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자기분열, '1면 따로 사설 따로'
1면 "한은, 기준금리 내려라" vs 사설 "가계부채는 시한폭탄"
하지만 2일 <조선일보>의 1면 톱기사와 사설은 180도 정반대여서, 보는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날 1면 톱기사 제목은 <경기부양 팔짱낀 한은의 시대착오>였고, 부제는 <'우물 안'의 한은-세계 중앙은행들은 불황 막으려 금리 내리고 돈 풀기 전쟁. 中, 석달새 2차례 금리인하...한국은행만 과거정책 얽매여>였다.
<조선>은 기사를 통해 "한국은행은 어려운 국내 경기 상황과 0%대 저물가에도 선제적인 대응은 고사하고, 번번이 시기를 놓쳐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한은이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과거의 정책 목표에서 벗어나지 못해 통화 당국으로서 존재감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한다"며 한은을 융단폭격했다.
<조선>은 이어 3면 전체면을 할애해서도 <올 들어 유로존-11개국 금리인하...불붙은 통화전쟁, 한국만 뒷짐> <"0%대 기준금리도 가능...비현실적인 얘기 아니다> 등의 기사들을 통해 가계부채 폭등을 우려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미온적인 한은을 초토화했다.
<한은 "금리 내리면 가계부채 금증-해외투자금 유출">이라는 제목의 꼭지를 통해 한은의 입장을 전하면서도 "그러나 금리를 내리면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해외 투자금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고 반박했다.
1면과 3면의 요지는 요컨대 한은에게 가계부채 운운하지 말고 현재 2%인 사상최저 기준금리를 또다시 내려 경기를 적극 부양하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이날자 사설 제목은 <'눈덩이' 가계 부채 방치하면 경제 회복도 어려워진다>였다.
사설은 지난 1~2월 7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사상 최대 규모로 폭증했음을 지적한 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되면 가계 부채 부실(不實)이 급증하고 금융회사들이 큰 타격을 입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사설은 이어 "경제 상황에 맞춰 정책의 무게 중심을 바꿔가야 한다"면서 "작년엔 경기 부양에 역점을 뒀다면 이제부터는 가계 부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가계 부채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며 가계부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사설도 1면 톱기사와 정면배치되는 모순을 의식한 듯, 가게부채 급증 원인이 크게 두가지라면서 "하나는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작년 8월부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금융 규제를 완화한 것"이라고 "다른 하나는 전셋값 폭등을 견디다 못한 세입자들이 주택 구입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라며 마치 금리인하는 주원인이 아닌 것처럼 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최경환 경제팀의 전방위 압력으로 한은이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한 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폭증했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아는 '기초상식'에 속한다.
이같은 <조선일보>의 '1면 톱기사 따로, 사설 따로'는 현재 정부나 주류언론이 심각한 정신분열적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동시에, 부작용은 나중에 고민하고 우선 경기부양부터 하고 보자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모 경제부처 수장은 얼마 전 사석에서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악마하고도 손 잡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그의 말마따나 지금 정부는 노골적으로 악마와 손을 잡기 시작한 모양새다.
여기에다가 '국내 1등 신문'이라고 자부하는 <조선일보>가 편집국은 정부와 건설업계 등에 발맞춰 한은에 추가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논설위원실은 정반대로 가계부채 시한폭탄이 폭발 직전임을 역설하는 등 엇박자를 빗고 있으니, 한국경제라는 배가 벼랑 끝을 찾아 산으로 산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는 것도 필연으로 보인다.
앞서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지난달 5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가계부채 7대 위험국가'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신중한 거시경제 정책" 등, 금리인하와 대출규제 완화에 반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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