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 가장 격렬한 선거 될 것"
[2007 대선 향후 1년] 박성민 민기획 대표, "진보 분열하면 궤멸"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앞으로 꼭 1년 뒤로 다가온 차기 대선과 관련 “2007년 대선은 87년 대선 이래 가장 격렬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민 70%가 차기정권을 한나라당이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분석이다.
"진보진영 분열하면 힘없이 패배로 이어질 것"
박 대표는 대선 승리 전략으로는 자기 진영의 단합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는 “87년 이후 치러진 네 번의 대선 결과는 92년 민자당, 97년 DJP연대,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걸친 연합세력의 승리이자, 87년 YS-DJ 분열, 97년 이인제 이탈, 2002년 정몽준 이탈이라는 세 번에 걸친 분열 세력의 패배였다”며 “분열이 연합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보수진영은 어느 정도 분열하더라도 전쟁을 치를 수 있지만 진보진영의 분열은 힘없이 패배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한 다음 대선 전망과 관련, “보수든 진보든 혹은 자유화 세력이든 민주화세력이든 이제부터의 싸움은 상대가 남긴 쓰레기 악취를 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쓰레기를 누가 먼저 치우느냐에 달려있다”며 자기 혁신만인 생존의 길임을 주장했다.
박 대표는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라고 명명한 뒤, “호남과 TK에서 큰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김대중과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차기 대선에서 산업화 세력과 TK는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답해야 하고, 민주화세력과 호남은 김대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선진화’와 ‘평화’가 2007 대선의 양대 아젠다가 될 것이라는 보았다. 다른 전문가들이 또 하나의 아젠다로 지적하는 '경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우리 대선에서 한 번도 경제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선진화’와 ‘평화’는 단순히 먹고 사는 ‘빵’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고, 군사적 억지력에 의한 ‘안보유지’를 뛰어 넘는 것”이라며 “보수는 진보가 내놓은 아젠다인 ‘평화’를 말해야 하고, 진보는 보수가 내놓은 ‘선진화’를 말해야 한다”고 양 진영 모두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애매한 중도통합, 통합의 리더십, 탈지역주의, 전국정당 등 추상적 수단을 목표로 하지 말고 구체적 비전을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대선 주자 경쟁력 중 '대중성'을 가장 중시했다. 그는 “요즘 대중은 후보가 제시하는 화두나, 내놓은 공약, 정책 등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하는 메신저인 후보에 주목한다. 메신저가 내가 신뢰할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메시지를 이해한다”며 그 예로 노무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을 꼽았다.
대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와 관련해서는 안보문제를 먼저 꼽으면서도 “안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리더십이 평가 잣대가 될 것”이라며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그 예로 들었다.
다음은 15일 오후 여의도 민기획 사무실에서 박성민 대표와 나눈 인터뷰 전문.
"진보진영 분열, 힘없이 패배로 이어질 것"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박성민 대표 87년 대선 이래 가장 격렬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도 무관심을 반영했던 2002년 대선의 70.8%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성격도 이전 선거가 권투와 같은 개인 간 대결이었다면 축구와 같은 진영 간 총력전이 될 것이다. 축구는 한두 선수의 개인기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팀 전체 조직력이 중요하다. 조직력은 체력, 정신력, 사기가 모두 갖추어져야 극대화된다. 서포터즈의 응원도 승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기가 과열되면 부상자가 속출하고 뜻하기 않게 퇴장당할 수도 있다. 한 순간의 방심이 승부를 가르게 될 것이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언론계, 학계, 재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모두가 수비수 또는 공격수가 되어 경기에 참여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심판마저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점은 곳곳에서 확인되는 보수의 결연한 의지다. 보수는 종전과 다르다. 거침없이 사상전을 전개하고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취약했던 인터넷도 서서히 장악해 가고 있다. 과거에 대한 폭로와 같은 게릴라전도 감행하는 등 보수의 전투력과 결집력이 공고해지고 있다.
뷰스앤뉴스 다음 대선을 흔히들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 동부(영남)벨트 대 서부(호남) 벨트 간 싸움으로 규정하는데.
박성민 우선 나는 많은 이들이 편의상,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 식으로 양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양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한 제 1전략은 자기 진영의 분열을 막는 것이다. 연합은 그 다음문제다. 87년 이후 치러진 네 번의 대선 결과는 세 번(92년 민자당, 97년 DJP연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걸친 연합세력의 승리였다. 세 번(87년 YS-DJ 분열, 97년 이인제 이탈, 2002년 정몽준의 이탈)에 걸친 분열세력의 패배였다.
연합세력의 승리가 ‘꼭’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분열세력의 폐인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분열이 훨씬 치명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사회에서 물적 토대가 강고하다고 평가되는 보수진영이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자기 진영의 분열(정주영, 이인제, 정몽준)을 막지 못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것도 두 번은 강력한 여당일 때였고, 2002년은 정권을 내놓고 절치부심한 끝에 맞이한 대선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보수진영(혹은 산업화 진영, 혹은 동부벨트)은 어느 정도 분열하더라도 전쟁을 치를 수 있지만 진보진영(혹은 민주화 진영, 혹은 서부벨트)의 분열은 힘없이 패배로 이어진다.
"자기 쓰레기 누가 먼저 치우는가가 관건"
뷰스앤뉴스 보수, 진보란 이념논쟁이 재현된다고 보는가. 이념과잉으로 인해 참여정부의 지지층이 붕괴되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박성민 이제 국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보수든 진보든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먹는 문제는 이념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경제적 자유화가 정치적 민주화를 선도했지만 그 반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0년간 지속되었던 민주화 세력의 힘의 우위는 이제 종말의 순간을 맞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혹은 자유화(산업화) 세력이든 민주화 세력이든 이제부터의 싸움은 상대가 남긴 쓰레기 악취를 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쓰레기를 누가 먼저 치우느냐에 달려있다.
핵심은 혁신이다. 상대를 향한 총구를 내부로 돌려야 한다. 대중들은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 모두를 한심한 ‘수구꼴통’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 단계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피’(知彼)가 아니라 ‘지기’(知己)다.
1970년까지는 보수가 신화를 만든 시기였다. 이때 한국의 보수는 건국, 산업화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보수는 수구, 부패, 지역주의, 특권 등 엄청난 쓰레기를 남겼다.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은 보수가 남긴 쓰레기 더미를 들춰내서 대중에게 그 악취를 맡게 했다.
그해 한국의 보수는 경제적으로 IMF 사태로 불리는 금융위기를 맞아 기업이 줄도산하고, 정치적으로는 영원히 자기들의 것이라고 믿었던 정권을 빼앗겼다. 보수를 대변하던 언론의 사주들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어쩔 수 없이 자기 혁신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은 반전되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민주화, 여성의 권익신장, 소수자의 권익 보호, 한류 열풍의 신화를 창조한 진보세력이 남긴 쓰레기를 보수가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진보도 집단적 승리에 도취해 보수가 간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곳곳에서 오만과 부패, 기득권의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다.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박성민 한마디로 말해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다. 미래로 가는 열차는 절대로 ‘과거’를 태우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면 결코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 혁신은 과거와의 이별이다. ‘승리한 패러다임’은 ‘투쟁’없이 결코 스스로 물러가는 법이 없다.
따라서 정치인은 선대 정치인의 ‘공’(功)보다는 ‘과’(過)를 더 많이 봐야 성공한다. 공을 더 많이 보면 극복할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군인, 기업인, 정치인은 좋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 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자기에게 공천을 주고 장관을 시켜주고 대통령까지 만들어준 YS와 DJ의 과를 공보다 더 많이 봤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힘은 거기서 나온 것이다. 속되게 표현해서 정치인은 배은망덕(?)해야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정치인은 그런 숙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오늘날 중국이 발전한 것은 덩샤오핑이 “주석이 잘 한 것은 7이요, 못한 것은 3이다”라고 면전에서 마오쩌뚱을 비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비판한 그 말로 덩은 마오를 뛰어 넘었고, 그 힘으로 중국은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호남에게 큰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김대중을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TK역시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 처질과 대처의 크기가 영국의 크기고, 드골의 크기가 프랑스의 크기며, 덩샤오핑의 크기가 중국의 크기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모든 문제는 리더십의 위기에서 기인한다. 리더십의 부재가 한국 사회의 동력을 급격히 떨어드리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산업화 세력과 TK는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민주화세력과 호남은 김대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 인식을 둘러싼 보수의 내부 투쟁과, ‘호남 이니셔티브’를 둘러싼 노무현과 김대중 패러다임의 대충돌이 정계개편의 방향을 결정지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고, 지역주의와 탈지역주의의 싸움으로 비쳐질 테지만 사실은 패러다임과 리더십을 둘러싼 신-구의 전쟁이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새롭게 전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뛰어 넘는 새로운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 2007년 대선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는 선거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비전의 부재가 아니라 비전을 이룰 리더십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은 40~55세가 결정할 것"
뷰스앤뉴스 유권자의 중간층을 형성하고 있는 ‘386’이 2007년 대선에서도 2002년처럼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가.
박성민 난 정치적 의미를 많이 담고 있는 ‘386’과 그렇지 않는 ‘일반 386’과 인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대선 향방은 ‘세대(世代)’, 40~55세가 되는 세대가 결정할 것이다. 92년, 97년, 2002년 세 번의 대선을 보면 40대는 처음에는 상당히 보수적 선택하다 지난 2002년 출구조사를 보면 48대 48로 나왔다. 내년에도 난 그들이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내년 대선이 어떤 후보 구도로, 어떤 이슈로 치러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들 세대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평소에는 일상생활에 짓눌려 보수적 태도를 보이지만 대선 때는 진보적 태도를 보인다. 40대가 보수화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먼저 내 문제가 급하게 되었다는 것. 나와 내 가족의 문제가 급한데 다른 이슈가 눈에 들어 올 리 없다. 또 하나는 20대 때 싸웠던 문제가 어지간히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은 92년 미국 대선과 비슷한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92년 미국 대선에서는 46년생 베이비붐 세대인 클린턴이 46세 나이로 미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의 당선은 바로 그들 베이비붐 세대의 지지에 힘입은 것이다. 당시 클린턴과 맞섰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기가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독일을 통일시키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자부하며 유세를 했는데 그는 그 위대한 업적 때문에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유권자들은 ‘냉전이 종식되었다면 이젠 더 이상 안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 경제 부흥을 외친 클린턴에게 표를 주었다. 변화냐 연속성이냐에 있어서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변화냐 연속성이냐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 범여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보다는 주로 포용정책이라는 안보정책을 유지해왔는데 국민들이 이것을 계속 유지해가야 한다고 하면 범여권 쪽에 승산이 있는 것이고 경제문제로 이슈가 전환되면, 한나라당이 유리한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문제가 대선에서 이슈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정치적인 문제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년에 6자회담이 열리고 미국과 평화협정, 종전협정이 되면 한나라당이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나라당에 더 유리해진다. 92년 미국 선거처럼 남북문제가 상수(常數)가 되면 한나라당에게는 유리하다. 반대로 변수(變數)면 불리하다.
"2007 아젠다는 '선진국'과 '평화'"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정국의 아젠다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성민 한국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꿈이 무엇일 것 같으냐고 물으면 아마도 답은 두 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것과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화의 시대’를 여는 것.
‘선진화’는 단지 1인당 GDP가 3만 달러, 혹은 4만 달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사회 전반이 ‘업 그레이드’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분야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앞으로 평화를 말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집권하기란 점점 요원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는 레이건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그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혐오했던 인물이지만 어느 지도자보다도 평화를 많이 말했고, 실제로 가장 많이 대화함으로써 소련을 평화롭게 체제를 이행시켰다. 레이건은 국민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잘 읽은 지도자였다.
‘선진화’와 ‘평화’는 단순히 먹고 사는 ‘빵’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고, 군사적 억지력에 의한 ‘안보유지’를 뛰어 넘는 것이다. 경제와 안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식의 양분은 낮은(?) 차원의 타령이다.
보수는 진보가 내놓은 아젠다인 ‘평화’를 말해야 하고, 진보는 보수가 내놓은 ‘선진화’를 말해야 한다. 애매한 중도통합, 통합의 리더십, 탈지역주의, 전국정당 등 추상적 수단을 목표로 하지 말고 구체적 비전을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누가 평화를 부정하고 선진화를 공격할 배짱이 있겠는가.
2007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즉각 이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세력들은 한반도의 다음 세대를 위해 ‘선진화와 평화를 위한 연대’, ‘선진화와 평화를 위한 행동’에 즉각 나서야 한다.
"이제는 민심이 당심을 잡는 대중의 시대"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과 관련해 시중에서는 현재 지지율이 1년 뒤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2002년에도 97년에도 그랬다며 펴고 있다. 동의하는가.
박성민 그런 주장은 의미 없는 이야기다. 처음 1위가 최종 1위가 아니라는 것에 경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우연히 이회창과 박찬종이 안 된 것이다.
경향을 이야기하려면 그 안에 경향성(傾向性)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노태우 대통령은 다수당의 다수파가 된 경우고, 김영삼 대통령은 다수당의 소수파, 김대중 대통령은 소수당의 다수파, 노무현 대통령은 소수당의 소수파가 집권한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태우로부터 노무현까지 어떤 변화가 왔는가. 이제는 대중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대중성이 없으면 안 된다. 요즘 대중은 후보가 제시하는 화두나, 내놓은 공약, 정책 등의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하는 메신저인 후보에 주목한다. 메신저가 내가 신뢰할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메시지를 이해한다.
메신저인 후보에게 주목하게 하는 힘이 바로 대중성이다. 인물에 대한 신뢰도다. 이효리를 두고 ‘가수가 노래를 잘 해야지’ 하면서도 TV에 이효리가 나오면 채널을 고정시키는 것이 대중이다. ‘대사처리도 안 되는 탤런트가 어떻게 영화를 하느냐’고 하면서도 좋아하는 탤런트가 영화에 출연하면 예매해가며 극장을 간다.
뷰스앤뉴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의 등장으로 불붙었던 ‘대중성’이 더욱 확산된다는 이야긴가.
박성민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것으로 되었고, 오세훈 전 의원도 대중성으로 서울시장이 된 거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도 그것으로 후보가 되지 않았는가. 따르는 국회의원이 50여명이라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30여명 정도된다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대권 후보로 부상 못하는 것도 대중성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옛날로 치면 원내에서 따르는 의원이 그 정도면 대단한 강타자였다.
지금은 민심(民心)이 당심(黨心)을 잡는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그 표현의 핵심은 대중성 있는 인물을 의원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유력 주자 밑에 의원들이 모이는 것도 그가 보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주목하는 대중이 있고, 그에게 대중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계복귀를 놓고 ‘킹이냐, 킹메이커냐’는 표현을 쓰는데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표현이다. 이제는 킹이나 킹메이커나 동일 개념이다. 예전에는 그릇의 크기가 킹인 사람, 킹메이커 사람 따로따로였으나 지금은 킹메이커가 될 수 있으면 킹도 될 수 있는 시대다.
뷰스앤뉴스 차기 대선에서 지역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가.
박성민 우리 정치에서 지역은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난 부산경남을 주목해 본다. 97년, 2002년에도 캐스팅보트를 부산경남에서 진 것이다. 충청도라고 하는 데 아니다. 97년에 이인제 후보가 영남에서 일정한 표를 얻었고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가 영남표를 잠식했다. 거기서 승부가 갈린 것이다.
따라서 범여권에서는 이번에도 대구경북지역에서 40여%의 표를 잠식할 수 있는 후보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논란이 여지가 있지만 호남과 화합이 되면 부산에 있는 호남 출신들이 범여권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따라서 여권은 지금부터는 서부벨트를 깨는 전략을 구사할 텐데 이는 영남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영남에서 40% 얻지 못하면 집권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안보를 다루는 리더십이 관건될 것"
뷰스앤뉴스 남북정상회담, 북핵문제 등이 변수로 거론되고 있는데.
박성민 변수는 내년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한나라당에게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꼭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부동산 정책을 비판할 때도 노무현 대통령이 싫은데 싫다는 것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정책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인지,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내년에도 여전히 평화문제, 안보문제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런데 안보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와 관련된 이슈가 나왔을 때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포인트가 될 것이다.
2004년 미국 선거가 그랬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것이 대 테러전쟁이라고 단일 이슈가 되다보니까 이슈가 아닌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 리더십 문제로 국한되었다. 전문 CEO의 이미지인 캐리와 오너의 이미지인 부시, 대통령의 이미지인 캐리, 총사령관의 이미지인 부시 두 형태로 나뉘었는데 단호해 보이는 부시가 이겼다. 때문에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중요한데 그것이 곧 리더십이다.
"진보진영 분열하면 힘없이 패배로 이어질 것"
박 대표는 대선 승리 전략으로는 자기 진영의 단합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는 “87년 이후 치러진 네 번의 대선 결과는 92년 민자당, 97년 DJP연대,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걸친 연합세력의 승리이자, 87년 YS-DJ 분열, 97년 이인제 이탈, 2002년 정몽준 이탈이라는 세 번에 걸친 분열 세력의 패배였다”며 “분열이 연합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보수진영은 어느 정도 분열하더라도 전쟁을 치를 수 있지만 진보진영의 분열은 힘없이 패배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한 다음 대선 전망과 관련, “보수든 진보든 혹은 자유화 세력이든 민주화세력이든 이제부터의 싸움은 상대가 남긴 쓰레기 악취를 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쓰레기를 누가 먼저 치우느냐에 달려있다”며 자기 혁신만인 생존의 길임을 주장했다.
박 대표는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라고 명명한 뒤, “호남과 TK에서 큰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김대중과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차기 대선에서 산업화 세력과 TK는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답해야 하고, 민주화세력과 호남은 김대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선진화’와 ‘평화’가 2007 대선의 양대 아젠다가 될 것이라는 보았다. 다른 전문가들이 또 하나의 아젠다로 지적하는 '경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우리 대선에서 한 번도 경제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선진화’와 ‘평화’는 단순히 먹고 사는 ‘빵’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고, 군사적 억지력에 의한 ‘안보유지’를 뛰어 넘는 것”이라며 “보수는 진보가 내놓은 아젠다인 ‘평화’를 말해야 하고, 진보는 보수가 내놓은 ‘선진화’를 말해야 한다”고 양 진영 모두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애매한 중도통합, 통합의 리더십, 탈지역주의, 전국정당 등 추상적 수단을 목표로 하지 말고 구체적 비전을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대선 주자 경쟁력 중 '대중성'을 가장 중시했다. 그는 “요즘 대중은 후보가 제시하는 화두나, 내놓은 공약, 정책 등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하는 메신저인 후보에 주목한다. 메신저가 내가 신뢰할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메시지를 이해한다”며 그 예로 노무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을 꼽았다.
대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와 관련해서는 안보문제를 먼저 꼽으면서도 “안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리더십이 평가 잣대가 될 것”이라며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그 예로 들었다.
다음은 15일 오후 여의도 민기획 사무실에서 박성민 대표와 나눈 인터뷰 전문.
"진보진영 분열, 힘없이 패배로 이어질 것"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박성민 대표 87년 대선 이래 가장 격렬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도 무관심을 반영했던 2002년 대선의 70.8%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성격도 이전 선거가 권투와 같은 개인 간 대결이었다면 축구와 같은 진영 간 총력전이 될 것이다. 축구는 한두 선수의 개인기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팀 전체 조직력이 중요하다. 조직력은 체력, 정신력, 사기가 모두 갖추어져야 극대화된다. 서포터즈의 응원도 승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기가 과열되면 부상자가 속출하고 뜻하기 않게 퇴장당할 수도 있다. 한 순간의 방심이 승부를 가르게 될 것이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언론계, 학계, 재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모두가 수비수 또는 공격수가 되어 경기에 참여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심판마저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점은 곳곳에서 확인되는 보수의 결연한 의지다. 보수는 종전과 다르다. 거침없이 사상전을 전개하고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취약했던 인터넷도 서서히 장악해 가고 있다. 과거에 대한 폭로와 같은 게릴라전도 감행하는 등 보수의 전투력과 결집력이 공고해지고 있다.
뷰스앤뉴스 다음 대선을 흔히들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 동부(영남)벨트 대 서부(호남) 벨트 간 싸움으로 규정하는데.
박성민 우선 나는 많은 이들이 편의상,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 식으로 양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양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한 제 1전략은 자기 진영의 분열을 막는 것이다. 연합은 그 다음문제다. 87년 이후 치러진 네 번의 대선 결과는 세 번(92년 민자당, 97년 DJP연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걸친 연합세력의 승리였다. 세 번(87년 YS-DJ 분열, 97년 이인제 이탈, 2002년 정몽준의 이탈)에 걸친 분열세력의 패배였다.
연합세력의 승리가 ‘꼭’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분열세력의 폐인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분열이 훨씬 치명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사회에서 물적 토대가 강고하다고 평가되는 보수진영이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자기 진영의 분열(정주영, 이인제, 정몽준)을 막지 못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것도 두 번은 강력한 여당일 때였고, 2002년은 정권을 내놓고 절치부심한 끝에 맞이한 대선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보수진영(혹은 산업화 진영, 혹은 동부벨트)은 어느 정도 분열하더라도 전쟁을 치를 수 있지만 진보진영(혹은 민주화 진영, 혹은 서부벨트)의 분열은 힘없이 패배로 이어진다.
"자기 쓰레기 누가 먼저 치우는가가 관건"
뷰스앤뉴스 보수, 진보란 이념논쟁이 재현된다고 보는가. 이념과잉으로 인해 참여정부의 지지층이 붕괴되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박성민 이제 국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보수든 진보든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먹는 문제는 이념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경제적 자유화가 정치적 민주화를 선도했지만 그 반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0년간 지속되었던 민주화 세력의 힘의 우위는 이제 종말의 순간을 맞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혹은 자유화(산업화) 세력이든 민주화 세력이든 이제부터의 싸움은 상대가 남긴 쓰레기 악취를 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쓰레기를 누가 먼저 치우느냐에 달려있다.
핵심은 혁신이다. 상대를 향한 총구를 내부로 돌려야 한다. 대중들은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 모두를 한심한 ‘수구꼴통’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 단계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피’(知彼)가 아니라 ‘지기’(知己)다.
1970년까지는 보수가 신화를 만든 시기였다. 이때 한국의 보수는 건국, 산업화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보수는 수구, 부패, 지역주의, 특권 등 엄청난 쓰레기를 남겼다.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은 보수가 남긴 쓰레기 더미를 들춰내서 대중에게 그 악취를 맡게 했다.
그해 한국의 보수는 경제적으로 IMF 사태로 불리는 금융위기를 맞아 기업이 줄도산하고, 정치적으로는 영원히 자기들의 것이라고 믿었던 정권을 빼앗겼다. 보수를 대변하던 언론의 사주들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어쩔 수 없이 자기 혁신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은 반전되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민주화, 여성의 권익신장, 소수자의 권익 보호, 한류 열풍의 신화를 창조한 진보세력이 남긴 쓰레기를 보수가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진보도 집단적 승리에 도취해 보수가 간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곳곳에서 오만과 부패, 기득권의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다.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박성민 한마디로 말해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다. 미래로 가는 열차는 절대로 ‘과거’를 태우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면 결코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 혁신은 과거와의 이별이다. ‘승리한 패러다임’은 ‘투쟁’없이 결코 스스로 물러가는 법이 없다.
따라서 정치인은 선대 정치인의 ‘공’(功)보다는 ‘과’(過)를 더 많이 봐야 성공한다. 공을 더 많이 보면 극복할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군인, 기업인, 정치인은 좋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 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자기에게 공천을 주고 장관을 시켜주고 대통령까지 만들어준 YS와 DJ의 과를 공보다 더 많이 봤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힘은 거기서 나온 것이다. 속되게 표현해서 정치인은 배은망덕(?)해야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정치인은 그런 숙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오늘날 중국이 발전한 것은 덩샤오핑이 “주석이 잘 한 것은 7이요, 못한 것은 3이다”라고 면전에서 마오쩌뚱을 비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비판한 그 말로 덩은 마오를 뛰어 넘었고, 그 힘으로 중국은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호남에게 큰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김대중을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TK역시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 처질과 대처의 크기가 영국의 크기고, 드골의 크기가 프랑스의 크기며, 덩샤오핑의 크기가 중국의 크기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모든 문제는 리더십의 위기에서 기인한다. 리더십의 부재가 한국 사회의 동력을 급격히 떨어드리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산업화 세력과 TK는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민주화세력과 호남은 김대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 인식을 둘러싼 보수의 내부 투쟁과, ‘호남 이니셔티브’를 둘러싼 노무현과 김대중 패러다임의 대충돌이 정계개편의 방향을 결정지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고, 지역주의와 탈지역주의의 싸움으로 비쳐질 테지만 사실은 패러다임과 리더십을 둘러싼 신-구의 전쟁이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새롭게 전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뛰어 넘는 새로운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 2007년 대선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는 선거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비전의 부재가 아니라 비전을 이룰 리더십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은 40~55세가 결정할 것"
뷰스앤뉴스 유권자의 중간층을 형성하고 있는 ‘386’이 2007년 대선에서도 2002년처럼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가.
박성민 난 정치적 의미를 많이 담고 있는 ‘386’과 그렇지 않는 ‘일반 386’과 인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대선 향방은 ‘세대(世代)’, 40~55세가 되는 세대가 결정할 것이다. 92년, 97년, 2002년 세 번의 대선을 보면 40대는 처음에는 상당히 보수적 선택하다 지난 2002년 출구조사를 보면 48대 48로 나왔다. 내년에도 난 그들이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내년 대선이 어떤 후보 구도로, 어떤 이슈로 치러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들 세대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평소에는 일상생활에 짓눌려 보수적 태도를 보이지만 대선 때는 진보적 태도를 보인다. 40대가 보수화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먼저 내 문제가 급하게 되었다는 것. 나와 내 가족의 문제가 급한데 다른 이슈가 눈에 들어 올 리 없다. 또 하나는 20대 때 싸웠던 문제가 어지간히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은 92년 미국 대선과 비슷한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92년 미국 대선에서는 46년생 베이비붐 세대인 클린턴이 46세 나이로 미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의 당선은 바로 그들 베이비붐 세대의 지지에 힘입은 것이다. 당시 클린턴과 맞섰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기가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독일을 통일시키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자부하며 유세를 했는데 그는 그 위대한 업적 때문에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유권자들은 ‘냉전이 종식되었다면 이젠 더 이상 안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 경제 부흥을 외친 클린턴에게 표를 주었다. 변화냐 연속성이냐에 있어서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변화냐 연속성이냐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 범여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보다는 주로 포용정책이라는 안보정책을 유지해왔는데 국민들이 이것을 계속 유지해가야 한다고 하면 범여권 쪽에 승산이 있는 것이고 경제문제로 이슈가 전환되면, 한나라당이 유리한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문제가 대선에서 이슈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정치적인 문제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년에 6자회담이 열리고 미국과 평화협정, 종전협정이 되면 한나라당이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나라당에 더 유리해진다. 92년 미국 선거처럼 남북문제가 상수(常數)가 되면 한나라당에게는 유리하다. 반대로 변수(變數)면 불리하다.
"2007 아젠다는 '선진국'과 '평화'"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정국의 아젠다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성민 한국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꿈이 무엇일 것 같으냐고 물으면 아마도 답은 두 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것과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화의 시대’를 여는 것.
‘선진화’는 단지 1인당 GDP가 3만 달러, 혹은 4만 달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사회 전반이 ‘업 그레이드’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분야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앞으로 평화를 말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집권하기란 점점 요원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는 레이건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그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혐오했던 인물이지만 어느 지도자보다도 평화를 많이 말했고, 실제로 가장 많이 대화함으로써 소련을 평화롭게 체제를 이행시켰다. 레이건은 국민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잘 읽은 지도자였다.
‘선진화’와 ‘평화’는 단순히 먹고 사는 ‘빵’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고, 군사적 억지력에 의한 ‘안보유지’를 뛰어 넘는 것이다. 경제와 안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식의 양분은 낮은(?) 차원의 타령이다.
보수는 진보가 내놓은 아젠다인 ‘평화’를 말해야 하고, 진보는 보수가 내놓은 ‘선진화’를 말해야 한다. 애매한 중도통합, 통합의 리더십, 탈지역주의, 전국정당 등 추상적 수단을 목표로 하지 말고 구체적 비전을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누가 평화를 부정하고 선진화를 공격할 배짱이 있겠는가.
2007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즉각 이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세력들은 한반도의 다음 세대를 위해 ‘선진화와 평화를 위한 연대’, ‘선진화와 평화를 위한 행동’에 즉각 나서야 한다.
"이제는 민심이 당심을 잡는 대중의 시대"
뷰스앤뉴스 2007년 대선과 관련해 시중에서는 현재 지지율이 1년 뒤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2002년에도 97년에도 그랬다며 펴고 있다. 동의하는가.
박성민 그런 주장은 의미 없는 이야기다. 처음 1위가 최종 1위가 아니라는 것에 경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우연히 이회창과 박찬종이 안 된 것이다.
경향을 이야기하려면 그 안에 경향성(傾向性)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노태우 대통령은 다수당의 다수파가 된 경우고, 김영삼 대통령은 다수당의 소수파, 김대중 대통령은 소수당의 다수파, 노무현 대통령은 소수당의 소수파가 집권한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태우로부터 노무현까지 어떤 변화가 왔는가. 이제는 대중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대중성이 없으면 안 된다. 요즘 대중은 후보가 제시하는 화두나, 내놓은 공약, 정책 등의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하는 메신저인 후보에 주목한다. 메신저가 내가 신뢰할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메시지를 이해한다.
메신저인 후보에게 주목하게 하는 힘이 바로 대중성이다. 인물에 대한 신뢰도다. 이효리를 두고 ‘가수가 노래를 잘 해야지’ 하면서도 TV에 이효리가 나오면 채널을 고정시키는 것이 대중이다. ‘대사처리도 안 되는 탤런트가 어떻게 영화를 하느냐’고 하면서도 좋아하는 탤런트가 영화에 출연하면 예매해가며 극장을 간다.
뷰스앤뉴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의 등장으로 불붙었던 ‘대중성’이 더욱 확산된다는 이야긴가.
박성민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것으로 되었고, 오세훈 전 의원도 대중성으로 서울시장이 된 거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도 그것으로 후보가 되지 않았는가. 따르는 국회의원이 50여명이라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30여명 정도된다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대권 후보로 부상 못하는 것도 대중성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옛날로 치면 원내에서 따르는 의원이 그 정도면 대단한 강타자였다.
지금은 민심(民心)이 당심(黨心)을 잡는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그 표현의 핵심은 대중성 있는 인물을 의원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유력 주자 밑에 의원들이 모이는 것도 그가 보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주목하는 대중이 있고, 그에게 대중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계복귀를 놓고 ‘킹이냐, 킹메이커냐’는 표현을 쓰는데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표현이다. 이제는 킹이나 킹메이커나 동일 개념이다. 예전에는 그릇의 크기가 킹인 사람, 킹메이커 사람 따로따로였으나 지금은 킹메이커가 될 수 있으면 킹도 될 수 있는 시대다.
뷰스앤뉴스 차기 대선에서 지역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가.
박성민 우리 정치에서 지역은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난 부산경남을 주목해 본다. 97년, 2002년에도 캐스팅보트를 부산경남에서 진 것이다. 충청도라고 하는 데 아니다. 97년에 이인제 후보가 영남에서 일정한 표를 얻었고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가 영남표를 잠식했다. 거기서 승부가 갈린 것이다.
따라서 범여권에서는 이번에도 대구경북지역에서 40여%의 표를 잠식할 수 있는 후보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논란이 여지가 있지만 호남과 화합이 되면 부산에 있는 호남 출신들이 범여권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따라서 여권은 지금부터는 서부벨트를 깨는 전략을 구사할 텐데 이는 영남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영남에서 40% 얻지 못하면 집권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안보를 다루는 리더십이 관건될 것"
뷰스앤뉴스 남북정상회담, 북핵문제 등이 변수로 거론되고 있는데.
박성민 변수는 내년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한나라당에게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꼭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부동산 정책을 비판할 때도 노무현 대통령이 싫은데 싫다는 것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정책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인지,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내년에도 여전히 평화문제, 안보문제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런데 안보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와 관련된 이슈가 나왔을 때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포인트가 될 것이다.
2004년 미국 선거가 그랬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것이 대 테러전쟁이라고 단일 이슈가 되다보니까 이슈가 아닌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 리더십 문제로 국한되었다. 전문 CEO의 이미지인 캐리와 오너의 이미지인 부시, 대통령의 이미지인 캐리, 총사령관의 이미지인 부시 두 형태로 나뉘었는데 단호해 보이는 부시가 이겼다. 때문에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중요한데 그것이 곧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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