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케이트 vs 해머-전기톱
<현장> 한미FTA 비준 상정 6시간 '난투극'
한나라, 문걸어 잠그고 바리케이트 쳐
한나라당은 전 날 저녁 보좌진과 경위 등을 배치해 국회 402호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의회실 문앞을 원천 봉쇄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또한 당 소속 통외통위 위원 17명 전원에게 이 날 오전 7시까지 회의장에 집결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박진 통외통위 위원장 등 10여명이 약속된 오전 7시 통외통위 회의실에 집결했고, 이들은 곧 보좌진 일부와 국회 경위 등과 함께 회의장 안에서 출입문 3곳을 걸어잠겼다. 이들은 회의장 안 출입문 앞에다가 의자와 쇼파, 책상 등으로 바리케이트를 쳤다.
오전 8시께 뒤늦게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서둘러 통외통위 회의장으로 몰려갔고 이 과정에 민주당 최규식 의원만이 회의장에 유일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굳게잠긴 회의장 문은 열리지 않았고 더 이상 민주당 의원들의 진입이 이뤄지지 못했다.
민주당은 뒤늦게 원혜영 원내대표를 필두로 모든 의원, 당직자, 보좌진 집결을 명령했고, 이에 박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회의장 문 앞에 버티고 있던 국회 경위들과 정면 충돌했다. 강기갑, 이정희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가세했다.
민주-민노, 해머와 망치로 회의장 문 부숴
밀고밀리는 실랑이끝에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민주-민노당 관계자들이 국회 경위들을 밀어내고 회의장 문 앞을 차는 데 성공했다. 회의장으로 통하는 3곳의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오전 10시를 넘기면서 민주-민노당 관계자들이 해머와 망치를 동원, 회의장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회의장 앞에서 전원 손을 들고 카메라 앵글을 막았고, 밑으로는 돗자리를 치켜들어 카메라 포착을 이중 삼중으로 막았다.
얼마 뒤 경위들을 도우러 한나라당 보좌진들이 가세하면서 여야간 또다시 밀고당기는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양측은 상대방 의원들에게도 거친 욕설을 내뱉는 등 그야말로 이성을 잃었고, 몸싸움이 수시간 계속되자 회의장 통로는 땀냄새가 진동했다.
양측 보좌진간 싸움은 의원들간 싸움으로 옮겨붙었다. 한나라당 보좌진으로 보이는 한 인사가 몸싸움 도중 민주당 여성 보좌진이 들고있던 돗자리를 빼았자 해당 여성이 "어디를 만지는 거냐"고 발끈했고, 이를 보고 있던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언제 가슴을 만졌냐"고 응수했다. 이에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권 의원이 직접 봤냐"며 두 사람간 설전으로 이어졌다.
민주-민노, 살수-진기톱 사용하자 한나라는 소화기로 응수
오전 11시 20분, 실랑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민노당이 회의장 중앙 통로문을 계속해서 해머로 두들겨 결국 두쪽 중 한쪽문을 뜯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미 회의장 안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경위들이 바리케이트를 처 놓은 상태이기에 민주당은 다시 나머지 한쪽 문 뜯기를 시도했다.
민주-민노당은 이후 12시 5분께 나머지 한쪽 문도 뜯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성인 키를 훌쩍 넘기는 바리케이트 때문에 회의장 진입은 불가능했다. 회의장 안에 있던 경위들은 진입을 시도하는 민주-민노당 관계자들을 또다른 집기로 밀쳐내는 등 난투극을 벌였다.
예정된 오후 2시 전체회의 개회 시간을 30여분 남겨둔 오후 1시30분께, 민주-민노당은 바리케이트를 뚫기 위해 전기톱까지 동원해 집기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화호스까지 동원, 집기 틈새 사이로 난 구멍에다 넣고 물을 뿌려 회의장 안에 있던 의원들과 경위들이 물세레를 받기도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과 경위들은 안에서 소화기로 응사, 상임위 복도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어 살수 소식을 접한 한나라당 보좌진과 경위들이 이를 막기 위해 추가로 투입되다가 민주-민노당 관계자들과 충돌, 국회 승강기 옆으로 난 전신 유리창이 깨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후 2시만 되기를 바랐던 한나라, 1분만에 FTA 비준 상정 처리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상임위 개회를 10분 앞둔 1시 50분께 상임위원장실 앞에 모여 문을 두들기며 이제라도 문을 열어 줄것을 요구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10여분이 지난 오후 2시 3분,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열린 문으로 뒤늦게 회의장에 들어간 민주당 의원들은 박진 위원장이 한나라당 의원들만으로 개회를 선언하고 FTA 비준안을 1분만에 상정한 사실을 알게됐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박진 위원장의 명패를 들고 "매국노 박진", "'ㄴ자'만 빼면 박지다", "박진 어디 갔나"라고 원색 비난을 퍼부었다. 원 원내대표 또한 "박정희 유신 이래로 이렇게 점거한 상태에서 날치기를 한 사례가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 날 회의장 쟁탈전에 가세하지는 않았지만 이회창 자유선진당 의원도 뒤늦게 회의장에 들러 민주-민노당 의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등 야3당 공조 투쟁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대치중이던 여야 관계자들은 간간이 "좀 쉬었다 하자", "힘 좋네"라며 농을 섞어가는 등 사실상의 쇼를 벌였다. 대치중이던 여야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국회 청소 용역 여성 십수명이 긴급 투입돼 서둘러 국회 복도와 상임위 내부를 청소하느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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