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지도부, 스스로 '우근민 덫'에 치이다
한나라 대공세 시작, 야권-시민계-민주 비주류도 "이럴 수가"
정세균 지도부는 시민사회단체 등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이던 지난 7일 밤, 성희롱 유죄판결을 받은 우근민 전 제주지사를 만장일치로 복당시켰다. 이어 8일에는 노영민 대변인이 우 전 지사의 성희롱을 '순간실수'로 규정한 뒤 주홍글씨를 계속 새겨야겠냐는 '주홍글씨론'을 펴고 나섰다. 하루이틀 시끄럽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지 않겠냐는 안이한 판단을 한듯 싶다.
하지만 엄청난 착각이었음이 곧 입증되기 시작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우근민 파동'을 예의주시하던 한나라당이 9일 마침내 작심하고 민주당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정병국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과거 성희롱 전력자를 다시 복당시키는 등 가관"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한나라당은 철새정치인과 비리전력자, 지방재정 파탄 단체장은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라며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오후에는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이 2차 포격을 시작했다. 김금래, 배은희, 이정선 의원 등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우 전 지사는 여상단체장을 강제 추행한 사실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주홍글씨 운운하며 면죄부를 준 민주당의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성추행당과 선거법 위반정당임을 표방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들은 "민주당은 성추행 당사자를 옹호하며 여성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덧붙였다.
조해진 대변인도 별도 논평을 통해 우 전 지사의 성희롱 전력을 거론한 뒤 "이런 인물을 영입한 것은 민주당이 선거승리라는 금단의 사과를 따 먹기 위해 도덕성을 잠시 전당포에 맡기기로 한 것"이라며 "그런 인물을 삼고초려해서 모셔오는 민주당은 어린 꽃송이들의 참혹한 죽음과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최근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까지 엮어 민주당을 맹공했다.
이런 성추행 관련 공세는 종전에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향해 퍼붓던 것이었다. 하지만 우근민 복당으로 전세는 완전 역전된 양상이다. 한나라당의 공세는 이제 시작일뿐, 앞으로 석달 남은 지방선거 기간동안 끊임없이 계속될 게 불을 보듯 훤하다.
현재 민주당과 야권공조 협상을 벌이고 있는 진보야당들도 일제히 민주당을 질타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은 8일 "민주당은 서울에서는 여성운동의 대모, 제주에서는 피해자를 역고소한 성희롱 전력자, 이렇게 내세워 지방선거를 치를 생각이냐"며 "서울시장 후보는 성희롱이라고 판정한 전직 여성부장관, 제주도지사 후보는 그 판정에 불복해 소송까지 불사한 전직 제주도지사, 이것이 민주당이 그리는 지방선거 구도냐"고 질타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내려고 그 고생을 하며 만들어낸 연합이냐. 나는 이런 모습 보려고 연합을 주장하지 않았다"며 "우리 국민들에게 더 이상 실망을 강요하지 말라. 더 이상의 잘못은 역사에 대한 범죄"라고 경고했다.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인기도에 연연하는 모습은 민주당 스스로 여성인권에 대한 기만을 일삼는 ‘반여성 정당’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민주당 비주류에서도 반격이 시작됐다.
우선 제주지사 출사표를 던진 고희범 전 <한겨레> 사장이 9일 급거 상경해 "'성희롱 용인정당'으로 추락하여 제주도민은 물론 온 국민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고 지도부를 맹비난한 뒤 당사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특히 우 전 지사 복당에 주도적 역할을 한 김민석 최고위원을 정조준, "김민석 최고위원의 제주 방문 이후 우 전 지사의 복당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일들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마치 구걸하듯 복당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질타했다.
이뿐이 아니다. 우근민 복당에 강력반발하는 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인 김우남 의원을 무마하기 위해 지난 6일에는 정세균 대표, 8일에는 김민석 최고위원 등이 잇따라 제주를 찾았으나 김 의원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조용하나 정세균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대단한 비주류도 곧 우근민 파동을 대대적으로 문제삼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세균 지도부는 '우근민 파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으로 판단한듯 하다. 하지만 치명적 착오였음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벌써부터 지지자와 네티즌들 사이에선 민주당에 대해 더없이 실망했다는 비난이 봇물 터지고 있다. 현정권에 대한 견제심리가 높은 시점에 이런 식으로 차려준 밥상조차 걷어차기냐는 탄식 일색이다.
더욱이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보인다. 2002년 성희롱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제주 여성단체들은 자신을 "늙은 오빠" 운운하며 성희롱 피해자를 무마하려던 우 전 지사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녹음 및 녹취록을 공개했었다. 만약 이 녹음이 선거때 다시 유포된다면 민주당은 '세상의 반'인 여성유권자 표를 거의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16개 광역단체장 중 제주지사 1개를 챙기려던 정세균 지도부의 안이한 판단이 지금 민주당 전체를 암담한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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