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삼성에스원 해고 노동자들, 목숨 건 한강 횡단

<현장>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삼성에스원 노동자, 목숨 건 한강 횡단. 11시 마포대교 남단’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는 정확히 28일 오전 7시30분에 예약문자메시지를 각 언론사에 보냈다. 짧은 문구에는 마포대교 남단에서 북단까지 건너가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전날 하루 종일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진 쌀쌀한 겨울 날씨 속에서 총길이 1천3백90미터에 달하는 한강을 맨 몸으로 건너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들은 이미 마포대교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 위에서 ‘세콤 부당해고 철회하라’고 적힌 대형 플랫카드를 들고 서서히 북단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11시 15분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강으로 뛰어든 12명의 노동자들은 좌우 앞뒤로 대형 플랫카드를 밀고 끌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에는 6척의 경찰 측 구조보트가 이들을 예의주시했고 마포대교 위에서는 20여명의 공공연맹, 운수노조 노동자들이 지지 구호를 외치며 그들을 따라갔다.

삼성에스원의 계약해지에 맞서 4개월째 원직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에스원연대 노동자들이 28일 오전 11시 마포대교 아래 한강에서 수상시위를 전개했다.ⓒ최병성 기자


이들은 '세콤 부당해고 철회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랫카드를 끌며 한강을 건넜다.ⓒ최병성 기자


삼성에스원 계약해지 노동자들, 고공농성에 이어 수상시위 벌여

지난 21일 새벽 6시 30분, 양재나들목 세콤 간판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탓에 이날 수상시위에 참가하지 못한 지승현씨와 전정규씨도 당장이라도 뛰어들 태세로 그 뒤를 쫓았다.

10여분 만에 노동자 한 명이 구조보트에 올라탔고 다시 밤섬 위치에서 2명의 노동자가 탈진 증세를 보여 구조됐다. 그리고 남은 9명의 노동자들은 30여분이 지난 후 한강 둔치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낮 12시. 9명의 노동자 중 두 명이 저체온증으로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갔고 나머지 연대 노동자들과 삼성에스원 노동자들은 마무리 집회를 갖고 이날의 행사를 모두 마무리했다.

다행히 응급실로 호송된 두 노동자는 간단한 응급치료와 정상 체온을 회복하고 오후 2시 30분께 아무런 이상없이 퇴원했다.

노동운동이라고는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다는 22명의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마포대교를 횡단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부당해고는 지난 8월로 거슬러간다.(본보 11월 21일자, 10월 23일자 관련기사 참조)

총 12명의 노동자가 수상시위에 돌입했지만 이 중 3명은 중도에 탈진증세를 보여 구조보트에 올랐다.ⓒ최병성 기자


1시간여의 한강 횡단을 마치고 두 명의 노동자가 저체온증을 보여 응급실로 후송됐다. 이들은 2시 30분께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최병성 기자


삼성에스원은 ‘기계경비업법상 업무 일부를 떼어내 하도급하는 것은 불가는하다’는 경찰청의 질의회시 공문 하나로 이들 5백60명 영업전문직 종사자들을 회사에서 내쫓았다.

반면 경쟁업체인 KT텔레캅과 캡스는 동일한 회신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명의 계약해지 없이 계약직, 비정규직에서 단계적 정규직 전환까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인력운용을 계속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1천7백명이 직장을 잃었는데도 외면하는 언론이 야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계약해지를 당한 노동자들은 4개월째 원직복직 투쟁을 벌이며 지난 21일에는 45미터에 달하는 양재나들목 세콤 광고판 위에 올라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언론은 이들의 고공농성을 장기투쟁이 흔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일회성 이벤트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 삼성에스원 해고 노동자들은 언론에 자신들의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자칫하면 저체온증에 심장발작이 동반할 수 있는 한강 횡단을 결정한 것.

김오근 삼성에스원노동자 연대 위원장은 이날 한강 횡단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하루아침에 1천7백명(회사 추산 5백60명)의 가장이 직장을 잃었는데도 이를 철저히 외면하는 언론들이 야속했다”며 이날 그들이 왜 한강에 뛰어들었는지를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해고된 이후 삼성과 경찰청에 계속해서 해고사유의 부당함과 억울함을 알리고 원직복직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측의 2억원대 손배소송과 명예훼손, 방해금지 가처분신청뿐이었다”고 말했다.

김오근 위원장 "67명에서 20명으로 줄고 생계도 어렵지만 끝까지 싸울 것"

그는 “4개월째 접어드는 투쟁 과정에서 67명이었던 조합원은 22명으로 줄어들었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집 있는 이들은 집을 팔고, 전세에 살던 사람들은 월세로 옮겼다”며 “나도 결국 결혼 패물에 차까지 팔아 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억울한 해고를 취소시키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 예전처럼 일하는 것”이라며 “대화로써 모든 문제를 풀고 싶지만 삼성이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의 투쟁은 12월 말과 1월 초 사이, 한 번의 고비를 맞게 된다. 이들은 대량 해고의 원인이 됐던 경찰청의 질의회시와 관련, 10월에 동일한 내용을 재질의했고 이에 대한 최종 유권 해석이 이쯤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 관계자는 “법제사무국 규정에 따라 1차적으로 경찰청이 법률회시를 하지만 이의다툼이 있을대는 법제처에 의뢰하게 되어있다”며 “법제처의 최종해석이 통상 두 달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12월 말이나 1월 초쯤 결과가 나오고 우리는 거기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1월 초 법제처가 경비업법상 영업전문직 사용을 합법으로 판단할 경우 삼성에스원노도자연대 조합원들의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김오근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위원장.ⓒ최병성 기자


"핵심은 경비업법 불법 여부 아닌 삼성의 안정적인 고용보장"

삼성에스원이 이들을 계약해지했던 법적 명분이 원인 무효화되면서 부당 계약해지라는 노동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다산 법무법인 김칠준 변호사는 “만약에 법제처가 합법으로 해석한다면 당연히 계약해지 통보 자체가 위법하게 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설사 같은 내용의 질의회신이 나온다 해도 계약해지 통보 자체가 적법하지 않았다”며 “유권해석에 따른 책임은 철저히 회사 측에 있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어야하는데 이들을 무방비로 거리에 내팽개치고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삼성과 노동자들의 법적 분쟁 자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특수고용법상 설령 이들이 법적으로 승소해 원직복직이 된다 해도 삼성은 이들의 잔여 월급을 주는 방식으로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김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삼성이 적법한 형식으로 고용계약을 다시 맺거나 직판 형식의 생계유지를 위한 고용대안을 마련하게끔 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에스원이 자사의 불법여부 가려달라고 질의했다?

한편 이날 김오근 위원장은 지금까지 익명으로 알려진 최초의 경비업법 질의자가 삼성에스원 소속 정규직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남대문경찰서의 담당 경장이 우리를 만난 자리에서 질의자는 에스원 직원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게 사실일 경우 에스원이 영업전문직을 해고하려는 계획 아래 고의로 질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스원연대의 주장대로라면 삼성에스원 측이 자신들의 불법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직접 요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사 영업전문직에 대한 일괄 계약해지를 한 셈이 된다.

그러나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에 접수되는 개인의 질의는 철저한 신변보호 원칙이 지켜지며 관할 경찰서에도 그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삼성에스원 또한 익명의 질의자가 소속 직원이라는 의혹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했다. 에스원연대에 ‘질의자가 에스원 직원’이라고 밝힌 최 모 경장은 현재 휴가중인 관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병성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