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앞으로 6개월~수년간 계속될듯"
정현규 "이미 심대한 타격 입어, 최악의 경우 붕괴적 위기"
이는 설 이전에 구제역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정부가 아직도 안이한 낙관론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말 그대로 우리나라 축산업이 축산업 자체가 붕괴된 대만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대표적 양돈전문 수의사인 정현규 도드람유전자연구소 대표는 20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구제역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향후 예상되는 세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모두가 원하는 최상의 상태로, 소와 어미돼지에 1개월 간격으로 2회, 자돈(仔豚)과 비육돈에 1회 백신접종이 완료되는 시기를 2월로 보면, 설이 지나면서 구제역 발생과 살처분 두수가 급격하게 줄고 3월 말 쯤에는 거의 마무리되는 것.
두 번째 시나리오는 3월 이후에 면역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개체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구제역 발생이 6개월∼1년 정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는 백신 효과가 100% 나지 않고, 또한 겨울철 소독효과가 떨어진 상태이기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일부 농장이나 지역에서 여름까지 다시 활동하며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 번째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오염된 환경, 개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상재화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엔 수년간 산발적인 발생으로 가축폐사와 생산성 저하를 야기해 우리 축산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정 대표는 이같은 세가지 시나리오를 열거한 뒤, "그런데 현재 현장의 상황들을 보면 두 번째나 세 번째의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구제역 사태가 앞으로 짧아도 6개월 이상, 길게는 수년간 계속되는 만성적 구제역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또 "세 가지 가능성 중에서 최상의 시나리오인 첫 번째 가정으로 구제역이 정리된다고 해도 이미 축산업은 1∼2년 내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며 "발생이 안 된 호남, 경남, 제주에서도 종축을 구하지 못하고 제때 출하를 하지 못해서 입은 피해가 크기에 더욱 안타깝다"며 이미 한국 축산업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다면 전국 단위 그리고 지역 단위로 방역조직 정비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사료, 도축, 인력, 환경 문제를 비롯한 모든 시스템이 시·도 지역 단위로 이뤄지고 이는 다시 전국 단위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할 것"이라며 국가적 차원의 방역체제 전면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교훈을 우리는 수조원의 돈을 들여 배운 격"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특히 정부에 대해 "백신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다시 한번 지난 수년간 준비했던 대책들과 실천이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들을 정리해야 한다"며 "백신접종이 끝나고, 이동제한이 해제되고 따뜻한 봄이 지나갈 때까지 우리의 대응 노력에 따라서 축산업이 어느 길로 갈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축구에서 첫 5분과 마지막 5분이 중요하다고 한다"며 "우리는 첫 5분에 실패한 지난 두 달여의 경험과 현재의 현장 상황을 바탕으로 구제역 대응에 다시는 실패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초동대응 실패와 같은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조언과는 달리 정부 수뇌부는 구제역 사태에 대한 철저한 자성보다는 면피에 급급하며 아직도 낙관적 전망에만 의존하는 분위기여서, 사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발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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