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희생자 범국민장, '오열'속 엄수
<현장> 유족들 "가지마, 가지마", "아빠 어떡하냐"
이들의 시신은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유가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인됐다. 발인식에는 이강실ㆍ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민노당 강기갑 대표,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문정현 신부 등 각계 인사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발인식은 유족들이 고인들의 영정사진 앞에 절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축문과 묵념, 위령제 순으로 거행됐다. 오전 10시 고 이상림씨 시신을 맨 앞으로 운구행렬이 시작됐고, 고 양회성씨, 고 한대성씨, 고 이성수씨, 고 윤용헌씨의 시신이 차례로 뒤를 따랐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다가 관이 차례로 장례식장 밖으로 나오자 오열하기 시작했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떠나가는 운구차를 바라보며 "가지마, 가지마"를 외치다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고 이성수씨 부인 권영숙씨는 관을 부여잡고 "아빠 어떡하냐"고 울부짖었다.
이날 발인식에 이어 운구행렬은 순천향병원~국립극장~장충단공원~퇴계로 명동성당 구간 약 8km를 거쳐 영결식장인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특히 용산참사로 인해 수배된 용산 범대위 박래군-이종회 공동위원장과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 등 3명이 농성하고 있는 명동성당을 찾아 수배자들 위로하는 자리도 가졌다.
범국민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은 낮 12시 1만여명의 시민상주단이 참석하는 가운데 상임장례위원장의 개식사와 약력ㆍ경과보고, 조사, 조가, 진혼무, 유가족 인사, 분향, 헌화 순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8천566명의 대규모 시민상주단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했고,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근태 전 의장, 무소속 정동영 의원,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 등도 참가했다.
희생자 5명의 영정사진과 국화꽃이 놓여 있는 무대에는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이라고 적힌 근조 플래카드가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영결식장 곳곳에는 '민중해방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살인진압 진상규명' 등이 적힌 플래카드와 만장이 찬바람과 간간히 내리는 눈발에 나부끼며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정세균 대표는 조사에서 "당신들의 자리에 치솟은 콘크리트 절벽에 눈물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며 "죽음으로 몰아낸 이유를 분명히 밝히겠다"며 진상규명을 다짐했다. 이강실 상임장례위원장은 조사에서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살인적인 재개발 정책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 일은 남은 사람에게 맡기고 편안히 잠들기 바란다"며 영면을 기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용산참사는 ‘용산학살’로 명명하는 것이 옳다”며 “정권의 마루에 앉아 있는 이명박이 이 자리에 와서 ‘제가 부덕한 탓에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큰 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희생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천인공노할 만행을 제대로 밝히지도, 심판하지도 못한 무능함을 용서하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이승을 떠난 한 많은 영혼은 구천을 떠돈다 했는데 희생자들은 구십천, 구백천을 떠돌았을 것”이라며 “지켜 드리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족대표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뒤, "막상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으려니 또다시 가슴에 찬바람이 휑하고 지나가고 갖가지 회한이 밀려온다"며 "저희 유족들은 오늘 고인들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고 통한의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진실을 밝혀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 갇힌 내 아들, 우리의 동지들이 하루 빨리 무죄로 풀려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유족과 참석자들은 영결식이 끝난 뒤인 오후 2시부터 용산참사 현장까지 약 3km 구간을 다시 행진해 이곳에서 송경동 시인의 조시, 문정현 신부의 조사, 진혼굿, 분향ㆍ헌화 순으로 노제를 치른 뒤, 고 전태일 열사가 묻힌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오후 6시께 안장된다.
경찰은 이날 서울역 광장과 노제 행사장 등 주변에 전ㆍ의경 67개 중대 4천700여 명을 배치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충돌은 없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