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 타계했다. 향년 64세의 안타까운 나이다.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사흘 전부터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이날 새벽 끝내 유명을 달리 했다.
임종을 지켜본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은 트위터에 "인재근 형수님이 눈을 감겨드렸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했습니다"라고 비보를 전하며 "한길 한인생 한뜻으로 뚫고 나오셨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십시오. 근태형! 70년대이래 부르던 이름!!"이라고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고인은 서울대 재학중이던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이래 민청련 사건ㆍ전민련 활동 등으로 오랜 도피 생활과 5년 8개월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특히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 등에게 무려 11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20여일동안 온각 고문을 당한 그는 변호인접견실까지 기어나오는데 30분이 걸릴 정도로 몸이 완전히 망가졌으나 그 상태에서 몸에 남아있던 피딱지를 근거로 고문일시, 방법, 가해자를 기억해 고발하고 끝까지 싸워 이근안 등을 잡아넣었다.
그가 말년에 고생한 파킨슨병도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95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 이듬해 15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서울 도봉갑에서 내리 3선에 올랐으나, 지난 총선때 뉴타운 공약을 앞세운 뉴라이트 출신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후 진보세력까지 포함하는 민주세력 대연합을 주장해 야권통합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모색해오던 중 병세가 악화돼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유족은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부인 인재근씨와 1남1녀(병준ㆍ병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그렇게 극심한 고통속에 끝내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신 근태 선배.. 모든 인생의 질고를 다 내려놓으셨으니 이제 영원히 안식하소서.. 선배님이 당하신 그 무서운 고문은 인간이 절대 당할 수 없는 극형이었지요.. 이제 선배님, 다 잊으시고 영원히 영면하소서. 안식을 누리소서..
이렇게 가시는 구나 마음이 격해집니다 죄지은자들은 저렇게 떵떵거리면 살아가는데 민주화를 위해 인생과 삶과 몸을 바치신 분들은 이렇게 타계하시니 목구멍에 울분이 가득찹니다 그를 직접 고문한 인간은 목사가되어 고문을 예술이였다고 다시 돌아가도 그일을 하겠노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간증하고 있을까? 용서 웃기는구나
존경하는 김근태의장님,우리 나라에 계셔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무지막지한 고문을 견디시고 독재를 없애기 위해 온 몸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신 님, 사람들은 님이 만들어 놓은 민주국가의 자유를 누리며 더 잘살겠다고 신지호같은 놈을 당선시키고...무지가 죄임을 깨닫기나 할런지...이제 고단한 삶 벗으시고 영원히 평화를 누리소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근태고문에게 저런 끔찍한 비극을 안긴 자들이 여전히 권력의 단물에 취해서 아직도 그 끈을 놓지않으려 온갖 미사여구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발악을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김고문을 제명에 모살게 한 진정한 인간백정들이 누구인지 충분히 아실겁니다. 백정들을 우리손으로 단죄해서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킵시다.
지난 서울지역 총선의 패재가 단지 뉴타운 공약때눈이라고 단정하는 자세가 과연... 고 긴 근태 의원의 유지에 주?하는 자세인지 되눋고 싶다 뉴타운 공약을 한날당이 들고 나오지 않았다년 닌주당은 승리했을까.. 이러한 자세... 일종의 자기?리화, 구차한 넉두리이다 . 고인이시여 평안하시길..
내가 태어났을때 나는 울었고 내주변의 모든 사람은 웃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내몸을 떠날때 나는 웃었고 내주변의 모든 사람은 울며 괴로워하였다. 덧없는 삶에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라. 자만심으로부터 무지로부터 어리석음의 광기로부터속박을 끊어라. ▶謹弔◀ 김근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