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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비정규직→길거리로...

<현장> 인권위에 부당해직 진정한 한 여성노동자 이야기

지난 92년 전북의 모 상업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A(여, 32세)씨는 그 해 가을 TV브라운관을 만드는 ‘삼성 SDI’ 경기 수원공장에 여공으로 입사했다. 수원에 연고가 없던 A씨는 그 후 10여년 가까이 5인용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타지에서 기름밥 먹는 팍팍한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푼돈이라도 부쳐드릴 수 있는 자신이 A씨는 뿌듯했다. 그리고 아무리 공장 노동자라지만 남들 다 인정하는 ‘대 삼성그룹 계열사의 정규직’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난 98년, IMF외환위기 직후 삼성 SDI 수원공장은 TV브라운관 수요 감소와 경기절감 차원에서 공장 내 생산라인들을 일제히 하청업체에 분사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A씨는 하루아침에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그것도 하청업체 노동자로 전락된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부도의 엄혹한 현실 앞에 일개 노동자가 주장할 선택권은 없었다. “하청업체로 넘어가느냐, 퇴직하느냐”의 양 갈림길에서 노조하나 없는 공장에서 일하던 7년차 여공이 달리 선택할 길은 없었다.

삼성 측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노동자가 그간 발생된 삼성의 부당노동행위들을 증언하고 있다 ⓒ뷰스앤뉴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되다

그렇게 정규직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한 A씨는 그 때까지만 해도 도대체 ‘비정규직’이 뭔지, 하청업체 노동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 A씨 뿐이랴. 당시 외환위기 직후 유행처럼 퍼져나가던 기업구조조정과 그 과정에서 깃털처럼 떨어져 나간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다가올 비정규직 공포는 예상조차 하기 힘든 시대상황이었다.

그러나 A씨가 비정규직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깨닫는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A씨는 삼성에 입사한 후 줄곧 삼성 SDI 수원공장 내 TV브라운관 색상조정(RGB) 라인을 담당하는 ITC 파트에서 근무했다.

하청업체로 분사되기 직전 3백50여명 가량되던 ITC 파트는, 삼성 SDI가 ITC 파트를 ‘삼명 RT'에 분사한 이후부터 조금씩 인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경기를 절감하려는 게 하청업체의 생리. 어느덧 하나둘씩 옆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임금도 삼성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던 때보다 매년 10%씩 삭감되기 시작했고, 2000년 들어서는 정규직 당시 임금의 50%까지 반토막났다. 정규직 때 받던 의료보조금도 없어졌고 동호회지원비, 향후회 경비 등 여타 복지환경이 대폭 축소됐다.

ITC파트 분사 전후로 A씨는 여전히 삼성 SDI 수원공장에서 여전히 동일업무를 하고있음에도 오로지 달라진 것은 그의 신분과 그가 받던 임금과 복지환경이었다. 이것이 하청 노동자가 겪어야 할 운명이었던 셈이다.

부당 해고를 주장하는 전 삼성SDI 여성노동자들은 삼성이 자신들을 해고할 때까지 여성차별을 단행해왔다고 증언했다 ⓒ뷰스앤뉴스


길거리로... 인내심을 시험하다

그렇게 하청노동자로 8년을 더 일했다. 이전, 원청(삼성 SDI) 정규직 만 6년을 더하면 14년, 청춘을 꼬박 삼성 밥을 먹고 산 셈이다. 그러나 삼성 SDI는 TV용 LCD에 더 이상 브라운관 TV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회사방침에 따라 올 해 5월, 수원공장 폐쇄결정을 한다.

삼성의 무노조 신화가 이 때 힘을 발휘했다. 노동자의 반발이 조직화될 여지조차 없었다. A씨를 비롯한 ITC파트에 남아있던 5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지만 하소연할 조직도 힘도 없었다.

삼성 SDI 수원공장 폐쇄 소문은 그 이전부터 노동자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남성 노동자들은 그나마조직적인 대응을 위해 하청업체인 삼명 RT측에 대화를 요구했다. 5월 공장 폐쇄 직전 남성 노동자들은 하나 둘씩 과장에게 불려가 퇴직에 따른 보상과 처우를 논의했다.

5월 25일, 삼성 SDI에 ITC 파트를 하청받던 삼명 RT는 수원공장 폐쇄로 인한 공식 폐업을 선언하고 남성 노동자들은 삼성측으로부터 ▲5천만원의 위로금을 별도로 지급받았고, 삼명 RT측으로부터도 ▲직급별 최대 2천만원에서 최하 2백만원 + 3개월 봉급을 지급받고 퇴사했다.

반면 A씨를 포함한 10여명이 넘는 여성노동자들은 삼성 SDI측으로부터 일체의 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고작 삼명 RT측으로부터 1년치 기본급만을 지급받고 퇴직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여성의 경우 몇 년을 근무하든 무조건 1년치 기본급만 받고 조용히 회사를 떠나야 했다. A씨의 경우 무려 14년을 삼성 SDI 수원공장에서 일했으나 뒤늦게 들어온 남성 노동자들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입을 닫아야 했다.

A씨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 혹독한 IMF 구조조정에서도 군소리 않고 묵묵히 삼성을 위해 일했건만 사용가치가 없어졌다고 이렇게 노동자들을 무참히, 그것도 남녀 차별적으로 내팽개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A씨와 같이 삼성 정규직으로 13년을 일한 동료 B씨, 삼명 RT로 입사한 또 다른 여공 2명 등 모두 4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결국 골리앗과 맞서기로 결심했다.

6월 1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삼성 SDI가 삼명 RT측에 도급을 내준 생산공정은 사실상삼성 SDI의 전반적인 지시를 받는 사실상의 위장도급에 해당한다며 ‘불법파견 사업장’ 진정을 제기했다.

서울 중구 태평로 2가에 위치한 삼성그룹 본관. ⓒ뷰스앤뉴스


"힘겨운 골리앗과의 싸움, 그러나 어차피 누군가는 가야 할 길"

이렇게 시작된 이들 ‘4인방 다윗의 전쟁’은 27일 서울 삼성본관 앞에서 항의기자회견을 기점으로 대장정에 올랐다. 이들은 항의기자 회견 직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삼성의 남녀 성차별과 ▲삼성의 사용자성 인정과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삼성이 사실상 자신들의 사용자였고, 자신들이 일한 ITC파트의 주요업무, 지휘체계는 모두 삼성 SDI가 실질적으로 관리, 감독 통제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지난 1998년 삼성 SDI에서 자신들이 분사돼 삼명 RT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전락됐던 그 해, 삼명 RT 사장으로 과거 삼성 SDI에서 과장직을 맡고 있던 인물이 발탁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삼성 SDI가 분사를 결정하며 각 공장 생산공정을 하청업체에 하도급을 주었지만 전 삼성 임직원이 버젓이 하도급 업체 사장으로 가는 등 사실상 실질적인 관리, 감독은 삼성 SDI가 했다는 주장이다.

삼명 RT 폐쇄조치로 퇴직된 남성 노동자들에게 삼성 SDI가 직접 위로금 5천만원까지 지급한 사실은 사실상 삼성의 사용자성을 에둘러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더 나아가 1998년 ITC 파트 분사 직후 삼명 RT로 입사한 일부 노동자들은 면접을 삼성 SDI가 실시했다는 주장도 이 날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났다.

이들은 “삼성이 자신들의 관리, 감독 등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만큼 공장 폐쇄에 따른 해직문제도 전적으로 삼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우리는 한낱 퇴직금을 더 받아내려고 여기서 싸우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10여년 넘게 일한 우리의 일터를 다시 찾고 싶어 이렇게 투쟁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삼성 SDI 부당해고 사건을 맡고있는 강대훈 노무사는 <뷰스앤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명백한 불법파견, 위장도급에 해당한다”면서 “분명 이들 해고 노동자의 사용자성은 삼성 SDI측에 있기 때문에 사태 해결도 삼성이 직접 나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 노무사는 “지노위 결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삼성이 이렇게 불법파견을 시행할 때는 아주 치밀하게 움직여왔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힘겨운 싸움을 전망했다. 그러나 강 노무사는 “만약 지노위 결정이 삼성 SDI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나면 상급기관에 재진정을 넣으며 새로운 투쟁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뷰스앤뉴스>는 삼성 SDI측에 반론을 요구했지만 삼성 SDI 홍보부와 인사부 모두 “관련 담당자가 출장과 공석인 관계로 명확한 답변을 하기 곤란하다”며 정확한 해명을 거부했다.

이 날 삼성본관 앞에서 이뤄진 항의기자회견 도중 삼성본관 측 경비직원들과 노동단체 사이에 충돌사태가 일어났다. ⓒ뷰스앤뉴스


한편 이 날 기자회견 도중 노동단체 조합원이 기자회견을 곁에서 감시하고 있던 삼성본사 경비직원들에게 “감시를 말아 줄 것”을 요구하며 시비가 붙어 양측간에 물리적 충돌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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