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명예교수 별세...민주화인사에서 극우인사로
유신시절엔 민주당 운동, 말년엔 태극기부대 집회 참여
5일 유족에 따르면 숙환으로 입원 중이던 김 교수는 전날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는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유신시절에는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함석헌옹이 발간한 '씨알의 소리'에 박정희 정권에 비판적인 글을 쓰다가 1974년 민청학련의 배후로 몰려 구속기소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얼마 뒤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고 대학에서 해직됐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도 연루되며 대학에서 또다시 해직됐다.
그러나 그후 3김씨 정계은퇴를 촉구하는 등 보수인사로 변신, 1991년 강경대 구타 치사사건이 발생하자 강의 도중 "열사라고 부르지 말아라. 어린 나이에 뭘 알아서 데모를 나갔겠느냐"고 비하했다가 학생들 반발에 강단을 떠났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하면서 정치권에 뛰어들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강남구 갑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했으나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국민행동본부 등이 주최하는 집회에서 적극 참여하며, 극우 언론과 각종 인터넷매체에 수시로 칼럼을 게재하는 등 극우로 변신했다. 지난해까지도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운영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말년까지 정치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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