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멍청하고, 버냉키는 못믿겠고"
<뷰스 칼럼> 최악의 '패닉 법칙', 월가는 지금 '불신시대'
패닉의 두 얼굴은 '탐욕'과 '공포'다. 지난 수년간 거듭된 거품 경고에도 불구하고 '탐욕' 행군을 벌여온 투자가들이 일제히 '공포'에 사로잡힌 양상이다. 왜 이런 일이?
"부시는 멍청하고 버냉키는 못믿겠고"
이번 '패닉'의 뿌리는 서브프라임이란 부동산 거품 파열이다. 거품중 최악의 거품이 부동산 거품이란 경제학의 속설이 또다시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패닉'의 촉발제는 지난 18일(미 현지시간)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긴급경기부양책이었다. 1천450억달러의 막대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게 도리어 전세계 금융시장에 '패닉'을 초래한 것이다. 이유는?
"부시는 멍청하고, 버냉키는 못믿겠다."
최근 월가 '큰손'들과 긴급접촉한 국내 자금시장의 '큰손'이 22일 기자에게 전한 월가의 '패닉 이유'다. 월가는 우선 부시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질타했다 한다.
"부시는 역시 경제는 깡통이다. 1천450억달러면 큰 돈이다. 그런데 이 돈을 국민과 기업들에게 나눠주는 멍청이가 어딨나. 소비침체가 왜 생겼나. 서브프라임 부실 때문 아닌가. 차라리 힐러리 주장대로 서브프라임 피해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쓰는 게 정답이다. 그래야 금융부실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금융불안도 잠재울 것 아닌가. 부시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패닉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벤 버냉키 미연준(FRB) 의장에 대한 월가의 불신도 대단하다 했다.
"버냉키는 '한마디로 못믿겠다'이다. 카리스마가 없다. 시장은 심리적 공황상태다. 미연준 의장이 할 일은 '나를 믿고 따르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금리인하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하면 된다. 반대로 금리인하는 안된다, 독이다, 지금은 고통을 참을 때다, 라고 판단하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시장에 믿음을 줄만큼 확실한 지도력을 보여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러니 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질 수밖에."
이렇듯 부시라는 '정치대통령'도, 버냉키라는 '경제대통령'도 모두 믿음을 못주니 월가가 요동치고 전세계 금융이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게 월가의 탄식이었다. 일각에선 "이러다가 미국이 IMF사태를 맞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돈다 했다.
"월가는 지금 상호불신의 시대"
물론 부시나 버냉키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더 욕을 먹어 마땅한 곳은 다름아닌 '월가'다.
월가의 최대 잘못은 '은폐'다. 서브프라임 손실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다. 지난해 3월 1차 서브프라임 사태때 월가는 "손실이 끽해야 5백억달러 정도다. 끄떡없다"고 호언했다. 웃기는 얘기였다. 미국의 모기지 대출은 10조달러고, 서브프라임 대출은 1조2천억달러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두자리 숫자를 넘어 급증하는데 5백억달러 운운은 애당초 속보이는 거짓말이었다. 그러다가 7월 2차 서브프라임 위기가 오자, 그때는 예상 피해액을 1천억달러 정도로 높였다. 이 또한 거짓말이었다. 일각에서 3천억~5천억달러가 될 것이라 지적했으나 월가는 펄쩍 뛰며 부인했다.
그러다가 연초 26개 대형은행 손실만 1천억달러를 돌파하고, 급기야는 버냉키 미연준의장이 "5천억달러는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보수적 집계를 하는 미연준의장이 '5천억달러'를 언급했다는 것은 피해가 그 이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반기 세계 중앙은행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월가 은행들이 서로 속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제일 문제라 하더라"고 전했다. 금융의 생명은 '신뢰'인데 서로 피해를 은폐하느라 급급하다 보니, 월가 은행들끼리도 서로 돈을 안 빌려준다 한다는 것이다. 요즘 대규모 손실로 자본잠식 위기에 직면한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중동에 호소, 투자를 받은 것도 월가의 상호불신 때문이다.
한국투자가들이 해야 할 일 "허명 아닌 진짜실력자 찾아라"
문제의 심각성은 이렇듯 세계경제중심인 미국의 상황이 엉망이다 보니, 서브프라임 위기는 앞으로 상당 기간 '확대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아시아 증시가 21~22일 연속 패닉 상황을 연출할 것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것이라는 극한 위기감때문이다.
따져보면 국내 상황도 문제투성이이긴 마찬가지다. 국내는 지난해 외국인들이 60조원대나 주식을 팔고 나갈 때도 '묻지마 펀드' 열풍으로 난리였다. '중국펀드' '브릭스펀드' 열풍에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 증시창구로 몰려들었다. 이 과정에 전체펀드액의 38%가 미래에셋 한군데로 몰리는 기형적 사태까지 발생했다.
증권사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호언했다. "미국이 쓰러져도, 중국-인도 등이 있다. 우리 펀드수익률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글로벌리제이션의 ABC도 모르는 웃기는 얘기다.
한국 증시 운영자들의 최대맹점은 대표적 펀드매니저들이 '상승장'만 경험했다는 것이다. 월가의 경우 '먹은 경험'과 '깨진 경험'이 병존한다. '투 텀'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나름의 '리스크 관리' 기법이 있다. 모두가 '깨질 때' 덜 깨지거나 아니면 버는 게 진짜 실력이다. 조지 소로스가 세계 헤지펀드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도 1987년 미국증시 폭락때 유일하게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펀드 가입자들 사이에선 증권사에 대한 원망이 봇물터지고 있다. 속았다는 것이다. 대다수 펀드 가입자들이 원금을 까먹는 상황이 됐으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이 또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지금부터 잘 봐야 할 것이다. 국내의 4천여개 펀드중 누가 돈을 버는가를 봐야 한다. 몇이나 될지는 모르나, 진짜 실력자가 누구인지 찾으라는 거다. 더이상 '허명'에 몰려다녀선 안된다. 지금 우리는 비싼 '학습비용'을 치루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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