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盧, '한미FTA 토론' 피하지 말라

<기고> '대언론 토론' '대선주자와 토론'보다 중차대

노 대통령은 ‘노무현표’ 정정당당함으로 한미FTA 토론에 나서라

6월 30일은 한미 양국간 타결된 한미FTA협정이 체결되는 날이다. 최근 재협상인지 추가협상인지 모호한 절차를 남겨두고 있으니 체결일자가 변동될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조만간 정부간 협정체결이 이뤄질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사실 한미FTA협상은 행정부 소관사항이지만 그 내용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국내협상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는 협상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개적인 국내협상이 결과적으로 국익에 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행정부측의 주장이 일리 있었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 지지여론에도 나타난 바 있지만 주변국보다 먼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와 외교안보적 국익을 편취하는 선제적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미FTA를 반대하는 운동도 협상팀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 5월 25일, 협상내용이 한글과 영문으로 공개되었고 이에 대한 논란이 지펴지고 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인 김원웅 의원도 한미FTA 청문회를 열겠다고 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의원들의 모임도 오늘 아침(6/7) 토론회를 비롯해 공개된 협정문을 중심으로 활발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도 6월 5일,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6월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비정규직 시행령저지 등 몇 가지 부수쟁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미FTA저지를 위해 사생결단하겠다는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각오다.

이로써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한미FTA가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국가중대사로서 수용되려면 일을 벌인 행정부가 마무리를 해야 한다. 국민동의를 구하는 국내협상도 거치지 않은 한미FTA라면 이제 실질적인 결정인 국회비준을 앞두고 자신들이 행한 일을 설명하고 토론하며 필요할 경우 국민을 설득하는 성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비록 사후적이긴 하지만 국내협상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와 반대단체들의 일방적인 의혹제기만으로 국민이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판단은 사안에 대한 정확한 시시비비보다 는 평소 정부나 반대단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취향에 따라 찬성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중대사를 이런 취향에 맡겨 결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한미FTA가 타결되면 밤샘 토론이라도 하자던 대통령이 범국본의 토론요구에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토론 좋아하는 대통령이 정작 국가중대사인 한미FTA 토론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시급한 일도 아닌 기자들의 공무원접근금지와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서는 선거법위반시비를 무릅쓰고 강연토론에 나섬으로써 그의 진정성이 국익이 아니라 정략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비판연설이 문제되자 이번에는 야당대선주자들과 토론하자는 엉뚱한 토론공세를 벌이고 있다. 야당 주자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은 왜 토론을 받아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가 야당 대선주자라 하더라도 손해 볼 일만 있는 토론에 참여하는 어리석은 일을 할 까닭이 없다. 선거에 나올 사람과 선거에 못 나올 사람의 비대칭적 토론은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토론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민 어느 누구라도 토론하자고 하면 이를 일일이 다 받아줄 것인가.

언론-정치권과의 맞짱토론보다 몇배나 더 중요한 한미FTA 토론을 기피해 비판을 자초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아무튼 대통령은 자신이 그렇게 강조해왔고 일부 국민들의 극단적 저항을 불러오고 목숨까지 앗아간 한미FTA에 대해 진지한 토론에 나서야 한다. 협정문 서명이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친노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정략적 언론개혁토론이나 차기 대선후보를 자신이 만들겠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주자들에 대한 토론공세, 그리고 연이은 선거법시비논란과 우스꽝스러운 헌법소원 운운 등으로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정말 국민전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미FTA에 대한 정정당당한 토론에 나서야 한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 대통령이 걸어온 삶의 궤적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의 언행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정작 중요한 국가대사에 대해서는 딴청부리면서 자신의 정치세력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골몰하는 이미지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는 국민을 통합시키기는커녕, 분열시킬 우려가 매우 높은 사안이다. 협정결과 취약부문의 구조조정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리고 먼 장래 우리의 산업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추상적인 관측이며 당장은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입는 쪽이 확연히 갈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한미FTA를 두고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과의 토론, 그것도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토론이 아니라 계급장 떼고 밤을 새더라도 끝장을 보는 토론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노무현표 정정당당’ 하고는 거리가 먼 태도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에 대한 반대자들과의 토론에 조건 없이 나서서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세금을 받는 국가최고 봉급수령자의 당연한 의무이며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키는 정직한 대통령의 자세다. 대통령이 그렇게 닮아가고 싶다는 미국에서 최고의 수치스런 욕설이 ‘거짓말쟁이’란 점은 노 대통령도 잘 알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김석수 칼럼니스트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