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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기자회견 전문] "3류 소설도 못돼"

"네티즌도 나쁘지만 부추키는 게 누구냐"

나훈아씨는 25일 오전 1시간 동안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에 대한 각종 루머를 양산한 언론을 질타했다. 다음은 나씨의 기자회견 전문. <편집자 주>

여기 오기까지 속마음이 시리고 아팠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해명을 한다는데, 해명은 어떤 사건이 문제됐을 때 밝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해명입니다. 저는 한 게 없기 때문에 해명을 할 게 없습니다.

해명은 확실치 않은 얘기를 실제 근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보도를 한 기자나 언론에서 해명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절대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 안 하려고 했는지 얘기하며 말하겠습니다.

저는 40년을 노래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기자 여러분, 만약에 40살이 되지 않은 분들은 제가 노래를 시작할 때 태어나지 않은 분들입니다. 40살이 조금 지난 분들은 아장아장 걸음을 걸을 때입니다. 40년을 했기 때문에 대우를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언론에서 대우 정서가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대우하라는 건 아닙니다. 기사를 다룰 때는 적어도 신중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은 어디로 가 있고 엉뚱한 얘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하는지.

만약 이런 식이면 뭐하러 목숨을 담보로 현장에 가서 진실을 담보로 죽기까지 하는 기자들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뭘 써 갖고 나온 것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얘기 중에 두서가 없거나 말이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주십시오. 끝까지 질문하지 마시고 오늘은 제가 얘기하는 자리이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테니 여러분은 끝까지 들을 책임이 있는 분들입니다. 나는 어디 소문난 것 듣기만 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만약 '나는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좇아 쓴 것뿐이야'라고 하면 방조자입니다. '나는 한 줄도 안 썼어'라면 방관자입니다. 적어도 말도 안되는 억측을 써내려 갈 때는 대한민국 언론 중 하나라도 신중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나왔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안 나오려 했습니다. 유독 이 연예계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선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을 조목조목 따지며 얘기하겠습니다. 얘기를 하기 전에 미리 말씀 드릴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과 진행과 끝이 있습니다. 중간 토막만 잘라 얘기하면 어떤 결론이 나오냐 하면, 어떤 사람이 맞아서 길가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걸 봤다면 사람들은 '참 안됐다, 누가 저걸 때렸어, 저거 때린 놈 참 나쁜 놈이야' 했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두들겨 맞은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폭행하고 자기 어머니를 때리고 이 세상에 못된 짓을 다한 사람이라면 '아이고 잘 맞았다' 하겠죠. 앞뒤 무 자르듯이 말씀 드릴 순 없고 먼저 두 가지 설명을 하겠습니다.

하나는 공연을 할 때는 내일 공연하니 오늘 하자 해서 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4~5개월 전에 준비를 마쳐야 공연이 가능합니다. 다시 풀어 말씀드리면 공연장소를 계약하는데 한두 달 전에는 계약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게 1년 전 아니면 5~6개월 전 준비돼야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면 알아두십시오.

두 번째, 저는 40년을 노래했습니다. 제가 공연을 할 때는 표가 없습니다. 표를 구하려 해도 표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입니다. 이렇게 40년 오기까지는 저 나름대로 느끼는 '꼭 이렇게 해야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박수를 쳐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개인 생각입니다.

40년 노래한 저로서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공연할 수 있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제 공연을 구경왔을 때 기대를 하게 만든 건 저이기 때문에 오신 분들과 무언의 약속이죠. 그래서 절대 온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공연하는 것이 바로 약속입니다.

두 번째,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이란 말은 우리처럼 긴 세월을 노래하면 노래를 쉽게 잘하는 법을 압니다. 처음에는 안 그러다 세월 가면 박자를 늘렸다 줄였다 하죠. 이걸 오시는 분들이 다 안다는 겁니다. 무대에서 거짓말 하지 말고 노래해야 하고 무대 전체를 거짓 없이 해야합니다. 그러면 땀이 나게 돼 있습니다. 무대에서 땀을 댓 바가지를 흘리더라도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건 하자고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꿈입니다. 저희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몇 억씩 하는 조명이 수십 대가 달려있습니다. 무대 출연진 누구나 보통 거리에선 입지 못할 멋진 옷을 입습니다. 막이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그 무대는 꿈이어야 합니다. 두 시간 이상을 혼자서 끌어가기엔 이 꿈이 없으면 힘듭니다. 저는 연습, 무대 감독, 출연, 세 가지를 꼭 합니다. 그래서 꿈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매년 공연을 똑같이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꾸려면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와야 하고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정도의 무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꿈이 필요합니다. 제가 꿈을 팔려면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꿈을 어디서 충족하느냐, 꿈 얘기는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지금껏 노래해 오면서 한 5~6년 전부터 꿈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꿈이 고갈된 느낌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갖고 있었습니다.

4년 전, 늘 그래왔던 것처럼 1년 죽 공연하다 12월31일 공연 끝내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내년에는 나 어떡하지, 어떻게 공연을 또 할 수 있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우리 스태프, 식구들 모두 앉아서 파티를 합니다. 마지막 날은 좀 크게 합니다. 그때 제가 얘기했습니다. '오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내가 겁이 났다. 우리 겸손하자'고요. 가는 데마다 표가 없지요, 가는 데마다 관객도 젊어져서, 관객의 박수가 이게 꼭 젊은 가수의 공연처럼 되다보니 우리 스태프들이 좀 경거망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겸손하자는 얘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했습니다. 물론 아까 나온 사람(아라기획 대표)에게도 '한 발짝만 다른 사람보다 뒤에 서자, 겸손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1~2월에는 인솔 하에 스태프 장들을 외국에 보냅니다. 제가 하는 말은 가서 뭔가 건져오고 느끼고 오라는 거지요. 이건 무슨 얘기냐, 꿈입니다. 우리 스태프도 꿈을 갖고 있어야 한마음이 됩니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세종문화회관 별안간 취소하고 펑크를 내고 돈까지 물어줘가면서 공연을 취소했다는 것 이 얘기부터가 웃기는 얘기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을 돌연 취소했으면 세종문화회관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문제가 생겨야 합니다. 왜 하필이면 세종문화회관만 그렇냐. 난 세종문화회관 잡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작년 초 얘기죠. 제작년에 다음 해에 공연은 잡지 말라고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잡혀 있어선 안됩니다. 그런데 공연기획사 측에서 세종문화회관을 잡아놓고 '잡기가 까다로운 곳이니 혹시 마음이 변해서 (내가) 하지 않을까' 잡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몰랐습니다.

기자가 기획사만 만났으면 이 문제는 제대로 밝혀지는 것입니다. 발품을 팔지 않고 가고 싶은 데로만 간 것입니다. 그러더니 회사 문을 닫았답니다. 제가 뭘 못할 때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어야 하는 회사입니다. 내가 쉴 때 같이 쉬어야 하는 회사입니다. 이걸 그런 식으로 몰고갔습니다. 그러더니 잠적했다, 잠행했다. 행방이 묘연하다는 식의 단어를 써가면서 여기저기서 잠적했다는 것입니다.

잠적했다는 소리가 나온 그날, 신문ㆍ방송에 이 말이 나오는 날 저는 우리 스태프와 휴가를 가고 있었습니다. (나훈아가 "휴가 갔다 온 사람 있습니까?"라고 묻자 스태프가 "네"라고 대답했다)

거기서 TV를 켰더니 나훈아 잠적, 스태프들이 "왜 저러는 겁니까"라길래 딱 한마디 했습니다. "놔두라"고. 말 같지 않으니까. 이 연예계 바닥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긁어놓고 네티즌을 들끓게 만들고 이거 누가 하는 겁니까. 네티즌도 나쁘지만 부추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까 제가 꿈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늘 해마다 공연이 끝나고 꿈을 가슴에 채우러 1~2월에 외국에 가서 좋은 공연도 보고 좋은 풍경을 보면서 가슴 찡한 것도 보면서 그렇게 꿈을 담습니다. 가슴이 마르면 안되니까요. 꿈이 가득할 때 좋은 가삿말, 곡도 만들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알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껏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꿈입니다. 그렇게 해왔는데 이렇게 왜 금년에는 쉬게 됐느냐. '아 이거는 아니다. 무슨 획기적으로 변화가 있어야지' 만약 관객 속에서 이제 조금 지겨운 거 한다는 소리 나오면 늦습니다. 그러기 전에 다시 꿈을 채워야 합니다. 내가 획기적으로 바꿔 공연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습니다.

한국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라도 남원에서 뱀사골로 뱀사골에서 경상도까지 산속을 걸어갔습니다. 사람이 오면 없는 쪽으로 모자 쓰고 얼굴 가리고. 주의 깊은 분들은 내 얼굴을 알아봤습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개울도 만나고 제일 힘들었던 게 식사였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실 것 같은 아무도 없는 식당에 들어갔죠.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굶은 적도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할머니가 '따뜻한 국 더 드시라'고 갖다줄 때 가슴에 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삼척, 춘천, 강릉 옛길, 옛 선비들이 한양을 갈 때 걸어간 길, 그 길로 서울 근처까지 걸어왔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걷지 않던 사람이 그렇게 걸으니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신문에 남의 마누라 빠앗아서 가정파괴범,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하는 마음이 눈곱만큼만 있었더라도 여러분의 집에 키우는 개새끼입니다. 혹시 집에 개 없는 사람은 옆집 개, 건넛집 개라도 좋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엄연히 간통죄가 있는 법치국가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법적으로 벌써 문제가 됐어야 합니다. 저는 긴 세월을 많이 당했습니다. 특히 연예계 매스컴의 속성을 잘 알죠. 나는 '아'라 했는데 '어'로 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멋대로 해라', 코는 코대로 간다는 경상도 말이 있죠. 진실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고 나 아는 사람이나 친척도 '무슨 일이야',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이지만 난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합니다. 할 수 없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고 싶었던, 가다가 고아원도 가고 싶었고 이런 저런 생각 있었으나 포기하고 외국을 나갔습니다.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대학교인데 정규 학생 아니고 부대시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물론 간단한 테스트는 거쳐야 합니다. 숙제하면서 밤 새우면서,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 저한테는 쉽지 않았습니다. 밤 새우며 숙제하며 꿈을 가진 건 오래만이었고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프리젠테이션 때는 3일간 잠 못자고 준비했습니다. 저보다는 어린 교수였지만 제 별명을 '얼리 버드(early bird)', '일찍 일어나는 새'라고 지어줬죠. 날마다 제가 가장 일찍 와 있었습니다. 결국 그 학교 한국 학생 몇 사람이 하나둘 다니니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행동 반경이 또 어려워졌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 때는 대한민국 태극기가 내 등에 있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1년 다니고 싶었는데 못 다니고 들어왔죠. 들어왔더니 이제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부산 모 병원에서 후두암이 걸려서, 몹쓸 병에 걸려서 죽을 병에 걸렸다고. 아시는지요. 멀쩡한 사람을. 부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부터 부산 모 병원에 입원했다, 결과가 뭡니까. 제가 단언컨대 대한민국 공공장소에 3분 이상 서 있어서 거기 온 게 소문이 안 난다면. 제가 만약 병원에 입원했다면 틀림없이 어떤 경우든 저를 본 사람이 있을 테고. 다 압니다, 여러분들 꾼들이어서 기자들이 써 나가는 글귀를 보고 이거 냄새난다, 문제가 있다는 걸 다 알 것입니다. 벌써 찾아가서 아니다, 못 봤다는데도 계속 나왔습니다.

말할 가치도 없고, 대꾸할 이유도 없는 거니까. 죽은 사람이 눈 뜨고 다니는 제가 이상해졌습니다. 여러분 다 읽고 나서 보면 별 거 아닌데, 제목에 나훈아 죽을 병, 암에 걸렸다, 부산에 입원. 성질 급한 사람은 위에 제목만 읽어 다른 사람한테 얘기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래요 죽었다고. 나를 탁구대에 올려놓고 핑퐁 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것이죠.

그래서 떠났습니다. 카이로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데 몇 시간이 걸리느냐. 밤 비행기를 탔는데 마침 아슬람의 추석 같은 큰 날이어서 비행기에 사람이 별로 없었죠. 그런데 귀에서 피가 나고 코에서 피가 나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감기에 스트레스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며칠 만에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가고 나았습니다. 건강하게. 암에 안 걸렸습니다.

어느 나라에는 사원인데, 시체를 태웁니다. 제 눈앞에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서 네 구의 시체가 타고 있었습니다. 맨 오른쪽 시체는 거지, 맨 왼쪽 시체는 상당히 부자 시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타는 모습은 똑같았습니다. 저는 움직이질, 일어서질 못하고 거기 앉아서 저는 남 앞에서 울 줄 모릅니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니. 그런데 그날은 가슴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코끝이 찡하더니 눈이 뜨거워지고 결국 수건까지 꺼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이죠. 저는 그날 가슴이 아팠지만 제 가슴에 꿈은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쓴 '혼' 가사 중 '살다 보면 알게 돼'가 있는데 그런 걸 보면서 가삿말을 쓰는 것이죠. 나라로 치면 14개국, 스물몇 군데 도시를 다녔습니다.

돌아와 보니 삼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것이죠. 야쿠자가 등장합니다, 지금부터 이 위에 올라가서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바지를 벗고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서 대표로 얘기해주세요. 제가 (바지를)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단상에 올라 지퍼를 내렸다가 다시 내려와) 밑에가 잘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온 이유를 얘기하겠습니다. 제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후배 배우들이 황당무계하고 기가 막히고. 여러분 펜대로 사람 죽이는 것 아시는지요. 의지는 약하고 견디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했을 겁니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연락한 게 (지난주)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때 뭐가 저를 힘들게 했냐면. 두 처자들이 아직 결혼 전입니다. 여러분도 모르는 남자친구가 있고 가족까지 만나는 사이라면 황당하겠죠.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아마 그 집에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느냐'고. 우리 한국은 굴뚝도 없는데 연기를 피우는 곳입니다. 그러더니 '네가 처세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소리가 나오느냐'. 할 말 없습니다. 여러분 왜 둘이 나왔을까요. 하나도 아니고. '글래머 K모 배우'. 이게 사람 죽이는 거 모릅니까. 알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만이고 맞으면 한탕하는 것이죠.

연예인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많은 직업입니다. 뛰어서 정말 진실에 가까운 걸 얘기했어야 합니다. 애매모호하게 K로 거론되니 김혜수, 김선아라고 나온 것이죠. 이건 아닙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제가 '니 마음대로 해라, 놔두라'고 하기엔 이 처자들은 젊습니다. 제가 나서서 그나마도 구겨진, 엉망진창된 것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봐. 지금껏 가만있다가 검찰이 내사에 들어가니 심리적 압박을 받아서 기자회견 한다는 말에 웃고 말겠습니다.

여러분 거의 다 얘기했습니다. 지금 나온 얘기들 다 했습니다. 여자로서 이렇게 엉망진창인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니겠습니까. 나야 여러분 손에 만신창이 돼서 찢겨졌죠. 엉망진창입니다. 꿈도 없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김혜수, 김선아 후배 처자들을 바로잡아주세요. 꼭 바로잡아주세요. 바로잡아주셔야 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야 대한민국 연예계 언론이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오늘 나온 것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후유증은 기든 아니든 깁니다. 저는 이 후유증이 잠잠해지기까지 기다리기엔 머리가 많이 셌습니다. 이번에 많이 힘들 때 저를 믿는, 전국에 저를 사랑하는 모임들이 있습니다. 제가 꼭 체크를 합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아픈 것들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괜찮다 해도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이걸 채우기에는,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합니다. 여러분들에 떼밀려서가 아니라 제가 못합니다. 제가 힘듭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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