬은 섬 전체가 미 공군 전폭기들의 연습 표적지였다.

미군의 폭격연습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51년. 전쟁이 끝난 3년 뒤인 1954년에는 주한미군의 정식 국제폭격장으로 자리잡고 폭격이 중단된 지난 해 8월까지 54년에 걸쳐 포탄세례가 이어졌다.

미군 오폭으로 12명 사망, 황금어장 빼앗긴 주민들의 분노

‘매화향기 그윽한 마을’이라는 매향리는 어느새 매화향기 대신 매캐한 포탄 향기로 채워졌고 예부터 ‘고온리(古溫里)’라고 불리울 정도로 따뜻한 물과 어장이 풍족했던 마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매향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어부로 살았던 전 위원장은 예부터 황금어장이라 불리웠던 매향리 포구의 모습을 생생히 전했다.

“밴댕이, 빙어, 준치, 농어, 삼치, 조기, 놀래미, 낙지, 바지락, 모시조개...씨 뿌릴 비옥한 토지는 없었지만 물 차면 고기 잡고 물 빠지면 망태기 갖고 나가 조개만 채취해도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없었던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전 위원장은 “물이 들어왔다 나갈 때면 어김없이 중금속에 오염된 녹슨 포탄에서 나오는 시뻘건 물이 보인다”며 “이제 이곳에는 단 한 종류의 어패류도 살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실제 매향리 5개 마을에서 여전히 어로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은 5백40가구 2천여명 중 9백명에 달하지만 모두들 가까운 농섬 대신 배로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노습펄로 나가 굴과 바지락을 채취한다.

매향리 포구를 끼고 들어 선 수십여개의 조개구이집과 횟집에서 다루는 어패류는 대부분 노습펄에서 캐온 것들이라고 전 위원장은 전했다.

전만규 대책위원장이 기자회견 도중 MK-82포탄을 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이 포탄은 지난 2000년 미군의 오폭사고 등 숱한 인명을 앗아간다.ⓒ뷰스앤뉴스


전 위원장은 “미군들이 폭격을 중단하고 우리 정부에 이관한다는 계획을 들었을 때에도 이 곳이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도 “주민들이 그동안 받은 피해를 감안한다면 최소한의 오염 치유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거듭 분통을 터뜨렸다.

전 위원장의 분노는 반세기 넘게 반목을 거듭했던 미군을 넘어 기지 관할권을 넘겨받은 지난해 8월 이후 단 한차례의 환경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채 방치한 우리 정부에게로 이어졌다.

“폭격 멈추고 1년 넘도록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정부는 미군의 기지반환 발표를 이틀 앞둔 지난 12일 매향리 주민 20여명만을 육상사격장 내 기지로 불러 환경오염조사 설명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날 설명회에서 정부와 조사를 담당하게 될 환경관리공단 관계자는 환경조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과 자료를 ‘한미 합의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간략한 설명만으로 마무리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정부 측의 설명회를 “미군의 요식적인 오염치유에 편승한 명분쌓기용 설명회”라며 불신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주민들이 그간 겪은 피해와 고통, 땅을 오염시킨 미군의 행위들을 인정한다면 정부가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조사를 강행해서는 안된다”며 “당연히 조사과정에 주민과 시민사회 전문가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격장 폐쇄 이후 1년간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제 오염문제가 불거지니까 부랴부랴 달려오는 정부의 조사결과를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겠냐”며 정부의 일방적인 환경오염 실태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날 매향리 대책위원회와 환경운동연합은 농섬에서 기자회견문을 갖고 이번 미군기지 반환과 관련한 6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선, 지난 2001년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에서 졸속으로 삽입된 ‘환경규정’의 개정을 요구했다.

미 공군기의 기총사격 표적지.ⓒ뷰스앤뉴스


한미 양국의 합의만을 명시했을 뿐, 한국의 환경법 기준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우리보다 낮은 수준의 미국 환경법 기준 적용마저 외면되고 있는 현행 지위협정을 바꾸지 않는 한 반환기지의 오염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이들은 ▲반세기 넘게 어장을 빼앗긴 농어민들에 대한 보상실시 ▲방위비 분담에서 환경 처리비용 공제 ▲감사원 감사 실시 및 협상 관계자 문책 ▲협상내용 공개 및 오염 치유과정 대국민 공개 등을 요구했다.

매향리 대책위, 환경연합 “소파규정 개정하고 관계자 문책해야”

전만규 위원장은 “수십년간 평화를 갈망하며 우리가 싸워 온 이유는 이렇게 오염에 신음하는 땅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정부가 우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 다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섬 곳곳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점심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어선들이 눈에 띄었다. 멀리 노습풀까지 나가 어로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어선들이었다.

전만규 위원장의 한 마디가 가슴을 쳤다.

“반환되는 기지 대부분이 썩어 문드러진 판국에 평택의 비옥한 땅을 내주기 위해 주민들을 내모는 정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우리처럼 평택 주민들도 오염될 땅에서 쫓겨나 새로운 땅에서 거름치고 다시 농사를 지어야합니까?”

2011년까지 반환되는 미군기지는 총 5천1백만평, 평택에 새롭게 제공될 땅의 넓이는 3백60만평. 한미 정부는 돌려받을 땅의 넓이를 강조하며 우리 국민의 ‘이득’을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염된 땅이 확장될 뿐’인 현실이 가로 놓여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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