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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지금 '재난 이후 재난'으로 신음중"

[토론회] "기름유출사고 교훈 얻지 못하면 재앙 되풀이"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가 태안 해안에서 일어난 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재난 이후의 재난'이 계속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였던 허베이 스피리트호 측의 배상액 규모가 4천억원대가 정해지고 정부가 전액 우선 지급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태안 주민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악화되고 보상 문제로 인한 지역사회의 불신이 심화되는 등 후유증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학자들 "환경재난이 사회적 재난으로 확산"

21일 시민사회연구소와 한국환경사회학회가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세미나실에서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에서는 '태안 사태'를 바라보는 환경사회학자들의 우려 섞인 시선들이 터져나왔다.

생계의 터전을 빼앗긴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는 태안 주민들에게 단순히 피해액 규모나 지원기금의 집행 여부에만 집중해서는 2차, 3차 재난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들이었다.

한국환경사회학장인 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태안의 상황을 '재난 이후의 재난'이라고 명명했다. 박 교수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는 환경재난이지만, 환경재난이 대체로 그러하듯 주민의 삶에 총체적인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따라서 사고의 생태적 영향과 별도 사회경제적.심리적 영향은 최소한 3~5년간 계속해서 관찰되고 분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재난의 특징은 사고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재난의 영향이 곧 바로 경감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차원의 새로운 재난을 발생시키면서 그 영향이 확대되어 나갔다는 사실에 있다"며 "한편으로 바다와 연안에서는 방제작업으로 오염이 제거되어 갔지만, 지역사회는 새로운 재난을 겪게 됐다"고 지적했다.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난 지 1백38일이 지났지만 태안 피해주민들의 후유증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연합뉴스

박재묵 교수 "생태계 변화, 직접적.즉각적으로 주민 삶에 충격 가해"

그는 특히 "대다수 주민들의 생계활동이 자연환경 자체에 의존하는 관광업이나 자연적 과정에 의존하는 농업 및 어업에 의존하는 연안 지역사회에서는 생태계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주민 삶에 충격을 가한다"며 "이 때문에 환경재난은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태안은 서해 연안지역 중에서도 특히 바다에 의존하는 경제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태안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 어가는 3천4백12가구, 어가인구는 8천6백34명, 어업종사자는 6천1백71명으로 전체 가구의 13.2%에 이른다. 특히 피해 지역은 어업과 관광업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피해는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박 교수는 이처럼 환경재난이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재난관리 당국의 비효율적인 대처를 꼽으며 구체적으로 △긴급 자원 조달의 실패 △위험소통 상의 문제 △거버넌스 부재의 문제를 지적했다.

사고 후 소득활도잉 중단된 주민들에 대한 생계비 지금이 늦어지면서 태안 주민들의 절망감이 커져 갔고 보상금 지급에 대한 정보가 소통되지 않으면서 어민들의 자살이 이어지는 등 지역사회 전체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사고 관련 기업, 시민사회 등의 협력체제가 갖춰지지 않아 각자의 영역에서만 활동하면서 그만큼 지역사회의 복원이 늦어졌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처럼 대형 재난 사고 발생과 이후 심화되는 지역 사회의 붕괴 현상을 '위험사회론'을 대입해 분석했다. 위험사회는 과학기술 등 문명의 발전에 따라 자연 재해 등 외부적 위험 요소가 아닌 인간에 의해 생산된 새로운 위험이 내재화된 사회를 의미한다.

"책임있는 기업 법정 뒤로 숨을 때 피해주민들은 절망"

그는 "위험사회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회적 부를 생산하고자 하는 데서 초래된 것이라고 할 때, 감수한다는 것은 계산과 예측 행위를 포함한다. 압축적 성장 과정에서는 체제 자체가 이러한 계산과 예측을 ‘구조적으로’ 허용치 않은 데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사회 전체의 민주화와 합리화, 도덕적 중심을 세울 수 있는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참여민주주의 실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태안 지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교훈은 적절한 사회적 대응이 결여될 경우, 1차 재난으로부터 2차 재난으로의 재난 증폭이 일어나기 쉬우며, 이러한 재난의 증폭을 막기 위해서는 재난에 대비한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안전망 구축을 위해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책임 당사자의 책무 이행이다. 따라서 ‘책임의 제도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것이 바로 위험사회를 넘어서는 책임사회 구현의 기초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책임 있는 기업이 법정 뒤로 숨는 동안에 피해자는 절망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도 시민과 마찬가지로 재난 상황에서는 법률적 책임은 물론 윤리적 책임과 자선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삼성중공업의 초기 미온적인 대응을 비판했다.

노진철 교수 "비용 줄이려 단일선체 선택하면 재앙 되풀이"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이번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는 대형 해난사고에 의한 환경오염 재난으로서 전형적인 인적재난"이라고 규정하며 특히 "2007년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수입 원유의 56%인 6천1백만톤이 단일선체 유조선에 의해 운송됐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운송비용 최소화를 위해 단일선체를 선택하는 한 우리 연안 해역은 기름유출사고와 같은 생태학적 재앙이 되풀이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기름유출사고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및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난 태안 피해 주민들은 현재까지도 수면장애 호소, 음중량 증가, 약복용 증가 등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환경연구소와 한국환경사회학회가 공동으로 태안군 피해 읍면 6곳의 주민 4백64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은 59.1%에 달했고 약복용이 증가했다는 응답자도 45.8%에 이르렀다. 또 음주량, 흡연량, 가정불화, 이웃불화, 술문제발생 빈도도 현저히 늘어 기름 유출 사고 이후 겪는 정신.신체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안 피해주민 54.7% '수면장애', 80.1% '정부 불신'

태안주민들의 이 같은 정신.신체적 피해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해경 등 정부 측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는 불과 19.9%만이 믿는다고 답했고 태안읍도 24.3%에 불과했다.

초기 대응 미숙으로 사태를 확산시켰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해경의 신뢰되는 정부 당국보다 더 낮은 15.4%였고 삼성유조선은 6.5%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반면, 자워봉사자는 87.9%, 이웃주민 70.3%로 높은 신뢰를 보냈고 환경단체도 47.9%로 비교적 높았다.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은 대책위는 35.8%로 정부 당국보다는 높았지만 60% 이상의 주민들이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시종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기름유출 사건에 의한 사회적 영향은 단기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장기에 걸쳐서 일어난다"며 "앞으로 수산업, 관광업, 상업 등의 산업의 변화, 인구의 이동, 지역사회의 해체 등 장기적으로 영향이 나타나는 부분에 대해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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