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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연루 판-검사, 예외없이 '왕의 귀환'

가인 김병로 선생 "법관까지 돈을 먹으면 나라가 위태롭다"

지난 97년이후, 초대형 법조비리에 연루된 30명의 판.검사 중 3명을 제외한 나머지 27명 전원이 현재 변호사로 변신해 성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변호사 개업을 하지않은 나머지 3명의 판-검사들도 현재 모 지검 부장검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장판사 등의 현직에 있는 것으로 밝혀져, 법조비리 이후 비리연루 혐의를 받았던 판.검사들이 실질적 불이익을 받은 경우는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뷰스앤뉴스>는 19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한상희 건국대 교수)의 자료를 바탕으로 ▲의정부 법조비리(1997년 10월) ▲대전 법조비리(1999년 1월) ▲이용호 게이트(2001년 7월) ▲진승현 게이트(2002년 12월) ▲인천지법 골프접대 사건(2004년 4월) 등의 대형 법조비리 사건에 연루된 당시 판-검사들의 이후 행적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인사들은 명단에서 제외해 그나마 연루자가 30명선으로 대폭 줄었다.

‘의정부 법조비리’ 연루 판사 8명중 7명 변호사 개업

1997년 11월, 이순호 변호사를 주축으로 한 14명의 현직 변호사가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 15명에게 금품을 제공해 초대형 법조비리 1탄으로 기록되는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이 사건의 경우, 금품을 받은 8명의 판사 중 5명이 6~10개월의 정직처분을 받았고, 비리에 연루된 1명의 판사는 견책 조치를, 나머지 2명의 판사는 징계 전 사표를 던졌다.

이들 8명의 판사들 중 7명은 비리사건 이후 모두 변호사 개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변호사로부터 1백40만원을 받고 견책 처분을 받은 Y판사만이 대전지법으로 전보조치돼 현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다.

변호사로부터 1백20만원을 수수하고 2천2백만원을 무이자로 차용한 혐의로 ‘정직 10월’에 처해진 서울 북부지원 S판사는 정직이 풀린 직후인 1998년 9월, 판사직을 버리고 곧바로 변호사로 변신했다. 같은 사건으로 정직 6월의 징계를 받은 의정부지원의 L판사와 J판사도 각각 1998년 8월과 7월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특히 징계 전에 사표를 던져 징계를 피한 O판사와 K판사의 경우, 정직 처분을 받은 다른 비리 판사들에 비해 오히려 2~3개월 일찍 변호사 개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을 종합하면 법원이 이들 비리 판사를 공식 징계한 1997년 11월을 전후해 1년이 되기 전에 비리연루 판사 전원이 변호사로 직을 바꾼 셈이다.

대법원 입구에 쓰여진 '자유. 평등. 정의'라고 글귀가 계속 터져나오는 법조 비리로 무색해 보인다. ⓒ뷰스앤뉴스


비리 지검장-부장판사 사표 쓰고 두세달만에 변호사 개업, '왕(?)들의 귀환'

‘의정부 법조비리’가 브로커 변호사와 판사들간 검은 커넥션 비리였다면, 이종기 변호사를 구심점으로 1999년 1월에 터진 ‘대전 법조비리’ 사건은 전-현직 판.검사는 물론, 경찰 인사까지 포함된 법조비리 백화점이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된 법조계, 경찰 인사만 총 1백여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비리연루 판-검사 6명에게서 사표를 수리 받고, 검사 2명에 대해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검찰은 비리에 연루된 검사들 가운데 당시 대구고검장을 맡고있던 심재륜 고검장을 면직 조치하고, 2백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제갈융우 당시 춘천지검장에 대해서는 경고 후 인사조치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변호사로 변신해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돌아왔다.

5백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최병국 당시 전주지검장과, 6백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윤동민 당시 법무부보호국장(검사장급)은 검찰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 전 사표를 냈다. 같은 사건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L대전지검차장, C서울고검검사, J대전고검검사 등도 징계 전에 사표를 던졌다.

특히 최병국 당시 전주지검장의 경우 사건 발생 직후 사표를 던져 제대로 된 징계조차 받지 않음은 물론, 불과 석달 후에 서초동 법조타운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윤동민 전 법무부보호국장 역시 현재 종로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있다. 징계 전 사표를 던진 L,C,J 검사 등도 사건 발생 직후 두, 세달, 길게는 다섯달 이내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당시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맡고있던 L판사는 법원 징계 전 곧바로 사표를 던지고 사건 발생 '두 달'만인 1999년 3월에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 배포도 보였다. 나머지 비리 연루 혐의를 받은 4명의 판사들의 경우, 1명은 사표를, 나머지 3명은 1백만원 이하의 비교적 낮은 금액을 수수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제대로 처벌도 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낙마한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광주고검장, 그리고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된 신광옥 전 법무부차관 역시 하나같이 변호사로 변신해 법조계로 귀환했다. 특히 신 전 차관의 경우 2004년 7월, 검찰출신 후배 변호사 10여명을 거느리고 H로펌 대표 변호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왕들의 화려한 귀환이다.

법조계의 '왕들의 법칙', ‘비리연루→사직→변호사 개업→전관예우'

법조비리 사건의 공통점은 일단 비리 혐의가 밝혀진 판.검사들은 사표부터 쓰고 본다는 사실이다. 일단 사표를 내면 더이상 문제 삼지 않고 사건을 덮는다. 사실상 법원과 검찰이 제식구를 감싸는 모양새다.

최근 열린우리당 등 정치권에서 비리 의혹을 사고있는 판.검사들에 대해 관계기관이 사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칭 ‘비위공직자 의원면직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의원면직(스스로 사표를 제출하는 행위) 금지만으로 법조비리를 뿌리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당의 한 당직자는 “사표를 못내게 해서 해당 판.검사에게 징계를 하면 뭐 하겠냐”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은 다시 변호사로 개업해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관건은 이들 비리 판-검사가 자유로이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정부 입법안으로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개정 법률안은 비위 혐의로 퇴직한 전직 판.검사가 변호사 등록을 신청할 경우, 이를 심사하는 대한변호사협회 내 등록심사위원회가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장관에 이들 인사들의 비위 사실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변호사법 제11조 1항 이하 신설) 변협 등록심사위원회가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비리 법조인들에 대한 변호사 등록 여부를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개정법률안은 또 2회 이상의 실형선고를 받은 법조인에 대해서만 변호사 자격을 영구 박탈하고 있는 현행 변호사법을 "2회 이상 집행유예를 포함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법조인사들은 법조계에서 영구 퇴출한다"고 적시하고 있다.(동법 91조 개정)

그러나 한 법조계 인사는 이 개정안과 관련, “아무리 변협에서 비위 사실을 참고한다 해도 어차피 같은 ‘동네사람’인데 쉽사리 퇴출 시키겠나?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의 뿌리깊은 '제식구 감싸기' 관행이 법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법조비리에 연루된 법조계 인사에 대해서는 해당 사법기관이 징계 전에 이들 인사들에 대해서는 사표를 수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비리에 연루된 판.검사들에 대한 징계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다. 심할 경우 이들 비리 판.검사들에 대해 영구적 변호사 자격의 박탈도 가해진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법도 국회에 제출돼 있긴 하다. 2004년 9월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은 판.검사가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할 때,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 최종 관할 근무지에서는 형사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요지의 변호사법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전관예우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국회는 묵묵부답이다. 국회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율사출신 의원들이 수두룩한데, 자기들 밥그릇 깨는 일을 하겠냐”고 비꼬았다. 만성적 법조비리에 국회 책임도 적지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인 김병로 선생 "법관까지 돈을 먹으면 나라가 위태롭다"

법조계 지망생들이 사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연수를 받을 때 반드시 읽는 필독서가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일대기다.

가인은 생전에 "법관까지 돈을 먹으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했다.

가인은 1954년 9월 당시 서울지법원장 김모 판사가 사건청탁을 둘러싸고 45만환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을 때 "사법관으로 청렴한 본분을 지킬 수 없을 때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야 한다"고 질타했다.

혹시 비리 연루 법조인들은 가인이 말한 이 말을 "그래 판-검사 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전의 가인 김병로 선생. ⓒ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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