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목도 따듯해 질거라구? 허구다"
[송기균의 마켓뷰] 지금의 경제회복은 부자들만의 잔치
“하루 50만원은 팔아야 임대료 내고 밥 먹고 사는데 요즘은 15만원도 어렵다. 한쪽에선 명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하는데 여기 오는 사람들은 1만원 쓰는 것도 벌벌 떤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커졌다는 증거다.” (11월4일자 <헤럴드 경제> 기사 중)
최근 들어 신문과 방송에서는 우리 경제가 본격회복에 접어들었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 몇 십도 수준이다. 서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도 엄동설한이긴 마찬가지다.
각종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는 경제회복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사이에 어떤 간격이 존재하길래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경제회복이란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나 한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경제회복이란 경제성장률(GDP성장률)을 가리킨다. 경제성장률이 강하게 상승하고 있으므로 우리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현정부가 출범한 이후의 분기별 성장률을 보자. 2008년 2분기 0.4%, 3분기 0.2%, 4분기 -5.1%에 이어 2009년 1분기 0.1%, 2분기 2.6%, 3분기 2.9%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작년 4분기에 -5.1%로 추락했던 성장률이 올해 들어 플러스로 돌아서더니 3분기에는 2.9% 성장으로 7년여 만의 최고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성장률만 보면 경제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떠들 만도 하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엄청난 재정적자와 자산가격 버블이 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10월29일자 <3분기 ‘GDP서프라이즈’의 진실은 버블>에서 자세히 분석하였으므로 긴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문제는 경제는 회복되는데도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경제이론에 의하면 GDP(국민총생산)란 국민총소득과 항상 일치한다. 그러므로 GDP가 성장한다는 것은 국민 전체의 소득의 합계도 같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경제가 위기를 벗어났다면 국민들의 소득도 위기 이전으로 회복되어야 마땅하다.
현정부 출범 이후의 GDP성장률을 다시 보자. 2008년 2분기부터 2009년 3분기까지 6분기의 GDP성장률을 합하면 +1.1%가 나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전체 국민들의 소득총액은 현정부 출범 이전보다 소폭 늘었다.’
그런데 왜 서민들은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하는가? 서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의 매출은 왜 현정부 출범 이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가? 전체 국민들의 소득총액이 소폭 늘었는데 서민들은 큰 폭 마이너스 상태라면 그 돈들은 다 누구에게로 갔을까?
흔히 말하는 윗목·아랫목 이론에 의해 서민들까지 경제회복을 체감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 걸까? 그러나 아무리 참고 기다려도 서민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자영업자들의 장사가 이전으로 회복되는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왜 그런지 보도록 하자.
올해 2분기와 3분기의 강한 경제성장(GDP성장)을 가능케 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엄청난 재정적자와 자산가격의 버블, 그리고 고환율 정책이다. 하나씩 따져 보도록 하자.
첫째 재정적자에 의한 경제성장이다.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한 원인은 두 가지다. 정부가 지출을 엄청나게 늘린 것이 하나이고 세금을 엄청나게 깎아준 것이 다른 하나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GDP는 성장한다.
문제는 이 둘 다 서민들의 소득 증가와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특히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현정부 들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대폭 감면하여 부자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한 반면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세금 혜택이 없었다. 당연히 엄청난 재정적자에 의해 경제성장률은 높아졌지만(그래서 향후 부담해야 할 국가빚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서민들의 소득증가에는 아무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자산가격의 버블에 의한 경제성장이다. 올 3월 이후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폭등하였다. 그 결과 자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의 재산이 크게 증가하고 그들이 소비를 늘림에 따라 GDP가 성장하였다.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산효과(Wealth Effect)다.
문제는 경제는 성장하지만 별다른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서민들의 소득 혹은 부의 증가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서민을 상대하는 자영업자들 역시 경제회복이 남의 집 잔치일 따름이다.
셋째 고환율 정책에 의한 경제성장이다. 이것이 세 가지 중에서도 서민들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고 중요하다.
현정부가 출범하던 2008년2월25일의 환율은 947원이었는데 올 상반기 평균환율은 1,351원이었다. 현정부 출범 이후 1년여 만에 404원이나 폭등한 것이다. 1년여의 짧은 기간에 환율이 42%나 폭등한 것은 외환위기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물론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없었다면 이런 환율폭등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냈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런 고환율 정책으로 서민들의 가정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받았고, 자영업자는 매출이 반감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우리 집 가계부를 보면 자동차 휘발유값으로 매달 약 3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올 상반기 동안 휘발유 비용으로만 180만원을 지출한 것이다. 그런데 환율이 1,351원이 아니라 947원이었다면 어땠을까? 휘발유는 백퍼센트 수입을 하고 있으므로 환율변동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환율이 947원이었다면 휘발유 구입비용이 180만원이 아니라 126만원이었을 것이다.
환율이 폭등하여 올 상반기에만 휘발유 비용으로 54만원을 더 지출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계부의 지출항목에는 휘발유 구입 말고도 식품, 의류, 교육비도 있고, 문화 오락비도 있다.
보통 정도의 서민으로 한 달 2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지출한다고 가정하고 이들 비용 중 절반 정도가 환율에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매달 약 30~40만원을 환율폭등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쉽게 말해 환율이 404원 폭등한 결과 서민 가정의 월 소득이 30~40만원 감소한 것과 같은 효과다.
매달 200만원을 지출하는 가계에 30~40만원은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다. 그 정도로 실질소득이 줄면 가장 먼저 취할 대책은 외식을 줄이는 일일 것이다. 백화점 쇼핑은 언감생심이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도 몇 만원 짜리 바지를 사는데 몇 번이나 망설일 것이 틀림없다. 동네 음식점과 재래시장이 장사가 안 되는 이유다.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가 일시적이긴 하지만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감세혜택을 누리는 부자들과 자산을 많이 보유한 자산가들은 경제회복의 단맛을 실컷 맛보고 있다. 수출대기업들 역시 고환율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구가하고 있다.
서민들은 어떤가? 경제가 회복된다는 환호성은 딴 세상 소리일 뿐 경제불황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소득이 감소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환율까지 폭등하여 실질소득이 또 감소하였으니 허리띠를 더 바짝 졸라매지 않고는 가계경제를 꾸려갈 수 없다.
서민을 상대하는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안 되어 한숨만 내쉬는 것은 경제회복이 부자들만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잘못된 정부의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송기균경제연구소 소장.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과 <유동성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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