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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설문조사' 연기, 신당파 균열?

정동영계 이탈 조짐, 검찰의 제이유 수사 영향설도...

열린우리당 비대위가 5일 저녁 긴급 비대위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예산안 처리 이후로 미뤘다. 이에 따라 빨라야 오는 15일, 늦으면 연말께나 여론조사가 실시될 예정이어서, 비대위가 당초 강행 방침에서 한걸음 물러나 이런 결정을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대위 "예산안 처리후 설문조사 결과 발표"

비대위 대변인 박병석 의원은 회의후 브리핑을 통해 "예산안이 당초 여야가 합의했던 9일까지 처리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소속 의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시점까지 순연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예결특위 진행상황을 보고받은 결과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당의 진로도 중요하지만 예산안 및 민생법안 처리가 더 중요해 설문조사 실시 시기를 늦추기로 합의했다"고 연기 배경을 밝혔다.

비대위는 그러나 당 진로에 관한 의원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설문조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예산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가 끝나기 2~3일 전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예산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의원총회와 의원 워크숍을 열어 결과를 보고하고 정계개팬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정계개편 일정을 재차 확인했다. 비대위는 또 객관성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문문항 작성 과정에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조언과 감수를 받기로 했다.

박병석 의원은 "설문조사는 당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일 뿐"이라며 "따라서 설문조사가 끝날 때까지 정계개편에 대한 논의를 유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정계개편 논의를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대통령의 대반격에 갈등설이 나돌고 있는 김근태-정동영. ⓒ연합뉴스


정동영계 이탈?

비대위의 설문조사 연기 결정은 외형상 당청갈등에 비판적인 국민여론을 이유로 내세웠으나,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적다. 친노진영이 '김근태 축출'과 '전당대회 소집'을 요구하며 전면적을 벌인 시점에 나온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당 안팎에선 신당 창당 드라이브를 걸어온 비대위 내부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비대위의 양대 축이던 김근태-정동영 계보간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노대통령의 4일 편지를 통해 '김근태 축출' '중-대 선거구제 도입' 메시지가 나온 뒤, 정동영계에선 뚜렷한 변화 조짐이 곳곳에서 읽혔다. 우선 정동영 전 의장이 중국으로 떠나며 "최근의 당청 모습은 국민 눈에 좋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 중인데 당내 문제를 섞어 놓으면 국민에게 욕먹기 딱 좋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김한길 원내대표도 5일 오후 "임기가 1년3개월이나 남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당적을 갖고 있는 게 맞다"며 노대통령 탈당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양새다.

이에 열린우리당 안팎에선 노 대통령이 '조기 하야' 카드를 무기로 중-대선거구제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자, 정동영계가 여기에 호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그결과 비대위가 설문조사를 연기하기에 이른 게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제이유 검찰 수사도 영향?

또다른 일각에서는 최근 가속도를 내고 있는 제이유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도 한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상최대의 다단계판매 비리로 일컬어지는 제이유 사건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점차 정치권으로도 수사망이 좁혀들고 있다. 이와 관련, 여의도에는 연루의혹이 있는 전-현직 의원들의 명단이 나돌고 있으며, 여기에는 신당추진파에 속하는 열린우리당 거물급들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검찰 수사가 정치적 목표하에서 진행될 리는 만무이나, 검찰 수사가 결과적으로 노대통령과 극한 대립하던 신당추진파 일부 거물급에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과연 비대위가 삐긋거리는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일이나, 한때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던 비대위에 분명 이상기류가 생겨난 것만은 분명해 귀추가 주목된다.
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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