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익명의 그 사람, 김인규 맞다"
"<오마이뉴스>, 비보도 약속해 놓고선 실명보도 유감스럽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우선 전날 <오마이뉴스> 보도와 관련, "비보도를 약속받고, 알고 있는 내용을 들려줬다. 그런데 <오마이뉴스>가 저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들은 얘기, 당사자의 실명을 모두 보도해 버렸다.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어 <오마이뉴스> 보도를 전면 부인한 김인규 사장에 대해서도 "그냥 ‘만난 적 없다’ 아니면 ‘만난 적은 있지만 그런 말 안했다.’ 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도로만 반박했어도 이해를 할 텐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며 "네, 익명의 그 인물은 김인규 KBS사장"이라며 질타했다.
그는 특히 4년전 만나기를 기피했던 김 사장과의 회동직후 상황과 관련,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부터 안 좋은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희 방(홍보기획비서관실) 방송담당 국장이 KBS와 방송가에 떠도는 얘기를 제게 보고해 주었다. 정보에 따르면 김인규 후보자측이 ‘청와대 내락을 받았다’ ‘양비(청와대와 언론계, 관가에서 부르던 ’양정철비서관‘의 약칭)도 돕기로 했다’ ‘청와대와는 다 얘기가 됐다’고 주장하고 다닌다는 것"이라며 "나는 그것을 꼭 김인규 사장의 말이라고 믿진 않지만 마음이 급한 후보자측 사람들은 능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예상에서 어긋난 게 하나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더 나아가 김 사장에게 "더 이상 청와대 눈치 보지 말고, 친정인 KBS를 위해 대의와 명분에 맞게 사장직을 수행하기를 원한다"며 "프로그램 불방,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나 탄압, 순치된 보도, 추락하는 신뢰도, 이건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김 사장의 법적대응 경고에 대해서도 "김 사장이 어찌 대응하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며 "상황이 나를 놔두지 않는다. 다시 ‘광장’으로 들어가야 할 팔자인 모양"이라며 적극 대응 방침을 밝혔다.
다음은 양 전 비서관의 글 전문.
익명의 '그 사람' 김인규 사장에 대하여
제가 참여정부 청와대에 ‘방송장악’ 발언을 한 인사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그 사람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과거 일이라는 점 △당사자의 명예를 존중하고 싶다는 점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점 △그 사람 말고도 더 심한 변신과 변절로 출세가도 달리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그 인사만 타깃으로 삼고 심지 않다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제 글에서는 물론, 기자들 전화를 받든, 방송 인터뷰를 하든 그 입장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마이뉴스> 기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아주 가까운 후배였습니다. 관련 내용을 듣고 싶다고 하기에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기존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기사는 안 쓸 것이고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혼자만 알고 있을 테니 전후 얘기나 과정을 좀 말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비보도를 약속받고, 알고 있는 내용을 들려줬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가 저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들은 얘기, 당사자의 실명을 모두 보도해 버렸습니다. 유감스럽습니다. 제가 입장을 바꾼 것처럼 비쳐지거나 그 때문에 자칫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무척 신경이 쓰입니다. 저와 김인규 사장 중간에 있는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항의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KBS사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인사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양비서관을 만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충성맹세나 방송장악 발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에 정권이 개입해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내용을 보도자료로도 냈습니다. ‘적반하장’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그냥 ‘만난 적 없다’ 아니면 ‘만난 적은 있지만 그런 말 안했다.’ 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도로만 반박했어도 이해를 할 텐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연민의 정이 느껴집니다. 이제 제가 직접 증언을 할 상황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보도과정은 유감스럽지만 어차피 당사자가 시인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없는 말도 지어내니 어쩌겠습니까. 진실을 밝히는 일, 피할 생각이 없습니다.
네. 익명의 그 인물은 김인규 KBS사장입니다.
저와 김 사장이 안지는 좀 됐습니다. 과거 위성방송 컨소시엄(현재의 스카이라이프)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입니다. 그 후 특별한 교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6년 KBS 사장 선임을 앞두고 문제의 조우가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피할 사이는 아닌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극구 피했던 이유는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청와대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인사과정에 있는 기관의 주요 후보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큰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단일보직(홍보기획비서관) 최장기 근무 참모였습니다. 언론계 인사(人事)와 관련해 별 일을 다 겪었습니다. 어느 자리를 노리는 사람과 과거 인연으로 만나거나, 통화를 하거나, 심지어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마주친 것만으로도 당사자가 “청와대에 다 얘기해 놨다.” “청와대 ○○○에게 내락을 받았다.” 심지어는 “청와대 ○○○가 그 자리 맡아보라고 하더라.”는 자기홍보에 악용 당하는 일을 여러 번 당해본 터였습니다.
둘째, 언론기관인 KBS 인사는 특히 예민한 일이어서 조금만 처신이나 언행을 잘못해도 엄청난 파장이나 억측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장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가 있는데, 청와대 비서관이 후보자를 만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평소에 잘 만나던 사람도 가려 만날 만큼 조심스런 시기였습니다.
셋째, 김인규 사장은 2006년 사장 응모 전에 한나라당 추천으로 이미 KBS 이사를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나라당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스탠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바가 있습니다. 섣부르게 만났다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일을 당하기 가장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했습니다.
넷째, 그런 상황의 두 사람이 만나면 나눌 얘기가 뻔하다고 예상했습니다. “좀 도와 달라” “제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이런 무의미한 대화로 빙빙 돌다 어색하게 헤어질 텐데,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피하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나게 된 것입니다. 난처했습니다. 이 만남이 혹시 어떻게 와전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제 말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말은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을 해 두었습니다. 나중에 악용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부터 안 좋은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방(홍보기획비서관실) 방송담당 국장이 KBS와 방송가에 떠도는 얘기를 제게 보고해 주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김인규 후보자측이 ‘청와대 내락을 받았다’ ‘양비(청와대와 언론계, 관가에서 부르던 ’양정철비서관‘의 약칭)도 돕기로 했다’ ‘청와대와는 다 얘기가 됐다’고 주장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꼭 김인규 사장의 말이라고 믿진 않지만 마음이 급한 후보자측 사람들은 능히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상에서 어긋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터라 담담했습니다. 곤란한 자리를 만들어 준 선배에게도 원망이 없었습니다. 제가 워낙 좋아하는 선배인 데다 인간관계란 것이 다 그렇게 얽히고, 얽힌 것인데 어쩌겠습니까. 어려운 처지에 있는 김인규씨를 돕겠다는 나름 좋은 취지로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끝난 일입니다.
며칠 전 (익명이지만) 당시 상황을 소개한 것도, 김인규 사장을 타깃으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많은 인사들이 그런 행태로 요직을 차지하다 보니, 가치도 지향도 소신도 없이 휩쓸리며 정권과 자신의 자리보전만 생각해 큰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례를 든 것에 불과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고, 이름을 적시하면 깜짝 놀랄 만한 인사들의 유사한 행태를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그 분들이 현재 자리에서 본분에 충실하고, 대의를 위해 도리를 어기지 않고 나라와 국민에게 잘 봉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제 뜻과 달리 김인규 사장을 곤란하게 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김 사장이 지금이라도 잘 하기를 바랍니다. 입장은 다르지만, 핵심참모로 뛰어들어 대통령을 만들어 낸 것은 보람 있는 일입니다. 친정인 KBS의 최고 경영자로 가게 된 것도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럼 그걸로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청와대 눈치 보지 말고, 친정인 KBS를 위해 대의와 명분에 맞게 사장직을 수행하기를 원합니다. 프로그램 불방,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나 탄압, 순치된 보도, 추락하는 신뢰도, 이건 아닙니다. 그가 계속 그렇게 하면, 제게 한 얘기를 어느 정권 아래서든 물불 안 가리고 하는 ‘도구’ 같은 사람으로 돼 버리니까요. 그게 마음 아픕니다.
김 사장이 어찌 대응하든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이 결과를 원하지 않았을 뿐 주저할 일은 없습니다. 김인규사장 실명 보도가 나가고 여러 분들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나도 증언할 게 있다”는 내용이 줄을 이었습니다.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신 후로, 지킬 주군도 안 계신데 누구와 각박하게 싸우는 일이 싫어졌습니다. 귀찮아졌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 모두 정리하고 혼자 글 쓰는 일에 전념해 왔습니다. 헌데 상황이 저를 놔두지 않습니다. 다시 ‘광장’으로 들어가야 할 팔자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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