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있으니까 괜찮다? 천만의 말씀"
[송기균의 '마켓 뷰'] IMF ‘아시아 경제전망 보고서’ 메시지
미국경제가 나빠져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아시아 경제 차별화론’ 혹은 ‘디커플링론’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지난 5월6일 IMF가 발표한 ‘아시아 경제전망’은 이런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IMF의 ‘아시아 경제전망’의 핵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아시아가 세계경제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초기만 해도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아시아 경제는 견실한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 근거로 미국 금융기관들과 달리 아시아 국가의 은행들이 서브프라임과 금융파생상품에 과다한 투자를 하지 않은 점과 아시아 국가들의 거시경제가 견실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므로 미국과 유럽에서 밀려오는 경제위기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견실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인 것이 입증되었다. 미국과 유럽 등 위기발생 국가들보다 아시아 국가의 경제가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작년 4분기 GDP성장률을 보면 명확하게 나타난다.
아래 그래프는 전분기(2008년 3분기) 대비 2008년 4분기의 국가별 경제성장률을 보여준다.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GDP 성장률이 미국과 유럽보다 더 크게 하락하였다.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주요 7개국의 4분기 경제가 -10% 이상 후퇴하였으며, 한국을 비롯한 4개국은 -15%가 넘는 경기후퇴를 겪었다. 디커플링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IMF의 분석에 의하면 아시아 경제가 이미 세계경제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세계경제가 호황일 때 그 단맛을 실컷 맛보았으니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은 이렇다.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의 견인차는 기술집약형 제품의 제조와 수출이었다. 자동차, 전자제품과 산업기계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제품들의 주요 시장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가들이다. 선진국가들이 세계경제 위기로 수요가 위축되자 그 공급자인 아시아 경제가 신속하고도 예리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2008년9월에서 2009년2월까지의 기간 동안 아시아 국가들의 상품수출이 70%나 급감한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런 감소율은 IT 버블이 붕괴된 2000년대 초의 수출 감소율보다 1.5배 큰 것이고, 외환위기를 겪던 1990년대 말과 비교하면 거의 3배에 이르는 극히 심각한 현상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은 같은 기간 동안 80%나 급감하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한 다음 최종생산품을 수출하는데,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중국의 최종생산품 수출이 급감하자 부품 수입 역시 급감한 것이다.
IMF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주요인은 왕성한 국내소비였다. 그런데 중국으로의 수출이 급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국내수요 증가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다. 글로벌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국정부는 공공부문투자를 대폭 늘렸다.
민간제조부문에 대한 투자가 주로 기계와 설비 수입을 증가시키는데 반해 공공부문투자는 국내 원자재의 사용을 증가시킨다. 더욱이 가계소비의 증가는 수입증가 효과가 작은데, 이는 중국의 수입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선진국 경제가 침체되더라도 “중국이 있으니까 괜찮다”라는 주장이 한갓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IMF의 아시아 경제전망 역시 상당히 부정적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향후 아시아의 성장궤도는 글로벌 경제와 평행하게 움직일 것이다. 2009년의 남은 기간 동안 외부충격이 민간투자와 소비에 여향을 미쳐 아시아의 상당수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세계경제가 2010년 회복되면서 아시아 국가들도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회복속도는 미약할 것이다. 그 이유는 글로벌 경제가 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경험상으로 보면 민간투자는 경기하강 국면이 끝나고도 느리게 회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위기를 수반하는 경기침체 국면에서의 회복기에는 더 그렇다.
글로벌 경제가 2010년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 아시아 국가들은 실물경제와 금융부문이 상호 순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복합불황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총수요감소와 금융경색의 지속은 기업부도의 급증을 불러올 것이고, 그 결과 은행들의 부실누적, 대출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동시에 기업부도 증가는 실업률 급증을 낳고 곧바로 소비수요 감소를 불러올 것이다.’
IMF의 아시아 경제에 대한 장기전망 역시 부정적이다. 보고서 중 장기전망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더 장기적으로 보면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선진경제로부터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선진국가들의 가계부문이 과다한 부채를 줄여 나가는 과정을 이제 막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내구소비재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제조부문과 수출의 성장률은 향후 수년 간 구조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과실을 안겨 주지 못할 것이다.’
IMF 보고서가 아시아 경제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렇다. 현재 진행형인 경제위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아시아 경제가 ‘디커플링’은커녕 선진국의 경제위기로부터 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향후 아시아 경제의 회복 여부도 전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기업금융연구소 소장.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