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아프간 주둔 한국군이 21일 정오(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4시30분)까지 철수하지 않을 경우 납치한 한국인 18명을 살해하겠다고 20일 통고, '제2의 김선일 사태'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탈레반 "한국군 21일 정오까지 철수 안하면 18명 살해"

AP통신에 따르면, 자신을 탈레반 대변인이라고 밝힌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AP통신에 위성전화를 걸어 "내일(21일) 정오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18명의 한국인을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그들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독일 dpa 통신에 따르면, 그는 dpa통신에도 전화를 걸어 "최후 통첩 시한을 내일 정오로 정했다"며 "만일 그 때까지 당국(독일, 아프간, 한국)이 우리와 접촉해 요구사항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경우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접촉한 이후에는 시한을 연장할 수 있다"며 협상을 통한 타협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는 탈레반이 이틀 전 2명의 독일인도 납치해 구금하고 있으며 역시 21일 정오까지 아프간 주둔 독일군이 철수하지 않을 경우 이들을 살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한국정부가 아프간에서 한국군을 철수시키기를 희망한다"며 "탈레반 지도자 위원회는 납치 한국인들의 운명에 대해 아직 결정한 바가 없다. 이들에 대한 조사와 심문이 끝나면 우리의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아프간에는 60명의 동의부대와 1백50여명의 다산부대 등 한국군 2백30여명이 주둔 중이며, 올해 연말 철군 예정이다.

앞서 지난 2월 다산부대 소속 고(故) 윤장호 하사가 주둔지인 아프간 바그람 기지 앞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한 바 있다.

정부 초비상

탈레반의 피랍 한국인 살해 경고가 나오자 정부에 초비상이 걸렸다.

외교부는 20일 밤부터 21일 새벽에 걸쳐 조중표 1차관 주재로 김호영 2차관 등이 참석하는 대책회의를 열었다. 송민순 장관도 공관에서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대책을 지시했다. 국방부도 20일 밤부터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관진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비상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어 21일 오전 7시부터 외교,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했다.

정부는 그러나 철군을 논의하기 위한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소집하지 않아 탈레반 요구대로 즉각 철군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으나,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프간의 가즈니 주당국은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 무장세력과 접촉 중이며,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은 주당국을 매개로 무장세력과의 협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레반은 그러나 일반 무장세력과는 달리 과거 집권세력이었던 까닭에 자신들의 대외적으로 공표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경고를 실행에 옮기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피랍자 가족 및 정부를 긴장케 하고 있다.

피랍 한국인 5명 차이의 미스테리

아프간 주재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피랍된 한국인은 23명으로 확인됐다. 납치 당시 버스에는 한국인 23명과 운전기사, 가이드 등 아프간인 2명 등 총 25명이 타고 있었으며, 운전기사와 현지인 가이드는 풀려나 현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운전기사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버스에는 분당 샘물교회 신도 20명과 안내인 역할을 봉사단체 소속 한국인 3명 등 총 23명이 타고 있었다. 성별로는 남성 7명, 여성 16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실제 납치된 한국인(23명)과 탈레반이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한국인(18명) 숫자 사이에 5명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이들 5명이 중간에 탈출했거나 아니면 이미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