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민식 MBC PD 칼럼 삭제하고 사죄
김민식 "어머니께 죄송", 진중권 겨냥했다가 오발탄
<내조의 여왕> 등의 연출자로 유명한 김민식 드라마 PD는 10일 <한겨레>에 '지식인의 진짜 책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한겨레> 고정필진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는 책을 읽지 않는 반면, 어머니는 다독가임을 밝힌 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로 당해내지 못했다”며 “말싸움 끝에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어머니는 끝끝내 비참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공부란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며 “내가 책에서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적용하면 그건 폭력”이라고 강변했다.
나아가 “책을 더 읽어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면 좋으련만, 다독의 끝에서 지적 우월감만 얻었다”며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아버지는 그걸 정서적 폭력으로 받아들이셨다”며 어머니 태도를 거듭 문제 삼았다. 이어 “더 똑똑한 어머니가 한발 물러나서 부족한 아버지를 감싸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다.' 상대를 계도의 대상으로 본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위험한 건 혼자 너무 많이 읽는 사람”이라며 “자칫 선민의식에 빠져 대중과 유리될 수 있다”면서, 지식인이 SNS에서 세상을 조롱하고 언론이 이를 확대 해석하면 사람들이 이를 보고 분노한다며 진중권 전 교수 등을 겨냥했다.
그는 “책을 읽어 내 자존감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훈련도 필요하다”며 “그것이 지식인의 진짜 책무”라는 훈계로 글을 끝맺었다.
김 PD 칼럼은 독자들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수백개의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결국 <한겨레>와 김PD는 사과에 나섰다.
<한겨레>는 인터넷판에 올린 사과문을 통해 "10일치 26면에 실린 김민식 피디의 칼럼 ‘지식인의 진짜 책무’가 가정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부적절한 내용임에도 걸러내지 못했다"며 "외부 필진의 글은 되도록 원글을 존중하는 원칙을 갖고 있으나 이번 경우 그런 이유가 변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특히 독자들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 내부에서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데 대해 심각성과 책임을 느낀다"며 "한겨레와 필자의 사과문을 온라인에 게재하고 칼럼은 삭제했다"고 덧붙였다.
김 PD도 사과문을 통해 "독자 반응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뿐"이라며 "아버지의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주제로 글을 쓰다 정작 저 자신이 그 자세를 놓친 것 같다. 아직 공부가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무엇보다 철없는 아들의 글로 인해 혹 상처받으셨을지 모를 어머니께도 죄송하다. 많은 분의 지적을 받기 전에는 놓치고 있던 점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지 않았나 뉘우치게 된다"며 "나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긴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글을 쓴 김민식 피디는 나와 안면이 있는 분.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가슴이 아프네요"라며 "이 글을 쓴 김민식 피디나, 그 글을 그대로 내보낸 한겨레 데스크나, 그 글이 왜 문제가 되는지 미처 인식하지 못 했을 겁니다. 머리로는 진보라 생각하나, 몸으로는 수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중성. 그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이 이중성이 내가 그들에게 등을 돌린 이유였겠죠. 언젠가 이를 '오인'(meconnaissance)이라 부른 바 있지요"라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이 사안에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그 이중성은 다른 모든 사안에서도 나타나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 눈엔 비판을 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겁니다. 슬픈 일"이라며 "아무쪼록 그가 이제라도 그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그들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가 이 일로 글 쓸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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